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김은 김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돈삼 2021. 1.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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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검은 보석, 겨울바다의 불로초 '김'의 본디를 찾아

[이돈삼 기자]

 바다의 검은 보석으로 불리는 김. 사철 맛있지만, 겨울에 더 맛있다. 김은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해조류이고, 연간 100억 장을 먹는다고 한다.
ⓒ 이돈삼
 
겨울엔 별미여행이 제격이다. 굴, 매생이, 꼬막과 함께 겨울 찬바람이 품고 온 남도바다의 별미 가운데 하나를 찾아간다. 우리 국민이 연간 100억 장을 먹는다는 김이다. 김은 '바다의 검은 보석'으로 통한다. 바삭바삭한 김은 사철 맛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 더 맛있다. 겨울이 제 철이다.

오래 전 김은 뭍사람들에겐 무엇보다 귀한 음식이었다. 설날이나 제삿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손바닥만한 김 한 장으로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김으로 밥을 싸먹는 게 아니다. 밥으로 김을 싸 먹었다.

김밥도 남녀노소 다 좋아한다. 종류도 다양하다. 갖가지 김밥을 담아서 1인분에 8000원 하는 것도 나왔다. 일반적으로 김밥은 한 줄에 1500∼2000원 한다. 김은 우리의 식탁에 무시로 오른다. 밥상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는 재래식 김의 건조 모습. 몇 해 전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서중마을에서 찍은 것이다.
ⓒ 이돈삼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김밥. 가히 '국민음식'이라 부를만 하다.
ⓒ 이돈삼
 
김의 영양가도 높다. 김에는 비타민과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이 많이 들어 있다. 김 한 장에 들어 있는 비타민A가 달걀 2개와 맞먹는다. 비타민C는 감귤 하나보다 3배 더 들어 있다. 미네랄의 보고이고, 겨울바다의 불로초다. 고혈압 예방, 숙취 해소, 시력 보호에 특히 좋다.
김을 이용한 요리도 다양해지고 있다. 김밥 외에도 김국, 김냉국, 김전, 김장아찌, 김부각, 마른김무침까지 부지기수다. 김은 우리나라 농수산물 수출품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힌다. 지난해 수출액이 6억 달러를 넘었다. '식품계의 반도체'로 불리는 이유다.
  
 광양에 있는 김시식지 역사관 전경. 김역사관과 김시식 유물전시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 이돈삼
   
 산죽 섶을 이용한 1949년의 김양식 모습이다. 광양 김시식지 역사관에 걸린 사진이다.
ⓒ 이돈삼
 
김의 이름 유래도 재밌다. 임금한테 까만 김을 처음 진상한 사람이 김씨였다. 그 사람의 성씨를 따서 '김'이라 했단다. 조선 인조 때 얘기다.

김을 진상한 사람이 김씨가 아니고 이씨, 정씨, 임씨, 황씨 나아가 조씨, 계씨였다면…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우리가 먹는 김밥도 이밥, 정밥, 임밥, 황밥, 조밥, 계밥이 되지 않았을까. 정밥 먹을까? 계밥 먹으러 갈까?

김여익은 1606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서 태어났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광양현 인호도에 정착했다. 지금의 광양시 태인동이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서 있는 자리다.
  
 지주식 김양식장 풍경.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얕은 바다에서 기둥을 세워서 한다.
ⓒ 이돈삼
   
 지주식 김양식은 김이 더디 자라고, 생산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썰물 때 햇볕을 쬐면서 김발에 붙는 이물질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영양가도 더 높다.
ⓒ 이돈삼
 
김여익은 여기 바닷가에서 김을 발견한다. 나무에 붙어 있는 해의(海衣)를 보고, 밤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개펄에 꽂아 양식도 했다.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대나무를 꽂아서 하는 지주식 김양식의 시초다.

김양식은 지주식과 부유식으로 나뉜다. 부유식은 현대화되고 일반화된 양식법이다. 김 주산지인 완도 등 바다가 깊고 조수 간만의 차가 적은 남해안에서 주로 한다. 바다에 구조물을 띄우고, 거기에 김발을 매어 다는 방식이다. 김이 하루 24시간 바닷물에 잠겨 있어 더 빨리 자란다. 생산량도 많다. 식감도 부드럽다.

재래식으로 통하는 지주식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얕은 바다에서 기둥을 세워 한다. 하루 두 차례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서 김이 더디 자란다. 생산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썰물 때 햇볕을 쬐면서 김발에 붙는 이물질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천천히 오래 자란 덕에 맛과 영양이 더 좋다.
  
 광양 김시식지 역사관의 유물전시관 내부. 김양식에 쓰이는 갖가지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 이돈삼
   
 용지마을 삼거리에 있는 김시식지 유래비. 용지마을에는 김의 풍작을 빌면서 놀았던 용지큰줄다리기가 전해지고 있다.
ⓒ 이돈삼
 
김여익은 김발 위에 해의를 고루 펴셔 말린 다음 떼어내는 김 건조법도 개발했다. 하여, 태인도 사람들이 김양식을 많이 했다. 김이 광양특산으로 왕실에도 진상됐다.

이런 사실을 적은 비석을, 1714년 광양현감 허심이 세웠다. 비석은 사라지고, 지금은 묘표문만 전해진다. 김여익의 이름과 행적 등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운 것이다. 이 묘표문이 광양을 김 시식지로, 김여익이 김양식 도입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당시 김양식장이 즐비했던 바닷가 궁기마을에 김시식지 역사관이 있다. 여기서 김의 유래와 역사, 제조과정을 볼 수 있다. 밤나무 가지를 섶으로 이용한 김양식 모습도 사진으로 만난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기 전에 주민들이 김을 양식하고, 말리는 모습도 남아 있다. 영모재에는 광양현감 허심이 세운 묘표문 '시식해의 우발해의(始殖海衣 又發海衣)'가 보관돼 있다.

김시식지 역사관에서 가까운 용지마을 삼거리에도 또 하나의 김시식지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 마을에서는 농사가 아닌, 김의 풍작을 빌면서 놀았던 용지큰줄다리기가 전해지고 있다.
  
 배알도 수변공원과 배알도를 이어주는 해상보행교. 광양에 남은 유일한 섬 배알도와 만나게 해준다.
ⓒ 이돈삼
   
 광양 망덕포구에 만들어진 윤동주 시 정원. 서시, 자화상, 참회록 등 윤동주의 시 31편을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 이돈삼
 
김시식지 역사관 건너편에 배알도 수변공원도 있다. 광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섬, 배알도까지 해상보행교가 놓여 있다. 김시식지 역사관에서 가까운 망덕포구는 민족시인 윤동주와 엮인다. 포구에 윤동주의 생전 친필원고가 보관된 '정병욱 가옥'이 있다. 현재 원형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정병욱의 집 마루 밑에서 나온 윤동주의 친필원고 19편과 강처중이 보관해 온 12편을 묶어 해방 이후 시집으로 나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윤동주의 유일한 시집이다.

망덕포구에 윤동주의 시비 '별 헤는 밤'이 세워져 있다. 서시, 자화상,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 등 윤동주의 시 31편이 새겨진 시비 정원도 있다. 시대의 고통을 별처럼 빛나는 시로 승화시킨 윤동주의 저항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배알도에서 본 광양 망덕포구 전경. 새봄에 강굴, 가을엔 전어로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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