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대회 1등 파란눈 그녀..서울대 국악과 최연소 조교수 정체
"자막이 있는데 결국 안 봤어요. 한국어를 잘 몰랐을 때였는데도 다 이해되고 너무 재밌었어요. 소리의 표현력이 인상 깊더라고요."
지난 2013년 영국에 있는 한국문화원.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던 한 독일인 학생이 이곳에서 열린 판소리 공연을 봤을 당시의 소회다. 그 학생의 이름은 안나 예이츠(Anna Yateslu·32). 필수 과목이었던 전통음악 수업을 듣다가 티켓 값이 싸다고 해서 가본 공연은 그의 진로를 바꿨다.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였던 그는 이 공연을 본 뒤 모든 과제를 판소리란 주제로 제출했다. 그 후 한 달 뒤. 판소리를 더 깊게 연구하겠다는 결심으로 인류 음악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대학교 국악과 최연소 조교수가 됐다. 지난 29일 예이츠 조교수를 서울대 음악대학 1층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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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성 명창과의 운명 같은 만남
예이츠 조교수는 박사 과정 2년 차 때던 2015년 판소리 현장 연구를 위해 한국에 왔다. 대학생 때 여행에 이은 두 번째 한국 방문이었다. 현장 연구 1년 동안 그가 인터뷰한 국악가는 60명, 관람한 공연은 90개였다. 예이츠 조교수는 "공연을 찾아가서 보고, 끝나면 분장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선생님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며 "이때 민혜성 선생님을 만났다"고 말했다.
예이츠 조교수와 민혜성 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이수자)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예이츠 조교수는 "길을 가다 판소리 공연 홍보 포스터가 있길래 들어갔다"며 "어김없이 공연 후 분장실 앞에 있다가 선생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레슨 해줄 분을 찾고 있다고 하자 선생님이 '나한테 배워볼래?'라며 흥부가를 바로 시작하시더라. 결국 인터뷰는 못 했지만, 그날 첫 레슨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혜성 명창의 명성을 알고 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때는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도 몰랐다"며 "나를 가르쳐주겠다는 선생님이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갈수록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게 됐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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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지역 판소리 대회 1등도
민혜성 명창에게 수업을 받던 예이츠 조교수는 2015년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 지역 판소리 대회인 'K_VOX Festival'에 참가해 춘향가 중 이별가를 불러 1등을 했다.
그는 "나는 민혜성 선생님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연습하고 많이 배운 상황이라 좀 불공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판소리를 할 때 감정 표현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수업 때 선생님이 이 내용은 어떤 분위기, 어떤 상황이라고 설명해주면 개인 상황과 연결지어 생각했다"며 "이별가를 배울 땐 영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그 그리운 마음을 생각하며 불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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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향유층을 위한 깊이 있는 연구하고 싶어"
예이츠 조교수는 지난해 9월 만 31살에 서울대 국악과 최연수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서울대와의 인연에 대해 "국악을 공부하면 한국에서 처음 국악과가 생긴 곳인 서울대를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연구하는 사람끼리 서로 다 안다"며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고 했다.
예이츠 조교수는 인류 음악학을 널리 알려 국악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한국에서 아직은 발전되지 않은 '인류 음악학' 연구 방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또 공연을 기획했던 경험을 살려 국악을 홍보하고 싶은 포부도 있다. 그는 "유럽 곳곳에 전통적인 것을 좋아해 국악을 즐기는 향유층이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향유층을 봐야 한다. 홍보는 물론 국악의 깊이에 집중한 연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이츠 조교수는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다고 했다. 그는 "음악을 사회·문화의 한 부분으로 보며 체험 관찰 및 현장 연구하는 인류 음악학 연구 방법은 물론, 학생들이 세계에 나가 국악을 홍보할 수 있도록 영어 능력을 키우고, 본인에게 맞는 홍보 방식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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