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작전판] 이강인, 발렌시아 주전으로 못 뛰는 이유

한준 기자 2021. 1. 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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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은 후보 선수 중심으로 나선 세비야와 2020-2021 코파델레이 16강전을 풀타임 소화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2019년 FIFA U-20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 이강인(20, 발렌시아)은 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을까? 발렌시아는 어쩌다가 2부리그 강등을 걱정하게 됐을까? 2020-2021시즌 발렌시아와 이강인에게 일어난 일을 샅샅이 살퍼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 발렌시아는 어쩌다 강등 위기에 놓였나


92년 라리가 역사에 우승을 차지한 팀은 단 9개 팀이다. 이 중 2회 이상 우승한 팀은 겨우 6팀. 발렌시아는 역대 6회 우승, 6회 준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34회 우승, 바르셀로나가 26회 우승을 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0회,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가 8회로 발렌시아는 역대 5위에 드는 팀이다.


1919년 창단한 발렌시아는 라리가가 출범한 1928-1929시즌 2부리그에서 시작해 세 시즌 만인 1930-1931시즌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라리가 1부리그로 올라왔다. 1942년 첫 라리가 우승을 이뤘고, 1947년까지 3회 우승을 기록했다. 1971년에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이뤘다.


꾸준히 상위권 순위를 유지하던 발렌시아가 무너진 해는 1986년이다. 1979년 코파 델레이 우승, 1980년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뤘던 직전 시즌 리그 9위 팀이 16위까지 추락하며 창단 후 첫 강등을 경험했다. 발렌시아는 1986-1987시즌 곧바로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복귀했고, 2019-2020시즌까지 35년 간 강등과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


1999년 코파델레이 우승, 2000년과 200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연속 준우승, 2002년과 2004년 라리가 우승 및 2004년 UEFA컵 우승으로 전성시대를 연 발렌시아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양강 두도를 이룰 때도 '인간계 최강'으로 불리며 세 시즌 연속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비상이 이뤄지며 3강 구도가 형성됐지만 2017-2018시즌, 2018-2019시즌 내리 4위를 차지했고, 2019년에는 바르셀로나를 결승전에서 꺾고 코파델레이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랬던 발렌시아의 급격한 추락은 2019-2020시즌 초 결과적 측면에서는 경질될 이유가 전혀 없는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을 쫓아내며 시작됐다.


2019-2020시즌을 마르셀리노 감독과 시작한 발렌시아는 프로 1군 감독 경력이 없었던 알베르트 셀라데스를 선임했다가 결국 성적 부진으로 해임하고 보로 곤살레스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2020-2021시즌에는 왓퍼드에서 경질된 이후 새 팀을 찾전 하비 그라시아 감독을 선임했다. 피터 림 구단주와 아닐 머시 회장이 마르셀리노 감독을 해임한 이유는 구단의 방향성이 '유스 중심 점유 축구'였음에도 베테랑 중심 4-4-2 전술을 고집한 이견 때문이다.


셀라데스 감독은 부임과 함께 유연한 4-3-3 포메이션을 4-4-2 포메이션과 혼용하며 이강인을 중용했다. 22라운드까지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2월 들어 치른 헤타페전부터 10경기에서 겨우 2승 밖에 거두지 못하며 부진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에서 회복한 이강인의 출전 빈도도 줄어들었다. 보로 대행 체제에서 이강인은 다시 출전 기회가 늘었고, 발렌시아는 마지막 6경기에서 2승 1무 3패를 기록하며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엘체전 대비 기자회견 중인 하비 그라시아 발렌시아 감독. 발렌시아 제공.

 ▲ 하비 그라시아는 왜 이강인을 쓰지 않게 됐나


발렌시아 수뇌부의 생각은 이강인을 통한 유스 중심 구단 재건 및 소유 축구와 더불어 안정된 수비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수 년 간 발렌시아가 익숙했던 4-4-2 수비 구조의 전문가인 하비 그라시아를 선임하면서 이강인의 전술적 중용을 당부했다. 그라시아 감독은 프리시즌 기간 이강인을 처진 공격수로 배치한 4-4-2 포메이션을 통해 수비 시 4-4-2, 공격시 4-4-1-1의 구조로 구단주의 지침에 따랐다. 레반테와 개막전에 이강인이 선발로 뛰며 막시 고메스와 보인 호흡, 그리고 4-2 승리는 2020-2021시즌을 장밋빛으로 보이게 했다. 


초반 4경기 성적이 2승 1무 1패로 준수했던 발렌시아는 레알 베티스, 비야레알, 엘체를 상대로 3연패를 당하며 부진에 빠졌다. 이 시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이강인이 셀타 비고와 2라운드 원정 경기 당시 직접 프리킥 기회를 두고 주장 호세 가야와 언쟁을 벌인 일이다. 이강인은 전반 종료 직후 교체됐고, 베티스전부터 이어진 3연패 과정에 모두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이 시점이 중요한 것은 10월 5일에 2020년 유럽 축구 여름 이적 시장의 문이 닫힌 것이다. 그라시아 감독이 구단주와 회장의 의견에 따라 이강인을 2선 주전 공격수로 기용하며 부탁한 것은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영입이다. 발렌시아가 다니 파레호와 프란시스 코클랭을 이적시켰고, 조프리 콘도그비아도 이적 시킬 계획이었으며, 당초 엘리아킴 망갈라도 방출 리스트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시아 감독은 왓퍼드 시절 좋은 기억이 있었던 에티엔 카푸와 세리에A에서 검증된 피오렌티나 센터백 헤르만 페첼라를 원했지만 두 선수 모두 영입에 실패했다. 콘도그비아 헙의가 10월 5일 내 이뤄지지 못했고, 망갈라가 부상을 당해 정리하지 못했으며, 또다른 방출 대상이었던 고액 연봉 네덜란드 대표 골키퍼 야스퍼 실러선도 부상으로 인해 잔류했기 때문이다. 


출전 기회가 절실한 이강인, 코로나19 타격이 원인이 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프랑스 공격수 케빈 가메이로도 매각해 인건비 지출을 줄이려 했으나 실패했고, 데니스 체리셰프의 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 이적 협상도 무산됐다. 정리할 수 있는 선수가 나갔다면 그라시아 감독이 요청한 윙어,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영입이 가능했을 것이다.
원하는 선수 영입이 무산되자 그라시아 감독은 프리시즌 기간 플랜A로 설정했던 이강인을 로테이션 션수로 내리고 경기 방향을 소유에서 철저한 선수비 후역습으로 바꾼 뒤 막시 고메스의 파트너로 마누 바예호, 곤살루 게드스, 케빈 가메이로 등 빠르고, 직선적이며, 결정력에 강점이 있는 선수를 선호했다. 


발렌시아가 상대 팀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경기나, 후반전 변화를 위해 교체 투입하는 상황이 아니면 이강인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2020-2021시즌에 1군으로 올라온 만 17세 유망주 유누스 무사, 2군 선수로 최근 1군 계약을 맺은 알렉스 블랑코 등 이강인보다 경험과 퀄리티가 부족한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늘어난 것도 그래서다.


스페인 현지 관계자들은 원하는 영입을 이루지 못하자 자신의 게임 플랜으로 성적을 내기 어려워진 하비 그라시아 감독이 사임을 원했지만 구단이 300만 유로(약 41억 원) 위약금을 요구해 잔류했다고 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라시아 감독이 본인의 경력에도 해가 될 태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비 그라시아 감독 체제 발렌시아 포진도. 

▲  이강인 선발 출전, 전술 구조적 고민


구단과 감독의 알력 다툼에 이강인의 새우등이 터지는 형국이지만, 중요한 것은 발렌시아가 구조적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라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우루과이 공격수 막시 고메스의 슬럼프, 최근 리그 11경기에서 1승(바야돌리드전 승리에도 이강인이 선발 출전했다)밖에 거두지 못한 부진은 그라시아 감독이 올 시즌 꺼내든 두 번째 게임 플랜의 실패를 의미한다.


발렌시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재정적 직격탄을 맞았다. 감독은 1월 이적 시장에도 영입을 원하지만, 발렌시아는 올 시즌 안에 투자는커녕 2,000만 유로(약 271억 원) 가량의 선수단 인건비 적자액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아틀레티코로 콘도그비아를 긴급 이적 시켜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라시아 감독은 자신을 선임할 때 약속한 선수 영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을 표출하기 보다 구단의 방향에 따라 최선의 경기력과 성적을 내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바야돌리드전과 오사수나전에 내리 이강인을 선발 투입 발렌시아는 2선에서 볼 배급이 훨씬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이는 코파델레이 일정을 병행하는 과정과 더불어 곤살루 게드스의 퇴장 징계, 케빈 가메이로의 부상이 겹쳐서 내려진 결정이다. 그라시아 감독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라시아 감독은 세비야와 코파델레이 16강전에 이강인을 풀타임 출전시켰는데, 그러면서 함께 뛴 선수는 루벤 소브리노, 코바 코앙드레디, 알렉스 블랑코, 크리스티안 리베로 등 2진 선수들이었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와 중요한 라리가 경기에 이강인은 결장했다. 그리고 라리가 19위 엘체와 경기가 다가온다. 발렌시아는 엘체와 승점 차이가 3점에 불과하다. 이 경기에서 패할 경우 강등권 추락 위기에 직면한다. 아틀티코전과 엘체전이 6일 간격이라는 점에서 기존 주전 선수들의 중용이 예상된다. 


스페인 신문 수페르데포르테가 전망한 엘체전 예상 라인업.

발렌시아 소식에 가장 정통한 매체인 스페인 스포츠 신문 '수페르데포르테'는 1월 30일자 신문에서 엘체전은 발렌시아와 그라시아 감독에게 "결승전같은 경기"라고 했다. 예상 선발 명단에 든 공격수는 막시 고메스와 바누 바예호다. 카를로스 솔레르가 공격형 미드필더, 우로시 라치치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서고 다니 바스와 데니스 체리셰프를 좌우 윙으로 둔 그라시아 감독의 베스트 11이 가동된다.


솔레르는 이강인이 없을 때 가장 패스 전개가 좋은 선수지만 파이널 서드 지역에서 패스 티이밍과 정확성이 이강인에 비해 부족하다. 물론 솔레르는 활동량과 스피드, 피지컬에서 이강인에 앞선다. 솔레르가 오른발을 쓰고 이강인이 왼발을 쓰며, 둘의 장단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둘은 함께 뛰어야 시너지가 나는 선수들이다. 


막시 고메스가 마누 바예호와 함께 뒤면서 마무리 기회를 많이 잡기보다 희생적으로 뛰게 되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바예호보다 이강인이 선발 선수에 적합할 수 있다. 


바스를 우측에 두지만 인사이드 미드필더 역할을 주고, 보유한 윙어 중 가장 수비력이 좋은 체리셰프를 선발 레프트윙으로 쓰는 그라시아 감독의 선택에도 합리성은 있다. 바스와 체리셰프가 측면에 서지만 득점력이 부족하기에 바예호를 선발로 쓰려는 생각 역시 일리는 있다. 


발렌시아는 좌우 풀백 티에리 코헤아와 호세 가야도 적극적으로 측면 공격에 가담 시킨다. 게드스를 왼쪽 측면 공격수로 둘 경우 역습 상황에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게드스도 이강인처럼 첫 번째 옵션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이강인은 뛰고 싶어서 이적을 추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주인공 되기 어려운 이강인, 여름 이적 시장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게드스도 이강인도 전방에서 수비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뿐이다. 게드스는 돌파력과 슈팅력에서, 이강인은 볼 소유 능력과 패싱력에서 바예호보다 우수하지만 선택 받지 못하고 있다. 바예호는 마무리 슈팅력과 침투만 강점인 공격수인데 활동량이 많고 빠르며 수비 가담이 부지런하다. 케빈 가메이로도 마찬가지다. 


결국 게드스와 이강인은 후반전에 기회를 노려야 한다. 발 빠른 유스 출신 윙어 유누스 무사가 있어 교체 출전 기회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라시아 감독의 선택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오른쪽 미드필더 제이슨이 우선 순위로 선택되는 경우다. 제이슨은 윙백으로도 배치가 가능해 결국 수비를 고려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그라시아 감독이 너무 보수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이 이강인의 우선순위를 뒤로 처지게 한다. 이강인과 함께 조금 더 도전적인 축구를 보고 싶지만 강등 위기에 처한 그라시아 감독에게서 모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적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강인은 레알베티스, AS모나코의 구체적 제안을 받았다. 발렌시아는 최소한 1,000만 유로(약 136억 원)에서 1,500만 유로(약 203억 원) 이적료를 원하는데 두 팀 모두 근접하지 않은 액수를 제시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랭피크마르세유와 바이에른뮌헨 등 유럽의 명문 구단들은 이강인이 2022년 여름 자유 계약으로 풀릴 경우 이적료 없이 투자해볼 생각을 갖고 있다. 


이강인은 발렌시아의 재계약에 합의할 생각이 없기에 잔여 계약이 1년 남게 되는 2021년 여름 이적 시장 기간에 더욱 다양한 조건으로 여러 팀의 제안을 받을 수 있다. 좋은 팀을 골라서 이적하기 위해선 제한된 기회 속에도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강인은 출전하는 경기마다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진인사대천명. 이강인의 도전 끝에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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