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 美 '게임스톱' 뒤흔든 공매도,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현우 2021. 1. 3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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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서 처음 시작
만유인력 발견한 과학자 뉴턴도 전재산 잃어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국과 전세계 증시를 뒤흔들고 있는 '게임스톱' 광풍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매도 거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부터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허용되기 시작해 역사가 짧다보니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공매도 거래는 40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도 이로인해 전재산을 날린 것으로 알려져있을 정도죠.

30일(현지시간) CNBC 등 외신들에 따르면 전날 뉴욕증시는 게임스탑으로 인한 주식시장 과열 우려 등에 따라 일제히 급락세로 마감됐습니다. 다우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03% 하락한 2만9982.62로 한달 반만에 3만선이 무너졌죠. S&P500지수(-1.93%), 나스닥(-2.00%)도 모두 2% 전후 급락세로 장을 마쳤습니다. 반면 게임스톱 주가는 또다시 67.9% 폭등했죠. 게임스톱은 올초 이후 이날까지 1600% 이상 폭등했습니다.

이에따라 게임스톱 공매도 투자를 실행했던 헤지펀드사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주식을 빌려 고점에 판매했다가 폭락 후 주식을 재매입해 갚는 공매도 거래의 특성상 주가가 폭등하면 공매도 투자자는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이죠. 이 손실을 메꾸기 위해 미국 대형 헤지펀드사들이 미국, 유럽, 신흥국 증시 등에서 잇따라 대량으로 주식매도에 나서면서 세계증시가 동반 폭락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매도 거래는 주식시장에서 악의 축으로 불리고 있고 미국에서는 흔히 '월가의 탐욕'이라 비판받곤 합니다. 지난 2011년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서도 비판받으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막상 현대사회부터 활발해진 것 같은 이 공매도가 시작된 역사는 생각보다 매우 깁니다. 40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있어요.

공매도 400년 역사...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서 첫 시작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지부의 모습을 그린 기록화[이미지출처=네덜란드 국가기록원]

공매도의 역사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처음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로 알려진 곳이죠. 이 회사는 이른바 대항해시대라 불리던 당시 원거리 해양무역업을 배경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한 해운업에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인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 원거리 무역선은 가격이 엄청났습니다. 무역선단 하나를 만드려해도 무역선과 해적 및 적군으로부터 선단을 호위할 전투함, 병력 등을 고용해야해서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죠.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들은 공동투자 후 무역에 성공하면 해당 이익을 배당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 증서인 주권을 판매해 투자금을 끌어모았는데, 이것이 주식거래로 발전하게 됩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가 생겨나게 됐고, 각종 주식거래기법도 이때부터 출현하게 됐다고 하죠.

공매도 거래 수법도 이중 하나였습니다. 공매도는 위험 분산 방식 중 하나로 설계된 거래였는데 당시 원거리 해양무역이 변수가 워낙 많고, 특히 대서양 무역은 악명높은 카리브해의 해적들과 적국인 스페인의 군함들, 기상이변, 각국의 관세조치 변동 등으로 늘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위험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처음 유래한 뒤부터 상당히 많은 나라에서 거래수법 중 하나로 활용됐죠.

공매도거래는 아무래도 남들이 모두 파산해야 돈을 버는 거래였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에서는 매우 비겁한 거래로 매도됐고, 네덜란드 당국도 폭락을 유도한다며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빈번히 발생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당시에는 특히나 내부정보가 매우 제한된 개인투자자들의 광적인 투자로 주식의 거품이 절정으로 달했을 때, 정부 고위층과 유착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공매도로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 중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도 있었는데 그가 바로 만유인력의 아버지로 알려진, 과학자 뉴턴이었습니다.

전재산 날린 뉴턴..."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아이작 뉴튼의 초상화 [이미지출처=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홈페이지]

뉴턴은 1720년 '남해주식회사(The South Sea Company)'라는 기업 주식에 투자했다가 전재산을 날린 일화로 유명한데요. 당시 이 회사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나서 현재도 유럽 근대사에서 비중있게 다루곤 합니다. 이 기업은 원래 영국과 남미 식민지역간의 독점교역을 이끌 목적으로 세워진 공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과 남미지역 사이에 놓인 카리브해 일대 섬들과 멕시코 일대가 모두 영국과 적군인 스페인의 영토였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교역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군과 함께 스페인의 무역봉쇄를 뚫고 교역을 할 공기업을 따로 세웠던거죠.

그런데 스페인의 방해공작이 집요하게 전개되면서 남해주식회사는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게 됐고, 이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그것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던 자사 주식 일부를 대중들에게 공개매각하고, 이 투자금으로 영국의 국채를 다시 매수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영국정부도 프랑스와의 전쟁을 준비하며 막대한 전쟁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해주식회사의 기업공개(IPO)를 적극적으로 도왔죠.

문제는 남해주식회사가 투자금 유치를 위한 광고를 과도하게 전개하면서 시작됩니다. 남미 식민지에서 금광이 발견됐다거나 스페인, 포르투칼 등에서 은광채굴권을 얻었다는 등 근거없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기 시작하죠. 이로인해 1720년 6월 100파운드로 시작한 남해주식회사의 주가는 두달도 채 되지 않아 1000파운드까지 10배나 치솟게 됩니다. 남해주식회사가 계속 증자를 하며 주식 판매를 시작하자 일반 서민들은 물론 정부 관료들도 너도나도 투자하기 시작했죠.

당시 영국 조폐국장이었던 뉴턴도 여기에 혹해 이 회사에 막대한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8월 고점을 기록한 이후 영국정부 내에서 고위관료들이 주식을 팔아치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남해주식회사의 투자금은 다시 영국 국채로 들어가는 구조라 설마 정부 관료들이 그런 일을 할리가 없다며 오히려 더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투매를 하게 됩니다. 뉴턴도 이때 자신의 전재산에 일부 빚까지 지면서 투자에 열을 올리게 됐죠.

그러나 9월이 되면서 거품은 순식간에 꺼지게 됐습니다. 남해주식회사의 남미 식민지에 벌레만 들끓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는 다시 100파운드까지 밀리게 됐죠. 남해주식회사와 유착돼 이미 공매도 거래를 준비해놨던 일부 고위관료들은 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공직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으로 가게 됐습니다. 전재산을 잃은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고, 이 말은 오늘도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주요한 격언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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