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반려견이 떠났어요" 펫로스 휴가, 가능할까 [개st상식]
가족, 친구를 상실한 듯한 괴로움
펫로스 휴가는 극소수..상사의 공감대에 달려
두달 전 직장인 김씨(29)는 11살 반려견 해피의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며칠 전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해피가 재택근무를 하던 김씨의 품에서 숨을 거둔 겁니다. 공황상태에 빠진 김씨는 회사에 “사랑하는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너무 괴롭다”고 보고했고 부장의 배려로 그날 장례식을 치릅니다. 부산에 출장 중이던 동생은 개를 기르는 사장이 배려해준 덕분으로 곧장 서울행 비행기를 탔고요.
펫로스(Pet Loss,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겪는 슬픔)는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김씨는 “선배의 도움으로 마무리했지만 한동안 무슨 정신으로 일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면서 “동생은 비반려인 동료로부터 개인 사정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지 말라는 눈치를 받았다”고 호소합니다.
10여년 함께한 식구, 반려동물의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반려인 1500만명 시대를 맞이해 펫로스를 대비한 제도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외국에서도 펫로스 휴가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으나 반려인에게 위로휴가를 제공하자는 논의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반려동물의 사망 혹은 실종 뒤에 겪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반려동물을 잃었다는 절망감, 분노, 슬픔, 자책감, 우울감, 현실부정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이죠.
학계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자식, 친구의 죽음에 비교합니다. 펫로스 연구의 권위자인 윌러스 사이프 박사는 저서 ‘반려동물의 죽음’에서 “반려견을 돌보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면서 “개의 죽음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죠.
특히 반려동물이 죽으면 함께 쌓은 추억 혹은 잘 키웠다는 뿌듯함보다는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몰려온다는 것이 사이프 박사의 분석입니다. 그는 “반려동물의 죽음 뒤에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실패감이 자라난다.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유명 배우가 반려견의 죽음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한 뒤 많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의 배우 미란다 하트는 반려견 페기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하트는 페기와의 일상을 담은 자서전을 낼만큼 평소 사이가 각별했죠.
하트는 개인 SNS 글에서 “사랑하는 내 반려견 페기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와 산책할 때면 팬들이 알아보고 ‘세상에, 페기잖아’라며 반겨줬다”고 회고한 뒤 “개인적인 추모를 하기 위해서 활동을 중단한다. 애도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남겼습니다. 팬들은 “응원한다” “당신이 얼마나 페기를 사랑했는지 우리는 안다”는 1만여 개의 댓글을 달았고요.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슬퍼할 틈이 없습니다. 가디언지는 “대부분의 회사는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 직원에게 휴가를 주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펫로스 상담사 다이앤 제임스는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휴가를 주는 고용주는 극소수”라고 설명합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매년 늘어납니다. 제임스의 경우 5년 전 1000여명이던 상담신청이 지난해 1만42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1년전에 비해 상담 요청은 40%나 늘었습니다. 제임스는 “반려동물을 잃은 것이 직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최선의 선택은 무급 휴가를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펫로스는 비반려인으로선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슬픔입니다. 밀리 코다로 텍사스주립대학 교수는 2012년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펫로스를 ‘공감받지 못한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심리학 칼럼니스트인 애슐리 레더러는 지난 2019년 12월 칼럼에서 “사회는 여전히 반려동물의 죽음을 인간의 죽음보다 가볍게 여긴다”면서 “펫로스의 고통이 공개적으로 애도받지 못하는 슬픔으로 그친다”고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공감대의 저변은 분명 넓어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함께 안타까워하는 동료는 늘어났습니다. 불과 10년 새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란 단어가 익숙해진 것처럼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도 곧 찾아올 겁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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