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질겨진다" 214만명 생명 뺏은 19년생 코로나의 진화
나는 바이러스다. 2019년생 코로나19. 인류가 나를 만나 고생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네. 세월 참 빠르다. 누군가는 나를 가리키며 "전대미문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더군. 나 역시 내가 그런 막강한 존재가 될 줄 몰랐어. 전염병은 전쟁과 더불어 역사와 사회를 바꾸는 '메인 플레이어'라던데, 그 말을 나도 실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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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의 주인공 1년
나로 인해 1년 동안 희생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214만명을 넘었지. 1년 만에 누적 확진자 1억명(27일 기준)도 넘어섰고. 21세기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이유야. 그래도 사망자 숫자로는 역대 전염병 가운데 8~9위 정도 수준이야. 천연두(희생자 2500만~5500만명)나 흑사병(7500만~2억명), 스페인 독감(5000만명), 에이즈(2500만~3500만명)는 오랜 시간 인류에게 더 큰 공포였지. 하지만, 누가 알겠어? 내가 그 엄청난 질병들을 넘어설지.
1년 동안 인간들도 나에 대해 많이 연구했더군. 돌기 형태의 스파이크 단백질 '촉수'가 붙어 있는 바이러스란 걸 금방 알아챘어. 평균 지름 80nm(나노미터·100만분의 1㎜)로, 백혈구·적혈구보다 작은데도 말이야. 이렇게 작디작은 나 때문에 그 좋아하는 여행도 못 하고, 마스크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사는 인간들 심정이 오죽하겠어. 영화 '컨테이젼'이나 '감기' 속의 보이지 않는 공포가 오버랩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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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기능과 변이로 재무장
난 요즘 같은 날씨에 더 강해져. 춥고 건조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살 수 있거든. 추우니까 밀폐된 곳에 더 모이고 환기도 잘 안 하니까 공기 중에 떠다니며 여기저기 숙주를 옮겨 다니기 쉽지. 난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는 '인싸'인 셈이지. 그래서 서울 같은 대도시가 좋은가 봐.
서울은 대도시인데도 놀라운 특징이 있더라. 마스크 쓰라는 주의보를 너무 잘 듣잖아. 영역을 넓혀가기 불편한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방심하는 순간이 있더라고.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무증상' 작전을 쓰면 돼. 요즘엔 변이라는 것도 익혔어. 나에게 한 번 감염됐던 영국 총리(보리스 존슨)라는 사람이 겁을 좀 먹은 것 같더군. “변이 바이러스가 더 빨리 퍼질 뿐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치명률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글쎄, 나도 내가 어디까지 무서워질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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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야누스'
어떤 사람(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나를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라고도 부르더라. 젊은 사람한텐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가볍게 앓고 가는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노인한텐 과정이나 결과 모두 가혹한 악마라면서. 맞는 말 같아.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참 이기적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
나를 만난 뒤에도 고생하더군. 피곤하거나 호흡곤란이 오고, 탈모에 발기부전 증세도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이탈리아 로마대학교 에마뉘엘 자니니 교수 연구팀). 내가 폐렴이나 호흡기 감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혈관을 침범해 온몸에 퍼지는 '전신감염'이 증명되고 있지. 난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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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과의 승부
나 때문에 우울해진 사람도 많더라. 지난해 한국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은 사람이 100만명에 달할 거로 예상된다는 통계가 있어(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살에 대한 생각도 2018년 4.7%에서 지난해엔 13.8%로 늘었고. 나로 인한 경제적, 심리적 불안을 '코로나 블루'라고 부르더군. 내 탓만 하는 건 오히려 인간에게 해로울 거야. 산책도 하고 햇볕도 쬐고, 다른 사람들과 온라인이나 전화로라도 소통도 자주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도 해봐.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숙주로 삼는 것뿐이고, 인간의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
인간의 무기는 역시 백신이겠지. 마스크,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1차원적인 방법은 한계가 있을 거야. 백신이 ‘게임 체인저’가 될까. 나 역시 내 운명이 궁금해. 다음 달부터는 한국에서 백신 접종도 시작한다고 하니, 조만간 답이 나오겠지. 혹자(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나를 '거울'이라고도 하더군. 나를 통해 방역의 문제 지점을 점검해나가고,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약점을 돌아볼 수 있다고.
내가 쇠약해지더라도 내 형제나 친구가 언젠가 다시 한국을 찾아올 테니, 나를 거울삼으라는 말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 당장, 한국에서 변이가 생길 가능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거야. 승부처를 향해 가는 지금 피차 방심은 금물이겠지.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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