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한국형 빌보드 차트'는 왜 한순간 사라졌을까

김상화 2021. 1. 3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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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예능] IMF 불어닥친 1998년 2월 종영된 '가요톱10'

[김상화 기자]

 1981~1998년에 걸쳐 방영된 KBS '가요톱10'의 한 장면.
ⓒ KBS
 
얼마 전 방영된 MBC 예능 <라디오스타>엔 모처럼 반가운 얼굴이 출연했다. 과거 KBS의 간판 음악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 MC 손범수 아나운서(1993.5~1998.2)가 그 시절 숨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추억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가요톱10>이 처음 등장했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 TV 예능은 코미디, 그리고 쇼(음악)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됐다. 

주말 저녁을 장식했던 <쇼쇼쇼>, <쇼 토요특급>(이상 KBS), <쇼 2000>,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이상 MBC) 등이 인기 가수들의 다양한 무대에 콩트를 곁들인 버라이어티 쇼 형식을 취했던 것과 달리, 매주 수요일 생방송으로 방영된 <가요톱10>(1981.2.11~1998.2.12)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위제 방식으로 짜여진 그 시절 대표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대표적 장수 MC , 1980년대 임성훈·1990년대 손범수
 
 1981~1998년에 걸쳐 방영된 KBS '가요톱10'의 한 장면. 임성훈(1980년대), 손범수(1990년대) 등이 MC로 맹활약한 대표적인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었다.
ⓒ KBS
 
지금은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걸쳐 지상파, 케이블 채널에서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지만, 40년 전 1981년 기준으로는 <가요톱10>이 국내 유일한 음악 순위 프로였다. 방송 통폐합으로 KBS와 MBC 단 두 곳의 방송사만 존재하던 그 시절 <가요톱10>은 가요계 인기 판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  

뒤늦게 MBC가 1989년 <쇼 네트워크>를 시작으로 <여러분의 인기 가요>, <결정! 최고 인기가요> 등을 선보였고 후발주자 SBS도 < SBS 인기가요 >, <생방송 TV가요 20>을 방영하는 등 KBS에 도전장을 내밀긴 했지만 적수가 되진 못했다.  

17년 동안 여러 명의 진행자가 <가요톱10>을 담당했지만 지금까지 기억되는 인물은 두 명으로 압축된다. 1981년부터 약 9년 동안 MC를 맡아준 임성훈 (1981~1990), 그리고 최종회까지 5년 가까운 시간을 책임진 손범수가 그 주인공이다.  

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여... 일종의 훈장 역할
 
 1981~1998년에 걸쳐 방영된 KBS '가요톱10'의 한 장면.
ⓒ KBS
 
<가요톱10>만의 특별함을 상징하는 존재는 바로 골든컵이었다.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곡에게 골든컵을 수여하면 순위에서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명예 졸업장' 혹은 '훈장'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 골든컵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해 등장한 수많은 인기곡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라는 의미였다. 1장의 음반에서 2곡 이상의 골든컵 수상작이 등장하거나 한 해 두 차례 이상 골든컵을 받는다면 해당 가수는 그 해를 빛낸 최정상의 가수로 간주해도 무방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없진 않았다. 여전히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데 5주 연속 1위를 했다는 이유로 순위에서 사라지다 보니 다음 주 어부지리로 1위를 차지하는 노래가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1992년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SBS에선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수립했지만 KBS에선 골든컵 수상으로 자동 제외되는 식의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이밖에 '5주 연속 1위'라는 규정 때문에 4주 1위-1주 2위-1주 1위를 기록하게 되면 총 5주 1위에 올랐어도 골든컵을 받지 못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0년 당시 <가요톱10>은 지역별·연령별 투표인단 2800명을 선정하고 그 중 200여 명이 선호하는 노래를 엽서로 취합한 후 가요 담당 PD들의 추천곡들을 일정 비율로 반영하는 방식을 취해 매주 순위를 발표해왔다. 이어 1990년대 중반 들어선 PC 통신, 전화 ARS를 활용한 집계가 도입되는 등 <가요톱10>은 시대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추구해 온, 제법 진일보한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옛 추억이 된 엽서 집계, 립싱크 표기
 
 1981~1998년에 걸쳐 방영된 KBS '가요톱10'의 한 장면.
ⓒ KBS
 
한 해 동안 발표되는 음반과 노래의 숫자가 지금에 비해 현저히 적었던 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순위제 방송으로서 신뢰도와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데엔 체계적 틀을 지닌 집계 방식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러한 운영 덕분에 김수희의 '애모'(1993)가 당시 인기 절정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꺾고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김지애, 태진아, 노사연, 이무송 등 트로트 혹은 성인 취향 노래들이 골든컵을 받는 등 <가요톱10>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큰 사랑을 받는 음악 프로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렇듯 1980~1990년대에 걸쳐 KBS의 간판 예능 중 하나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가요톱10>이었지만 종영의 아픔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 기준에선 다소 어이없던 일 중 하나가 IMF 사태 당시 빚어진 각종 예능, 드라마 프로그램의 연이은 폐지였다.  
공영방송 KBS는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은 국민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며 1998년 2월 여전히 인기 있었던 <가요톱10>의 폐지를 결정했다. 립싱크를 하는 가수들이 등장하면 화면 우측 상단에 테이프 움직이는 아이콘을 삽입하기도 했던 <가요톱10>은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건 후속 프로그램 <브라보 신세대>가 별 반응을 얻지 못하자 불과 4개월 만인 1998년 6월 <뮤직뱅크>라는 유사 프로그램을 부활 시켰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뮤직뱅크>가 22주년을 맞이하며 <가요톱10> 의 17년 역사를 앞지르긴 했지만 그 시절의 인기와 권위 등에 비춰볼 때 미흡한 게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그때의 섣부른 결정을 꼬집는 예전 시청자들의 섭섭함도 조금은 이해될 법하다. 23년 전 사라진 <가요톱10>의 이름이 아직도 회자되는 건 요즘 음악 순위 프로가 그만큼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의 표현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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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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