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민족주의' 시작됐다.. 점잖던 EU마저 물량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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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Z)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분배를 둘러싸고 유럽연합(EU)과 영국 사이에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30일(현지시간) "지구촌 남반구에서는 아직 수많은 나라가 단 한 차례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 수준이 높은 것으로 간주되는 유럽에서 추악한 백신 민족주의가 시작됐다"며 EU와 영국의 백신 쟁탈전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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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제한' 경고에 공장 급습도.. EU 지도부 위기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Z)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분배를 둘러싸고 유럽연합(EU)과 영국 사이에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의 단면이자 추악한 백신 민족주의라는 평가다.
미국 CNN방송은 30일(현지시간) “지구촌 남반구에서는 아직 수많은 나라가 단 한 차례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 수준이 높은 것으로 간주되는 유럽에서 추악한 백신 민족주의가 시작됐다”며 EU와 영국의 백신 쟁탈전을 비판했다. 지난해 9월 세계 정상들은 팬데믹 대응을 위한 연대를 강조하며 개발된 백신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먼저 돌아갈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백신이 실제로 공급되자마자 연대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22일 AZ가 유럽의 초기 백신 공급이 예정보다 지연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생산에 차질이 생겨 1분기 유럽에 공급하기로 한 8000만회분 중 3100만회분만 건네줄 수 있다는 통보였다. EU 집행위는 “백신 공급이 지연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AZ가 EU보다 영국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면서 영국에 줄 물량을 줄여서라도 당초 계약한 물량을 최대한 맞춰달라고 촉구했다.
파스칼 소리오 AZ 대표는 “영국이 EU보다 석달 앞서 계약을 체결했고, 우리는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있다”며 EU의 요청을 거부했다. EU는 지난해 8월 27개 회원국을 대리해 AZ와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앞서 같은 해 1월 EU에서 벗어난 영국은 EU보다 3개월 빨리 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자 EU 측에서 “우리는 선착순을 거부한다”며 다시 반발했다. 스텔라 키라아키데스 EU 보건담당 집행위원은 “선착순 논리는 정육점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백신 계약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U 집행위가 지난 25일 EU 권역 내에서 생산된 백신의 역외지역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며 백신 이동경로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급기야 지난 28일에는 물량부족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겠다며 벨기에의 AZ 생산공장을 급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론은 EU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 29일 EU 비판에 가세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EU의 백신 수출 제한 발표에 대해 “백신 민족주의이자 실제적 위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EU 탓에 팬데믹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WHO의 비판에 EU 지도부는 이날 백신 수출 제한 결정을 번복했다. ‘갑작스럽고 민망한 유턴’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이번 사태로 EU 지도부도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영국 매체인 텔레그래프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유럽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을 상대로 ‘백신 국경’을 세우려다 국제사회에서의 EU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독일 슈피겔도 “유럽은 백신재앙에 직면했고, 이 사태는 결국 폰데어라이언 위원장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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