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불개미의 반란..'게임스톱 혁명' 가능했던 이유 두 가지

이승호 2021. 1. 3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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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칩 먹으며 TV만 보던 미국 프로농구(NBA) 시청자가 르브론 제임스(NBA 농구 슈퍼스타)의 슛을 블로킹한 격.”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내놓은 게임스톱 대첩에 대한 평가다. 전문 지식과 자본으로 무장한 거대 기관 투자 세력 앞에 개인투자자(개미)들은 항상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게임스톱 주식 공매도에 배팅한 거대자본을 수백만의 분노한 불개미가 물리쳤다. WSJ는 “아마추어 투자자들은 즉각적으로 의사소통한 뒤 수백만 명이 일제히 행동(매수)에 나섰다”며 “헤지펀드에 수십억 달러를 손해 보게 한 ‘게임스톱 혁명’은 금융 민주화의 정점”이라고 보도했다.


'불개미 반란' 판 깔아준 로빈후드

로빈후드 공동창업자 블라디비르 테네프.[로이터=연합뉴스]

혁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주역은 둘이다. 먼저 주식 거래앱 ‘로빈후드’다. 개미들의 반란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했다. 로빈후드는 미 스탠퍼드대 출신의 블라디미르 테네프와 바이주 바이트가 2013년 창업했다. 두 사람은 ‘주식시장이 일부 기득권층에만 허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그 원인을 ‘건당 10달러에 달하는 수수료’에서 찾았다. 블라디미르 테네프 창업자는 미 CNBC에 “금융은 개인 자산과 관계없이 모든 이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미국인 모두가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앱 이름을 중세 영국 의적(義賊)에서 따온 이유다.

그들은 거래 수수료와 등록 예치금 ‘제로’를 무기로 삼았다. 복잡한 주식 거래 절차도 생략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거래를 할 수 있게 했다. 파격적 조건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몰렸다. 서비스 6년 만에 평균연령 31세에 13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개미들 의기투합 만들어낸 WSB

미국 개인 투자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월스트리트베츠' 대문. [월스트리트베츠 캡처]

로빈후드가 불개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면, 이들이 별동대처럼 움직이다 화력을 일순간에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한 건 온라인 커뮤니티다. 정확하게는 레딧이란 플랫폼 내 주식정보 공유방 ‘월스트리트베츠(Wall Street Bets·WSB)’다. 이곳에서 헤지펀드의 게임스톱 공매도 소식을 공유한 20~30대 불개미들은 ‘추억의 비디오 게임 회사 살리기’에 의기투합했고, 집중적인 주식 사들이기를 벌였다. WSJ는 “집단적으로 열광한 개인 투자자들이 뜻을 모으면 수천 건의 거래로 대규모 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이러한 시스템의 가장 진화된 모습이 WSB”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 민주화’를 내세운 로빈후드가 시작했다. 로빈후드는 지난 28일(현지시간) 개인 투자자의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막았다. 하루 만에 제한을 풀긴 했지만 개미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로빈후드는 30일 블로그를 통해 “급증한 투자로 계약 불이행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의무 예치금 비용이 10배나 치솟은 탓에 매수를 일시 중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헤지펀드 매수는 허용하며 개인만 막은 로빈후드의 행동은 불개미에겐 배신으로 비쳤다. 일부는 집단소송까지 할 태세다. 블룸버그는 “‘모두를 위한 금융 민주화’를 내세우던 로빈후드는 정작 문제가 생기자 ‘고객이 원한다고 모두 살 수는 없다’며 월가의 논리를 들이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래제한 조치에 '삼면초가' 부닥친 로빈후드

[AFP=연합뉴스]

로빈후드의 움직임엔 수익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로빈후드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고객의 거래 주문을 대형 증권거래회사에 넘겨 주문을 처리한다. 그 대가로 증권회사에서 받는 보상금인 ‘투자자 주식 주문 정보 판매(PFOF)’로 대부분의 수익을 올린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 같은 사정을 고객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은 이유로 로빈후드에 지난해 12월 6500만달러(약 714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번 거래제한 조치가 월가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연방의회는 거래제한 조치를 한 로빈후드에 대한 청문회를, SEC도 로빈후드 감독에 나서기로 했다. 정치권·시장·고객에 '삼면초가' 상황에 부닥치게 된 로빈후드다.

게임스톱 주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혼란 속에도 불개미 반란은 아직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래제한 조치가 풀리자 게임스톱 주식은 29일 67.8% 오른 325달러로 급등했다. WSJ는 “시장에선 버블 붕괴를 우려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마땅한 소득을 얻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자금·집값 대출 갚기 위한 빚을 내고 스포츠 경기결과에 베팅하듯 단기 매매에 집착하는 욜로(You only live once) 투자가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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