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자와 교도관 사이의 '묘한' 공감대

김준모 2021. 1. 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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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빌로우 제로>

[김준모 기자]

 
 <빌로우 제로> 포스터
ⓒ 넷플릭스
 
범죄 영화를 보면 클리셰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범죄자를 이감하는 과정에서 후송차량이 습격을 당하고, 범죄자는 외부의 도움을 통해 탈출한다. <빌로우 제로>는 이 클리셰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전개한 작품이다. 범죄 스릴러 장르의 천국 스페인에서 제작한 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흥미진진한 전개에 범죄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에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에 조명한다.  
경찰 마틴은 오랜만에 범죄자들을 이송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경력이 풍부한 마틴은 외유내강의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외모만 보면 온순하고 나약할 거 같으나, 긴급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줄 안다. 그는 이송을 앞둔 범죄자의 도발에 흥분하는 동료 마욜을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마욜은 마틴이 너무 유하다고 하지만, 이후 긴급한 사태에 마틴의 대처는 사태를 최악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빌로우 제로> 스틸컷
ⓒ 김준모
 
안개가 자욱한 밤, 숲길을 통해 이송차량을 몰던 마틴과 마욜은 앞서 이동하던 차량이 무전을 받지 않자 의아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차량은 타이어에 무언가 걸리며 길가에 멈추게 된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차량 밖으로 나온 마욜은 누군가로부터 총격을 당한다. 긴박한 상황임을 알게 된 마틴은 총알이 자신의 다리에 박히고, 차의 유리창을 깨뜨리려 하자, 죄수들이 탄 수송 공간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한다.

한편 수송 공간 안에 갇힌 범죄자들은 탈출 작전을 세운다. 내부에서 수갑을 푼 라미스는 문을 열고 탈출의 기회를 엿본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차가 정차하고, 상처 입은 마틴이 들어오자 범죄자 중 한 명인 나노의 동료들이 구하기 위해 온 것이라 생각하고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범죄자들에 의해 대치 상황에 몰리게 된 마틴. 이때 그들 사이에 기묘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범인의 정체다.

범인은 경찰무전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틴을 공격하라 지시한다. 이 목소리를 들은 범죄자 치노는 차량 문을 열려는 범죄자를 죽이고 열쇠를 집어삼킨다. 알고 보니 치노는 누명을 쓰고 수감되었으며, 그 누명을 씌운 사람이 경찰이란 것이다. 무전으로 들려온 목소리가 그 경찰이며, 자신이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기 전에 죽이려고 습격했다는 것. 하지만 탈출이 우선인 범죄자들은 치노를 압박하며, 그와 마틴을 한 공간에 가둔다.   

 
 <빌로우 제로> 스틸컷
ⓒ 김준모
 
이 과정에서 작품은 독특한 감정선을 보여준다. 한 공간에 갇힌 마틴과 치노 사이에는 묘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마틴은 외부에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같은 경찰을 적이라 생각하고 치노를 지켜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 범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경찰이 협조하는 모습은 다소 급한 전개라 보일 수 있지만, 외부에서 가해지는 공격과 치노와 한 공간에 수감되면서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는 점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런 유대감은 범죄자들에게도 나타난다. 초반 범죄자들은 각자도생의 모습을 보인다. 혼자 도망칠 생각을 하던 라미스는 마틴을 홀로 제압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다른 수감자들을 풀어준다. 이때 이들은 같은 수감자가 죽어도 감정적인 이입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팀을 이루면서 이송차량에서 탈출을 시도하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부터는 누군가 죽었을 때 슬픔과 절망의 감정을 표한다.  

이런 감정이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희생의 단계에 이른다는 점은 묘한 느낌을 준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 대상에 대해 알게 되고, 관계를 맺으면 무의미한 존재가 의미를 지니게 됨을 보여준다. 죄에 대한 심도 높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 중에는 교도관과 죄수 사이의 감정적인 교류와 존재성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빌로우 제로> 스틸컷
ⓒ 김준모
 
이 작품은 독특하게 범죄 스릴러의 장르에 충실하면서 이런 심도 높은 관계의 설정을 선보인다. 그저 번호로 불리는 범죄자였던 이들은 마틴과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의 존재에 의미를 지니게 된다. 처음에는 목적에 따라 협력하는 전개를 선보이지만, 극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들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후반부에 이런 감정을 한 번 더 비틀며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는 점은 극적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미덕을 보여준다.  

<빌로우 제로>는 범죄영화에서 클리셰 단계에만 머물렀던 소재를 장편으로 늘리는 모험을 한다. 이 모험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기 위해 대치전과 추격전 등 장르적인 매력을 살리면서 극한 상황을 통해 서스펜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드라마에 있어 이전과 다른 신선한 관계설정을 통해 심도 높은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인 매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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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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