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카톡 캡처 제보' 받는 정의당.."신고했나 확인 섬뜩"

송승환 2021. 1. 3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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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가 없어야 한다는 데 반대할 당원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이 하는 건 ‘우리가 정해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궁금해 하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강압입니다.”
지난 28일 정의당 당원게시판에 당 지도부의 ‘2차 가해 제보 요청’을 철회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정의당 전국위원, 지역 여성위원장, 지역위원장 등 8명이 공동으로 제안한 글에 나흘간 100명 넘는 당원이 연서명을 했다.

제안자들은 정의당 지도부가 “당원과 국민들에게 입을 다물라, 서로를 고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정의당원들 사이에 “사적 대화를 감시하고, 누구의 SNS를 캡처하고, 개인의 지난 발언 이력을 캐고, 신고했는지 안 했는지를 확인하는 섬찟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원 여부와 관계 없이 제보하라는 것은 당원이 국민을 사찰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이 당 페이스북에 지난 26일 올린 2차 가해 제보 요청 게시글


정의당이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공개 후 ‘피해자 중심주의’를 명분으로 “2차 가해 발생 시 예외 없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색출 작업에 나서자 내부에서 집단 반발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6일 정의당 전국여성위원회는 페이스북에 ‘2차 가해 제보 받습니다’라는 제목을 글을 올렸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모든 SNS 상의 대화에 2차 가해성 발언을 캡처해 달라”며 “당원 여부와 상관 없이 사건 해결의 본질을 흐리는 모든 내용”이 대상이라고 적시한 글이다. 이틀 뒤인 28일 배복주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은 “200건 넘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당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정의당이 페이스북에 ‘2차 가해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자 일부 당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가이드라인에선 ‘피해자가 결정한 사건처리방안에 대한 비난’ ‘피해자가 밝힌 사실관계에 대한 불신’ 등을 모두 '2차 가해'로 분류했다. 여기엔 “침묵해도, 발언해도 2차 가해면 결국 수뇌부 말만 따르란 것” “피해자가 절대자인가?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2차 가해라는 이름으로 모든 비판을 감시하는 것이 독재 시대 연상시킨다”는 등 200여 개의 댓글이 이어졌다. 당 게시판에도 “당원들이 선출한 대표가 사퇴했는데 아무 설명이 없는 게 정의로운 당이냐” “공동체적 해결방식에서 당원은 제외되는 것이냐”는 항의가 나왔다.

정의당이 지난 28일 당 페이스북에 올린 2차 가해 가이드라인.


연서명을 요청한 공동제안자들은 “무엇이 왜 문제인지 토론조차 불가능해지면 남는 것은 공포와 혐오뿐”이라며 “왜 이 상황에 대한 진리를 당의 몇몇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냐”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들은 “2차 가해 제보는 중환자실에 들어간 정의당의 산소호흡기마저 떼는 일”이라며 “국민과 당원들에게 우리의 오류를 솔직하게 사과하자”고 제안했다.


페미니즘으로 쪼개진 정의당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이후 첫 공개 일정으로 방송 뉴스에 출연해 ″일상 회복을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사건 공개 후 첫 공개 행보였던 지난 30일 방송 인터뷰에서 다시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했다. 장 의원은 “오늘 출연이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는 피해자다운 모습이 정해져있고, 가해자는 또 어떤 사람들만 가해를 저지르지 어떤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성폭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주장한 사건처리 방식을 비판하는 것마저 '2차 가해'로 보겠다는 극단적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은 커지고 있다. 당 게시판엔 “정의당이 여성주의만 지향하는 당인가” “범진보 정당이 아닌 것 같아 탈당을 고민 중이다”는 내용이 올라오고 있다.

“형사고소 절차는 일상 회복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다고 피해자인 저 스스로 판단했다”는 장혜영식 사건 처리 방식도 당원들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정의당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법절차를 무시한 지도부의 섣부른 결정으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출석 요구를 받거나 당이 압수수색을 당한다면 더 큰 수치를 겪게 될 것”이라면서 “무관용 원칙이라면 사법처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정의당원은 “피해자의 권한을 넓히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초선 중심 정의당의 리더십 상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오른쪽부터)와 김응호 부대표, 권태훈 사무총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김종철 쇼크’와 장혜영식 피해자중심주의가 빚은 논란이 집단 탈당으로 이어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국면에서도 장혜영·류호정 의원의 공개적인 조문 거부로 젠더 이슈가 불붙으며 집단 탈당이 이어졌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민주당 2중대' 논란부터 지난해까지 1만 명 가까운 당원이 이탈하면서 정의당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사태를 “신속하고 엄중하게 수습”하겠다던 정의당 지도부는 1주일째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 사이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김윤기 부대표)→’비상대책회의(김윤기 부대표·강은미 원내대표)→비상대책위원회(강은미 원내대표)로 지휘 체계만 3차례 바뀌었고 뾰족한 해법은 찾지 못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30일 “강 원내대표가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서 비상대책위원을 임명할 예정”이라며 “4·7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 방침과 당대표 보궐선거 일정 등은 전국위원회를 곧 다시 소집해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서를 면직하는 과정에서 노동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합의하는 과정이고 오해를 풀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류호정 의원이 비서를 부당해고 했다는 논란까지 겹치며 정의당은 갈수록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양상이다. 지난 29일 한 정의당원이 “류 의원이 비서를 면직하는 과정에서 통상적인 해고 기간을 준수하지 않는 등 노동법을 위반했다”고 제기한 문제에 류 의원은 “합의하는 과정이고 오해를 풀었다”고 입장을 밝혔다.그러나 당사자인 비서가 지난 30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류 의원은 부당해고의 가해자”라면서 “아직 공식 사과가 없어서 문제 해결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초선 의원 중심으로 구성된 지도부가 리더십을 상실하고 헤매고 있는데 원로들은 분열로 보일까 의견을 쉽게 낼 수 없는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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