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이 아니어도 괜찮아" 저예산 독립영화들의 SF 장르 활용법

류지윤 2021. 1.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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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규 주연작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 촬영 3일만에 끝내
비약적 발전이룬 SF 장르, 독립영화 자본이 아닌, 발상의 전환으로 승부

재난으로 위기에 닥친 지구와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장르는 상업 영화로 관객들과 자주 만났다. 1950년대부터 영화의 한 장르가 된 SF는 1970년대 '스타워즈' 시리즈가 화려한 특수 효과로 흥행을 거둔 이후에는 대규모 제작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스티븐 스필버그 'E.T', 마이클 베이 감독 '아마겟돈' SF 장르의 획을 그은 작품부터 현재의 '레디 플레이원', '인베이젼', '라스트 선라이즈'까지 SF영화는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돼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부족한 기술 수준으로 SF 장르 시도가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CG, VFX 등 특수 효과 기술이 발전하며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스크린으로 생생하게 옮겨놨다. 이에 '부산행', '#살아있다', '킹덤' 등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사랑 받는 영화들이 탄생했고 현재 VFX 전문 제작진 1000명, 제작비 250억원이 투입된 영화 '승리호', 공유 박보검 주연에 160억 제작비로 만들어진 '서복'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상업 SF 영화가 화려한 외형으로 주목받는 사이, 저예산·독립영화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SF 장르를 구축해 나갔다.


한국 SF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혹은 흥행에 실패한 명작이라 불리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24억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지구에 와 있는 외계인 납치라는 상상으로 사회의 계층간 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고문신이나, 폭력적인 신이 있지만 영화의 톤 자체는 무겁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거대한 폭발이나 우주선 없이도 고문 장치, 물파스, 외계 관련 서적 들의 미쟝센, 그리고 배우 백윤식, 신하균의 촘촘한 연기가 영화를 채웠다. 당시 7만명이라는 저조한 관객수로 상영을 마감했지만 현재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준비 중이다.


공간을 한정해 대사나 상황에 집중한 SF 영화들도 눈에 띄었다. 전인환 감독의 '종이인형'은 패션쇼 의상 착장을 위해 생산된 안드로이드 이야기를 그리는데, 의뢰인이 옷을 입고 쇼를 끝내면 곧바로 폐기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패션쇼장이 주 무대로 사용됐으며 존재로서의 존중보다 모델로서 옷을 입고 벗는 하나의 도구로 비쳐지는 폐션계 모순을 SF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지하 벙커에서 이뤄진다. 액체괴물이 지구인들을 몰살시키고 있는 가운데 8명은 액체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액체괴물이 8명 중 누군가의 몸에 들어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 의심하는 영화다. 8명의 캐릭터가 모두 색깔이 강하며 튀는 듯한 대사톤이 영화보다는 한 편의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는 SF 장르지만 CG 하나 없이 인간의 생존과, 위기가 닥쳤을 때 분출되는 이기심들을 코믹하게 발현돼 공감을 준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는 소재는 AI 시스템인 공상과학을 다뤘지만 가족 코미디를 지향해 SF 장르지만 어떤 영화못지 않게 현실을 기반으로 뒀다. 등장인물은 식물인간이 된 아빠와 딸, 그리고 아빠의 의식이 담긴 로봇이다. 로봇 속 아빠는 자상해 딸과 사이좋게 지내지만, 무뚝뚝했던 아빠가 깨어나며 일어나는 부녀의 갈등과 화합을 코믹하게 포착했다.


독립영화의 SF 활용법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다큐멘터리 방식을 차용하는 것이다. 김지욱 감독의 'UFO 스케치'는 실제로 UFO를 믿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진행된다. 인터뷰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잘 듣고 체험을 재구성했다.


박윤진 감독의 '내 언니 전지현과 나'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던 클래식 게임 일랜시아의 16년 차 고인물 감독이 망한 게임 세계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을 담았다. 박윤진 감독은 기존 게임 소재 영화들이 주로 3자의 시선으로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을 주목했던 점과 달리 오랫동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의 시선으로 그들만의 이야기는 활기 넘치는 목소리를 담았다. 박윤진 감독은 게임 유저들을 만나 인터뷰 방식으로 기획했다. 유저들이 게임 속 세상에 왜 아직도 머물고 있는지 답변을 통해 차가운 현실과 이상적인 사회의 거리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구직자'들은 영화 속에 인터뷰 형식을 삽입했다. 이 작품은 2220년 미래의 대한민국, 우연히 마주하게 된 진짜 인간과 인공 인간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함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편의를 위해 인공 인간을 만들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탓에 진짜 인간은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면서 삶의 이유와 정체성을 묻는다. 황승재 감독은 실제 100명의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재'에 대해 물은 인터뷰 장면을 곳곳에 넣었다. 영화가 말하는 삶과 죽음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재미있는 점은 2220년의 모습이 미래지향적이지 않는 현재의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항상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자동차가 날아다녀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이다.


저예산·독립영화들은 넉넉치 않은 제작비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차용, 변주를 하며 SF 장르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현실적인 예산에 맞추되 배우들의 연기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주로 꿰했다. 조악해 보일 수 있는 그래픽이나, 특수 효과를 오히려 B급 감성으로 녹이는 선택도 있었다. 박윤진 감독은 "크게 돈을 들이지 않는 SF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전제 하에 두고 최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고 전했다.

데일리안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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