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가정모 이현정씨 "힘드냐고요? 애들은 다 똑같아요"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2021. 1. 30. 20: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가정위탁 시작..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만 "공헌하려고 시작한 건 아냐"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다양한 방식의 양육이 가능하고 인정받는 사회 마련돼야 
위탁아이라는 편견 내려놓고 마을에서 함께 돌보는 일 중요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양천 아동학대 사건'으로 새해부터 여론이 뜨겁다. 피해 아동의 입양 전 이름을 따 '정인이 사건'으로 불린 참극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로 이어지고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안이 필요하다는 말이 넘쳐난다. 

하지만 아동학대를 확인한다 해도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시키고 아이를 보호할 장치가 현실적으로 매우 부족하다. 아동학대 이외에도 위기가정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킬 사회 문화적 배경과 제도 또한 매우 미흡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마을에서 관심 가져야 할 분야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위탁가정'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제도이다. 은평시민신문에서는 2014년부터 '위탁가정'을 시작해 현재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이현정씨를 만났다. 
 
 가정위탁으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이현정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뭔가를 공헌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가정위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현정씨가 꺼낸 말이다. 가정위탁이라는 말도 생소하고 그 말에 가려진 어떤 슬픔 혹은 어떤 위대함이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상상을 하던 기자에게 그녀는 웃으며 그러나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원래 어린이집을 운영했어요. 부모의 문제로 가정이 해체되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 마땅히 어디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찾다 가정위탁을 알게 됐어요." 

이현정씨가 가정위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3년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부모의 경제적 사정·이혼 등의 문제로 아이의 뜻과는 달리 어느 한 쪽의 부모를 따라가거나 조부모에게 맡겨지는 등의 모습을 보게 됐다.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좀 더 늦은 시간까지 보육을 맡아주는 정도 이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어린이집을 다닌 한 아이의 아빠로부터 더 이상 어린이집을 다닐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위기가정이었고 아이는 24시간 돌봄이 가능한 곳으로 보내졌다. 안타까웠지만 데리고 있겠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틀 뒤 아이 아빠로부터 아이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는 이씨 집 창고에 숨어있다 발견됐다. 당시 운영하던 어린이집과 이씨의 집이 인근이라 아이들이 종종 이씨 집 마당에서 놀기도 했다.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 아빠에게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울며 가는 아이를 보며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면 내가 돌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가정위탁제도를 알게 됐다. 가장위탁제도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보호 양육을 희망하는 가정에 위탁해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이와 친부모와의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입양과는 다른 제도이다. 

"서울시가정위탁센터에 연락해서 물어보고 남편한테도 얘기했어요. 남편도 제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고요. 그런데 저희 둘째 아이와 위탁아이 간에 일정 이상 나이 차이가 나야 해서 2013년도에는 포기하고 2014년이 되어서 다시 센터를 찾아갔죠."  

가정위탁을 희망한다고 해서 모두 대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정 수준의 소득이 있는지, 범죄경력은 없는지 등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게 양육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위탁가정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난 첫 번째 아이는 또래보다 표현력과 발달이 늦은 편이었다. 아이가 자극을 많이 받지 못해서 생긴 일이기에 금방 좋아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이는 2년이 채 되지 않아 친가정으로 복귀했다. 잘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명절 때 잠깐 연락하는 정도의 관계만 유지했다. 정들었던 아이를 보내고 난 후 2016년에는 두 번째 아이를 만나게 됐다. 

"처음 돌봤던 아이 아빠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또 다시 여러 가지 위기상황에 몰리게 돼 아이가 다시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죠. 다른데 보내지 말고 저한테 다시 보내 달라, 아빠가 괜찮아질 때까지 돌봐주겠다고 얘기하고 다시 저희한테로 왔어요." 

현재 은평구 내 가정위탁은 7가구다. 서울시가정위탁센터를 통해 서로 자조모임도 진행하고 교육도 받고 서로 정보도 주고받는다. 이현정씨가 자조회 모임 회장을 맡으면서 진학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다. 

"서로 지지해주자는 의미에서 시작했어요. 너희만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형, 누나, 엄마, 아빠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작은 금액인데도 정말 아이들이 좋아했고 그 모습 보면서 또 저희는 너무 뿌듯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활동이라도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건 아닐 터, 어떤 어려움이 있냐는 질문에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가정위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일거에 거둬내 버렸다. 

"애들 키우는 건 다 똑같아요. 아이 때문에 행복하고 속상하고 다 그런 거죠. 위탁아이들이라고 사춘기가 없을까요? 위탁아이여서 그렇다는 편견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바라봐주면 됩니다. 어른들은 이 과정을 지켜봐주면 되는 거고요."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 은평시민신문
 2020년 경남 창녕의 한 거리에서 발견된 한 아이는 온 몸이 멍투성이였고 손에 심한 화상을 입어 지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아동학대를 당했다. 아이는 친모와 의붓아버지의 심한 폭행과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4층 테라스에서 옥상으로 위험한 탈출을 감행했다. 

당시 부모는 "아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소리 지르고 반항해서 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소리 지른 배경이 바로 위탁가정에서 지낸 2년 동안의 생활이다. 아이는 위탁이후 원가정으로 복귀했지만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 속에 끔찍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현정씨는 창녕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위탁가정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보통 위탁이라고 하면 부모가 일정 비용을 내고 아이를 맡기는 위탁모를 생각하는데 이 과정에서 학대 등의 문제도 일어나서 위탁이라는 말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부가 못하고 있는 일을 위탁가정의 부모들이 대신해 하고 있다는 프라이드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부터 숨죽이고 움츠리게 되면 안 되고 주변 시선도 가엾고 불쌍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고요."

가정위탁의 소중함과 당당함을 갖고 있어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제일 불편한 점은 친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위탁가정 아이라는 증명을 하기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간단하게 온라인 등으로 대체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입소대기를 할 때도 위탁가정의 부모는 이를 신청할 수 없고 친부모가 해야 한다. 하지만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입소대기 신청이 불가능하다. 통장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답답할 때가 많다. 위탁가정을 지원하는 제도도 미흡한 상황이다. 상해보험도 위탁가정 부모 중 한 명만 지원되고 있어 좀 더 세심한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아이들 앞으로 나온 수급비를 쓰면 그것에 관한 증빙을 영수증을 다 붙여서 제출했다고 해요. 이거는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 앞으로 나온 비용을 사용하는 게 괜히 미안해서 적금을 들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에게 충분히 지원해주는 게 맞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위축되었나 싶어요. 만약 예전처럼 비용 사용에 제약이 있다면 마음이 많이 위축될 거 같아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중 꺼낸 입양관련 주제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등의 이야기로 입양아 취소·변경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상품도 아닌데 이런 말씀은 맞지 않고 정정해 주셔야 해요. 아이들이 다른 가정, 다른 위치에 태어났어도 그 존엄성은 같아요. 부모가 아이를 선택하는 게 아니고요 준비가 되고 소양을 갖춘 사람을 선택해서 아이들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 준비가 굉장히 중요한 거구요."

많은 사회문제가 그렇듯 아동학대도 당장의 미안함과 관심에만 집중되어선 안 된다. 모든 아이는 존엄하고 귀하다는 당연한 명제와 함께 어느 곳에서 태어났건 그 존엄을 잃지 않고 지켜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방식의 양육이 자리 잡고 인정받는 사회가 될 때 아이들은 그 품속에서 훌쩍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