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 서한나

한겨레 2021. 1. 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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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태도가 담긴다.

욕 같은 칭찬이 있는가 하면 부탁인 듯 명령인 게 있고, 머퉁이 주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마음에 남는 말이 있다.

관점이 생기면 충청도 사람이 진짜로 느리고 의뭉스러운가 궁금해하기보다 서울의 공간적 위상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도서관과 명사와 온갖 데이트 코스로 우글거리는, 가도 가도 갈 데가 생기는 지역은 서울뿐이라는 게 이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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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한나 ㅣ 페미니스트문화기획자그룹 보슈(BOSHU) 공동대표

말에는 태도가 담긴다. 욕 같은 칭찬이 있는가 하면 부탁인 듯 명령인 게 있고, 머퉁이 주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마음에 남는 말이 있다. 말하는 이가 무언가 놓쳐서 생기는 일이다.

지역을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는 경우, 부탁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중앙 독자는 지역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으니 잘 좀 써주세요.” 예의 바르게 말해도 타깃과 역할이 짐작되니 귀에서 걸린다. 중앙이 어디일까? 대전의 중앙은 중앙로일 수도 있고 내가 사는 서구 어딘가일 수도 있다. 정치의 결과로 지역이 낙후됐고 이제 와 지역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지역 사람뿐이다. 나는 나의 삶을 중앙이 원하는 대로 각색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지방에 사는 것은 시공간이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중심주의에 민망함을 느끼는 서울 사람은 ‘지방’이라고 말하곤 서둘러 ‘지역’이라 고치지만, 서울 또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는 어렵다. 한쪽은 선망하고 한쪽은 민망해하는 가운데 신문에 이런 코너도 생긴 것일 테다.

지방을 주제로 매체에 글을 쓸 때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다. 지방에 관한 거라면. 하지만 무엇이 지방 이야기이고 무엇은 지방 이야기가 아닌가? 서울 사람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중심이고 보편이기에 서울 사람이 하는 서울 이야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지방은 할당된바, 그 안에서 서울 사람이 듣기를 기대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를테면 격차(그렇긴 하지), 고충 이해(힘들겠다), 놀라움(크리스피크림이 없다고?), 달콤한 전환(나 지역 문제에도 관심 있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사람은 지방을 소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관점이다.

지역이 관점이 되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넘치는 서울과 아무튼 비어 있는 지역을 오가며 이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왜 이렇게 다를까, 다른 요소는 어떻게 다른 삶을 만들고 다른 정서를 만들고 다른 꿈을 만들까. 관점이 생기면 충청도 사람이 진짜로 느리고 의뭉스러운가 궁금해하기보다 서울의 공간적 위상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도서관과 명사와 온갖 데이트 코스로 우글거리는, 가도 가도 갈 데가 생기는 지역은 서울뿐이라는 게 이상해진다. 이건 숫제 서울이 나를 압도하는 느낌을 아는가 마는가 하는 문제다.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컨을 돌리면 채널이 100개가 넘어가는데 지방 방송은 있으나 마나라는 게 낯설어야 하고, 출연자들이 “강남에서 명동 금방인데” 하는 게 약비나야 한다.

서울이 곧 한국인 사람은 로컬리즘을 의식해야 하는 순간에만, 할당제가 있을 때만 지역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그만큼이 우리가 허락받은 지면이라는 듯이. 그러나 지방 이야기를 끼워주는 게 아니라, 딱 그만큼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늘 고려해야 하는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개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처럼 답을 구하는 질문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어디까지는 너그러워질 수 있겠다는 양보보다도, 나쁜 사람이 되는 느낌이 싫어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 서울이 독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이득을 나눌 수 있겠는지, 한 몸으로 누리는 편리를 얼마간 포기할 수 있겠는지 계산하고 입장을 정해야 한다. 감상에 젖는 건 태도를 정비한 다음에 하는 게 낫다.

은은한 향토 정취나 이웃 간의 훈훈한 정 같은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코너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 글 안에 충청도 방언을 몇 개 숨겨두었다. 표준어는 약속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두어왔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대로 썼다. 말은 화자가 듣는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여지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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