일소개춘, 코로나 이겨낸 세상서 크게 웃는 봄을 꿈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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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에 섬뜩한 해골이나 깨지기 쉬운 유리잔, 곧 부패할 것 같은 파이 등을 함께 그려 넣었다.
중세 말 흑사병, 종교 전쟁 등 여러 비극적인 경험으로 인해 탄생한 장르로 삶의 덧없음을 경고하는 그림이다.
현대에 와서도 데미안 허스트가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을 내놓는 등 바니타스의 전통은 변주된다.
3부 '사의 찬미-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새롭게 등장한 바니타스 회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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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에 섬뜩한 해골이나 깨지기 쉬운 유리잔, 곧 부패할 것 같은 파이 등을 함께 그려 넣었다. 중세 말 흑사병, 종교 전쟁 등 여러 비극적인 경험으로 인해 탄생한 장르로 삶의 덧없음을 경고하는 그림이다. 라틴어로 공허를 뜻하는 바니타스를 따서 ‘바니타스 회화’라 불린다. 현대에 와서도 데미안 허스트가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을 내놓는 등 바니타스의 전통은 변주된다.
중국 아방가르드 현대미술를 대표하는 ‘4대 천황’의 한 명인 유에민쥔(岳敏君·59)의 회화에도 해골이 나타났다. 4대 천황은 1976년 문화혁명 종결 뒤 개혁개방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유에민쥔, 쟝샤오강, 왕광이, 팡리쥔을 일컫는다. 이들은 문화혁명 시기 마오쩌둥 얼굴로 도배됐던 초상화에 대한 반동처럼 인물화를 그렸다. 그러나 4대 천황의 인물화에는 절망과 두려움의 시기를 살아가는 불안과 냉소 등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된다.
유에민쥔은 시그니처인 실없는 웃음 뒤에 정치적 허무주의를 담는다. 앞머리가 벗겨진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해서 분홍색 얼굴에 눈을 질끈 감고 흰 이빨 드러내며 폭소를 터뜨리는 남자들을 계속 그려댔다. 옥수수처럼 길게 늘어난 치아는 웃음 위에 기가 막히게 슬픔을 포갠다.
냉소적 사실주의로 불리는 그의 작품 가운데 95년 작 ‘처형’은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인 590만 달러(약 65억 8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고야의 ‘스페인에서의 처형’을 패러디한 이 작품을 비롯해 그는 서양 미술사를 오마주 하거나 서구의 상업문화를 패러디하는 작품도 자주 선보였다.
바니타스 회화는 그런 연장선에 있다. 그러면서 작가 인생 전반기인 2005년까지의 작품 세계를 지배했던 ‘아나키스트적인 웃음’과는 결별한다. 바니타스 회화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적 자세가 담겼다. 그런 변신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한 시대를 웃다’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에민쥔의 작품 세계는 국내에서는 2000년대 그룹전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지만 이렇듯 오롯이 개인전이 열리기는 처음이다. 유에민쥔과 수십 년 우정을 쌓은 윤재갑 상하이 하우 아트 뮤지엄 관장이 기획을 맡아 작품들이 대거 건어왔다. 대부분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1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2부 ‘한 시대를 웃다’를 통해 친숙한 웃음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3부 ‘사의 찬미-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새롭게 등장한 바니타스 회화를 만날 수 있다. 해골의 눈동자에 눈질 끈 감고 있는 웃는 남자를 그려 넣는다거나 반대로 웃는 남자의 눈동자에 해골을 그려 넣기도 한다. 또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콘솔 위에 웃는 얼굴과 해골을 수박과 병치하기도 한다. 윤 관장은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양자는 모든 존재와 함께 한다. 죽음으로부터 역산하면 오히려 이 순간이 가장 청춘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말하는 그림이다.”
4부 ‘조각 광대’ 코너에선 등신대의 조각 작품들이 나왔다. 버젓이 양복 입은 댄디의 뒤통수에 코뿔소, 사자 등의 동물 얼굴이 매달려 있어 섬뜩하다. 인간과 동물에 공통으로 감염되는 전염병인 코로나 시대를 예견하는 것 같다.
5부 ‘일소개춘(一笑皆春)’은 타이틀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라니. 코로나 시대를 이겨내고 봄을 맞는 웃음을 웃고 싶다면 이 전시를 추천한다. 5월 9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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