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국제재판소 가도 일본이 불리할 수도"

조선혜 2021. 1. 3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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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호지 교수, '위안부' 피해자 승소 판결 토론회서 일본정부의 복잡한 속내 소개

[조선혜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고 배춘희 할머니를 비롯해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승소 이후) 일본 정부 내에선 이미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를 다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필요가 없다는 신중론이 나옵니다. 도쿄신문 등 많은 언론도 이런 얘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특히 국제재판이 시작된다면 일본군 문제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오히려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30일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한 말이다. 이날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판결 분석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개 방향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최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내의 복잡한 속사정을 전했다. 

지난달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가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한 이후 벌어진 일들을 상세히 소개한 것. 

호사카 교수는 "과거 독일로부터 강제 노동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2004년 이탈리아 법원은 독일에 배상을 명령했다"며 "결과적으로 2012년 ICJ에서 독일이 승소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것을 고려해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이 이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국이 ICJ 판결을 위헌으로 다시 판결해 오히려 그런 뉴스가 세계적으로 많이 보도된다면, 그것이 일본에 유리한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승소 가능성 있지만...일본 언론의 우려

그러면서 호사카 교수는 아사히신문의 '론좌'라는 유명 웹사이트에 올라온 일본 언론 보도 중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보도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22일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이 국가면제를 주장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모순된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 혹은 주권면제는 국가의 주권행위가 다른 나라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이 국가면제를 내세워 한국 법원 판결을 무효화하기 위해 국제소송을 제기한다면 위안소 경영이 국가의 행위임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라고 일본 언론에서 지적했다는 얘기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위안소 경영이 국가의 행위였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일본군의 관여만 인정했다"며 "그런데 해당 기사는 위안소 경영이 국가나 일본군이 아니라 민간업자의 행위였다면 오히려 주권면제를 내세우는 일본 쪽 주장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안부' 경영에 일본 정부가 관여한 사실은 일본 공문서에서 정확히 확인되기 때문에 ICJ에서 국가의 주권행위가 인정돼 일본이 승소할 가능성은 있다"며 "그러나 위안소 자체가 국가의 주권행위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한국 쪽 주장이 관철된다는 내용도 (해당 기사에)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러한 상세 내용을 한국이 세계에서도 알 수 있게 일본어, 영어 등으로 많이 보급해야 한다고 본다"며 "일본 사람 80%는 '위안부' 문제에 무관심한데, 이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일본 정부도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제법 위반? "구체성 없어, 정치적 선동"

 
 30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판결 분석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개 방향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조선혜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이 최근 한국 법원 판결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합당한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류광옥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는 "(최근 패소한) 피고가 국제법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피고는 해당 사건에 대해 법원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은 채 일본 외무성을 통해서만 의견을 드러냈다, 한국의 사법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일본의 헌법,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명시적으로 원고의 재판 받을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며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려면 위반 사항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구체성을 띠지 않은 채 위반을 주장하는 것은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5년여 만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승소를 이끈 변호인도 이번 재판과 관련한 일본 쪽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김강원 '김강원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번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걸림돌로 작용한) 여러 부분이 있었는데, 국외 공시송달 문제도 그중 하나였다"며 "일본의 경우 법무성 또는 외무성이 이를 제대로 받지 않고 계속 반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법행정학회에서 나온 민사소송법 조항을 인용해 이를 제출하니 재판부에서도 더이상 국외 송달 문제에 대해 저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 쪽에서 재판에 관련한 서류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난항을 겪었지만, 법리적으로 이를 돌파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국내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최근 유의미한 재판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소녀상에 일본 기업 패딩을 입히는 사건 등이 벌어졌다"며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아직도 이런 몰지각한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 광화문 역사박물관 내 '위안부' 기념관을 만들어 이번과 같은 유의미한 재판 결과를 학생들에게 전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눔의 집' 자원봉사자 양진아씨는 "법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정작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2015년 (일본 정부가 지급한 위로금 중) 일부는 남아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현재 할머니들이 사용할 방법이 있는지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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