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볼링 전략이 필요한 방위산업

양낙규 2021. 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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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육군3사관학교 경영학과 교수]글로벌 방위산업에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룡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공룡들의 탄생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앞세워 세계 방산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전문화와 집중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먼저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1990년 초,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행하여 덩치를 키웠으며, 방산 부분에 대한 집중도도 높였다.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방산 기업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의 국방 부문의 매출액은 1998년 64%에서 2010년 93%로 국방에 대한 전문화와 집중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유럽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미국보다는 기업 통합이 늦었으나, 1990년 후반부터 미국과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유럽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의 방위산업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형태였다. 고가의 R&D 프로그램에 비해 너무 많은 유형의 기업들과 장비 수로 인해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지 못하는 상태였다. 즉 하나의 무기체계를 개발 및 생산하는데 너무 큰 단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방 부문의 효율을 향상시키고자 2000년도에 프랑스의 아에로스파시알(Aerospatiale) 및 마트라(Matra), 독일의 DASA, 스페인의 CASA가 합쳐져 유럽 ??항공 방위 및 우주 회사(EADS)가 설립되면서 통합이 시작되었다. 이후에 미사일 전문기업 MBDA가 유럽의 5개 미사일 관련 기업들의 통합으로 설립되었고, 2015년에는 KNDS(KMW+Nexter Defense Systems)이 독일의 KMW(Krauss-Maffei Wegmann)와 프랑스 넥스터 시스템즈(Nexter Systems)의 합병으로 탄생하였다. 2019년에는 유럽에서 지상 무기체계와 관련된 기업들의 통합이 있었다. 영국의 BAE 시스템즈의 Land UK와 독일의 라인메탈(Rheinmettal)이 통합되어 Rheinmetall BAE Systems Land Limited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 마저도 작아 ‘규모의 경제’ 흐름에 편승(便乘)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싱가포르와 노르웨이의 방산 발전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자.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방산기업인 ST Engineering을 중심으로 MRO 분야와 같은 방산 틈새시장에서 시장 확대, 즉 니치 마켓(Niche Market)에서의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이다. 2개의 국가 대표 기업인 콩스베르그 그루펜(Kongsberg Gruppen)과 남모(Nammo)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서 비용 경쟁보다는 ‘고품질’과 ‘고성능’을 강조하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왔다. 또한, 노르웨이는 미국의 F-35 사업에 3단계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독일을 잠수함 조달의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고도 한다. 정리하자면, 전문화된 틈새시장을 통하든지 아니면 전략적 파트너쉽을 체결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무기체계 개발과 생산에 있어서 틈새시장을 노린 전문화 또는 전략적 파트너를 선택하여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우리나라처럼 특수한 상황, 즉 유사시를 대비한 전반적인 방위산업 용량(Capacity)에 대한 유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가장 쉬운 대안으로 규모의 경제가 실현이 안 되는 장비나 부품에 대해서는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하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용, 시간, 우발적 상황 등의 측면에서 대중의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모스볼링(Mothballing) 방법이 있다. 모스볼링의 사전적 의미는 ‘미래의 사용이나 판매를 위해 장비나 시설을 유지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이다. 즉 방산 설비를 미래 생산을 위해 시설을 비운 상태로 유지하는 전략이다. 이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유지 관리 비용을 고려해야 하며, 숙련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발생된다.

이 모스볼링 방법에 대한 고민은 미국이나 주요 서유럽 국가와 같이 규모의 경제 실현이 되는 주요 방산 선진국이 아니면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그 시기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필자는 곧 어떤 방식이든지 규모의 경제의 실현이 없는 부문에서는 방위산업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을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52가지 어거스틴의 법칙(Augustine’s Laws)의 법칙 중에서 16번째 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2054년에는 단위 장비의 비용 상승으로 전체 국방 예산은 단 한 대의 항공기만 구매가 가능할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기체계 단가 상승을 볼 때 모스볼링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그 시기는 그리 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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