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부터 홍콩인, 영국 5년 거주+시민권 가능..헥시트 본격화?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뒤 수십 년에 걸쳐 많은 중국인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왕가위 감독이 2000년에 선보인 영화 '화양연화'는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1962년 홍콩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왕가위 감독 자신이 1958년 상하이에서 태어났지만 1962년 홍콩으로 이주해 홍콩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뒤 중국인들은 대규모로 홍콩으로 이주했다. 중국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톈안먼 사태 뒤 수년에 걸쳐 100만 명이 넘는 중국인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톈안먼 사태로 홍콩인들의 홍콩 중국 반환에 대한 걱정은 더 커졌다.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5), 첨밀밀(1997) 등의 영화가 쏟아졌다.
영국과 중국은 1984년 12월 홍콩 반환 협정에 서명하고 1985년 협정을 발효시켰다. 영국은 홍콩 반환 협정을 맺은 뒤 1987년부터 홍콩인들에게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발급했다. 홍콩인들은 실망했다. 영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밖에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을 하거나 정착할 수도 없었다.
중국은 1997년 7월 홍콩을 돌려받은 뒤 홍콩 반환 협정 당시 천명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내세워 홍콩인들을 달랬다. 하지만 2003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시도해 홍콩인들의 반발을 샀고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등으로 계속 홍콩 시민들과 충돌했다. 2003년 홍콩 정부를 통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다 실패한 중국은 지난해 5월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홍콩판 '국가보안법(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정부가 홍콩 내정에 직접 개입하고 홍콩 내 반중(反中) 세력을 감시·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일국양제가 무너졌고 홍콩의 민주화도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은 홍콩보안법에 반대해왔다. 전인대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자 지난해 7월 이민법을 개정해 BNO 여권을 보유한 홍콩인들에게 진짜 영국 국민의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에 5년 동안 거주하면서 일도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5년 거주 뒤에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도 부여해 다시 1년 뒤 시민권을 취득해 영국에서 영구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홍콩으로 탈출했던 중국인들이 다시 영국으로 탈출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BNO는 '헥시트(HK-exitㆍHong Kong+Exit)'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영국이 BNO 관련 법을 개정하자 BNO를 신청하는 홍콩인들이 급격히 늘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에만 6만명이 BNO를 신규 신청했다. 사상 최다였다.
영국 주택관리청은 홍콩 인구 750만 명 중 영국 이주 자격을 갖춘 인구가 최대 5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BNO 여권을 소지한 290만명에 이들의 자녀와 가족들이 250만명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홍콩인들은 30개월 혹은 5년짜리 BNO를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5년짜리 BNO는 1인당 신청 비용이 350파운드(약 54만원)다. 신청자는 영국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비용(immigration health surcharge)을 따로 내야 한다. 5년짜리 BNO를 신청할 경우 성인은 1인당 3120파운드, 18세 이하는 1인당 2350파운드다. 아이 두 명이 포함된 4인 가족은 총 BNO 신청 비용만 1만2000파운드(약 1836만원) 가량 드는 셈이다. 또한 은행 계좌, 영국에서의 직업, 임대 소득 등을 통해 최소 6개월 이상 영국에서 집을 구해 살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영국과 중국은 서로 홍콩 반환 협정을 어겼다며 다투고 있다. 중국은 홍콩 반환 후 홍콩인에게 다시 영국 거주권을 주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영국은 중국이 홍콩의 자유와 자치를 침해해 반환 협정 당시 약속한 일국양제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며 맞서고 있다.
BNO로 얼마나 많은 홍콩인이 영국으로 이주할 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영국은 향후 5년간 최소 1만명, 최대 100만명 이상에 이르는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향후 5년간 32만2400명이 영국으로 이주하는 것이며 이 경우 약 영국에 29억파운드의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항교협회(英國港僑協會·Hongkongers in Britain)는 3년간 이주 인원이 6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 홍콩 매체는 지난 6일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범민주진영 인사 53명이 체포된 사실을 꼬집으며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탄압이 거세질수록 영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더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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