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후 아무도 안 싸워.. 당혹스런 결과

하성태 2021. 1. 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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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하성태 기자]

"언론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권력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언론은 날이 잘 드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것이 정의에 의해 쓰여질 때에는 역사를 진전케 하는 훌륭한 힘이지만, 그것이 잘못 쓰일 때, 권력에 결탁했을 때 그 폐해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성이 묵직하게 깔린다. 취임 이듬해인 2014년 12월, 한 중소 진보 언론사의 창립 50주년 자리에서 기념사를 한 노 전 대통령. 그 음성 위로, 조선일보 사옥이 위풍당당 위용을 자랑한다. 뒤이어 청와대를 응시했던 카메라가 그 반대편에 위치한 동아일보 사옥을 비춘다.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관련 이미지.
ⓒ (주)엣나인필름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보수언론과 전쟁을 벌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이런 '언론관'은 '조중동'을 겨냥한 것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취임 직후였던 2003년 4월 국정연설에서는 대놓고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은 위험하다", "몇몇 언론사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고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선빵'을 날렸을 정도다. 그 언론사들이 참여정부 내내 '건달정부'를 비롯해 저주에 가까운 독설과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은 것은 물론이다.

뉴스타파함께센터가 기획·제작하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공동연출한 '추적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아래 <족벌>)가 노 전 대통령의 일성을 첫 장면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만큼 족벌(族閥) 신문과 혹독하고 처절하게 싸운 대통령은 없었으니까. <족벌>은 그 중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은 '조선'과 '동아' 미디어기업의 '흑역사'에 집중한다.

노무현의 전쟁과 인상적인 첫 장면

여하간 <족벌>의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영화의 시작이면서 전체를 함축한다 해도 무방하다. (<족벌>이 인용한) 사후 공개된 노 전 대통령의 메모를 재인용해 보자면, '대통령 노무현'은 임기 내내 '썩어빠진 언론, 철없는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을 마다하지 않았고, '책임 없는 언론과의 투쟁'을 이어갔다.

재임 마지막 해인 2007년 신년연설이나 6.10항쟁 기념사를 통해서도 언론개혁을 향한 직설화법은 계속됐다. 이는 결국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일명 '기자실 통폐합'으로 이어졌고,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모든 기득권 언론사의 반발을 샀다.

그 독야청청하던 노 전 대통령은 망자가 된 지 벌써 11년이다. 시작부터 <족벌>이 소환한 그 망자의 일성이 한편으론 처연하면서도 처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는 쓰러졌지만, 그를 쓰러뜨린 '족벌' 언론의 위세는 한층 더 강화됐다.

그러나 <자백> <공범자들> <김복동> <월성>에 이어 <뉴스타파>가 다섯 번째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은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영화적 기교나 감정에 공력을 나누는 대신, '족벌' 언론의 행태를 좀 더 넓게 소개하고 깊게 파헤치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족벌>은 '조선'과 '동아'의 '친일' 경쟁을 그린 '앞잡이들', 광복 이후 군사독재 정권에 기생해 제 배를 불려갔던 시기를 그린 '밤의 대통령', 그리고 현재 이들 '족벌'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악의 축'이란 세 장으로 나뉜다.

'조선'의 창업자 방응모, 방응모의 손자 방우영, '동아'의 시조 격인 김성수, 김성수의 장남 김상만, '동아'와 '조선' 해직기자 출신 정연주와 신홍범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악의 축' 챕터를 여는 주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이 중 지난 2016년 작고한 방우영 <조선일보> 전 사장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다. 1988년 국회 '언론 청문회'에서 한 방우영의 증언은 <족벌>이 길어 올린 명장면이었다.

<족벌>이 발굴한 '친일전사'들의 맨얼굴

"'조선', '동아'가 일제 때 왜놈한테 굴종하고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겁니까? 저는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조선'이나 '동아'나 68년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저희들의 선배, 선인들이 그 혹독한 조선총독부 밑에서 피 흘리고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하면서까지 그래도 겨레를 위하고 민족의 존립을 위해서 끝까지 목숨을 싸우다가 조선동아는 끝내 폐간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두 '족벌' 신문의 친일 이력이 도마 위에 오르자, 방우영은 울분에 차서는 핏대를 세우며 반박에 나섰다. '족벌' 신문 사주들의 정서를 확인시켜주는 결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족벌>은 취재를 통해 그간 두 신문이 주장해 온 '조선총독부에 의한 강제 폐간'이란 일종의 신화를 팩트 체크한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보관된 관련 조선총독부 '극비문서'가 그 증거였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총독부 경무부장은 두 신문의 대표자를 만나 폐간을 논의했고, 당시 발행인인 방응모는 일종의 거래 끝에 '폐간계'까지 제출하며 거래에 응했다.

방응모의 요구사항은 '<동아일보>도 함께 폐간할 것', '폐간 당일까지 협의를 극비로 할 것', '건물을 포함 100만원을 양도할 것'이었다고 한다. 두 신문이 폐간됐던 1940년은 조선총독부가 일종의 언론통폐합을 실시했던 시기였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과 별다를 바 없는 기사와 논조로 일관했던 '조선'과 '동아' 역시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족벌>이 만난 전문가들을 말한다.

폐간 이후에도 '조선'과 '동아'의 발행인들은 기고문 등을 통해 친일 행위를 이어갔고, 해방 후인 1945년 11월 23일, 12월 1일 각각 보란 듯이 복간호를 냈다. 눈에 띄는 것은 '동아'의 복간호 속 영어 기사다. 이 '족벌' 신문들이 동물적 감각을 바탕으로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에 옮겼음을 증명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과 '동아'는 1985년 과거 상대방의 친일 경력을 들먹이고 자신들이 유일한 민족지라며 지면 상 논쟁을 펼친 '흑역사'까지 가지고 있다. 물론 본인들만 부인할 뿐, 두 신문의 친일 행각에 대한 고발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족벌>이 이들의 창간 100주년에 발굴해 낸 '팩트'들을 영상을 통해 두 눈으로 접하는 일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지금의 독자들이 두 신문이 1937년 1월 1일을 시작으로 폐간 때까지 새해와 일왕 생일 등 기념일에 히로히토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 중앙에 경쟁하듯이 실었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또 컬러 인쇄가 희귀하던 그 시절 '조선'이 일본의 기념일마다 신문 제호 위에 일장기를 컬러로 인쇄했다는 사실을 누가 알려주겠는가. '조선' 해직 기자 출신 김홍범씨마저 "그걸 누가 가르쳐줬겠느냐, 전혀 알지 못했다"고 손사래를 쳤다.

'밤의 대통령'은 어떻게 '악의 축'이 되었나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관련 이미지.
ⓒ (주)엣나인필름
 
그 권력지향의 DNA는 군사독재시절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으리라. '밤의 대통령'은 '조선'과 '동아'가 승승장구했던 시절의 약사(略史)라 할 수 있다. 특히 전두환 집권 시기의 '용비어천가'를 영상으로 다시 확인하는 일은 가히 목불인견 수준이라 고역이란 표현도 아까울 정도다.

일왕의 사진을 1면에 내걸었던 '조선'과 '동아'가 전씨와 전씨 가족의 사진을 다시 내건 것도 이때였다. 1980년대는 '박정희 시대'에 일선 기자들이 벌였던 투쟁조차 없었다. <족벌>이 '동아투위' 등에 참여했던 해직 기자들, 즉 언론계 원로들을 소환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인터뷰는 그 자체로 의미있다. 이들이 과거 자신들이 외쳤던 언론자유수호 선언문을 다시 읽어내려 가는 장면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박정희 군부 당시 법정에 서서 판사 앞에서 '언론 자유'의 가치를 호령하던 이들이 바라보는 작금의 '언론 현실', 그 시선의 교차 자체로 <족벌>은 큰 의미를 지닌다. 과거 일왕과 '인간 전두환'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현재 어떻게 재림되는지를, 또 어떤 방식으로 변주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족벌>은 '악의 축'에 이르러 한국 언론계를 좀먹는 '조선'과 '동아'의 생존 전략을 횡으로 나열한다. 거대하고 방대한 '혼맥'으로 얽힌 '족벌' 언론 일가는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조중동 사주와 임원들의 개인비리와 친인척 가족 비리를 가지고 조중동을 통제해라, 이게 제일 많은 건의사항이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유혹을 단칼에 끊어버렸어요. 나는 그런 대통령 안 한다. 내가 언론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두고 봐라. 합법적으로 하자. 내가 보수언론 기사가 잘못됐다고 하면 국민들이 달라지지 않겠느냐." (참여정부 국정홍보비서관 출신인 김종민 의원)

하지만 그런 대통령을 '족벌' 언론들은 '고졸'이라 조롱했고, 처가를 '빨갱이'라 몰아갔고, '건달정부'라 참칭했다. 노 전 대통령 이후, 종합편성채널이 탄생했다. '보수언론 프랜들리'를 선언한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족벌 언론에게 준 선물이었다. 언론자유와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세월호 참사 직후 이른바 '기레기' 담론이 출현했다.

노 전 대통령 이후 그 어느 정권도 무소불위 족벌 언론의 권력에 손대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족벌 언론은 이제 '권력지향'을 넘어 '권력창출'의 단계로 넘어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조선'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국회는 21대가 유일할 정도다.

그런 권력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화해지는 중이다. '조선'과 '동아'의 세습 체제 기간은 이미 북한 김일성 일가를 넘어섰다. 방일영문화재단 등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 엘리트층을 포섭 중이다. 경찰 조직 역시 '조선'이 주는 청룡봉사상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엄청난 금권을 바탕으로 땅 장사에도 열을 올린다. '조선' 경우엔, TV조선이나 콘텐츠 제작사 하이그라운드를 포함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다. 또 구독료 대신 변종 기사 광고 등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재계의 이해와 요구에 발맞춘다. 종교계도 빠질 수 없다. 주류 개신교가 이단으로 규정한 '하나님의 교회' 홍보 기사를 통해 큰 수익을 거둔 곳도, 신천지 홍보 기사에 앞장섰던 곳도 이들 족벌 언론들이었다.

'필람'의 이유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관련 이미지.
ⓒ (주)엣나인필름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내정설이 도는, <족벌>의 주요 출연자인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조선'과 '동아'로부터 총공세를 받는 중이다. 반면 TV조선의 <미스트롯2>는 현재 종편 시청률의 새역사를 쓰는 중이다.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는 별 일 없이 잘 먹고 잘 산다.

'검언유착' 의혹을 받은 채널A에 대한 비난 역시 잠잠해졌다. 신문 구독률은 꾸준히 줄고 있지만, 미디어 그룹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족벌' 언론들은 그런 하락세 경향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안티조선' 운동으로부터 20년, 가장 크게 변한 상황이리라.

이런 현재를 직시하는 <족벌>은 이른바 '레거시 언론'을 신뢰한다는 논객은 물론 이땅의 지식인들 모두가 '필람'해야 할 다큐일 것이다. 이들이 인터뷰를 하고 칼럼을 게재하는 등 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조선'과 '동아'와 우호 관계를 지속해오는 사이, '족벌' 언론의 지배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들이야말로 <족벌> 언론의 가장 큰 공범일지 모른다.

이들 '족벌' 언론이 여전히 이슈에 대한 논조를 선도하고 있다. 포털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구독하는 뉴스 소비자에게도, 현직의 젊은 기자들에게도 <족벌>의 '필람'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중앙'이 빠졌다고 아쉬워 말고, 상영시간이 다소 길다고 버거워 할 필요 없다.

영화의 마지막, 두 족벌 언론의 사옥을 삼보일배한 동아일보·조선일보 해직기자들의 염원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족벌>이 가리키는 것처럼, 이들 '족벌' 언론을 개혁해 내는 일이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일이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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