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곳엔 그가 나타난다, 코로나도 뚫고 달리는 배달원 김씨
"코로나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어요. 몸이 근질근질하네요"
신문 배달원 김인국(43·사진)씨의 얘기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언택트(untactㆍ비대면)가 일상화된 시대에도 시민을 만나 ‘불조심’을 강조하며 도로를 누빈다. 2017년 대형 인명 피해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 현장에서 마주한 참혹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서다.
29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화재 참사 당시 그는 사고 현장에 3일 정도 머물렀다. 군인과 자원봉사자 등 현장 지원 인력에 짜장면을 만들어주며 피해 복구를 도왔다.
2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참혹했다"며 "재산 피해도 피해지만 사람이 화재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팠다. 화재 이후 생긴 검은 그을음이 아주 무서웠다"고 말했다. 불에 대한 경각심을 새긴 그는 화재 예방 포스터가 붙은 오토바이를 타고 오늘도 서울 곳곳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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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배달 경력 20년…낮과 밤에도 배달
올해로 신문 배달 경력 20년 차인 김씨의 하루는 다른 사람보다 빨리 시작된다. 그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서울 은평구에서 신문 배달을 한다. 남은 시간에는 음식 배달과 봉사를 한다. 그는 "나보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보람된 일을 찾고 싶었다"는 생각에 지난 2014년부터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랑의 짜장차'였다. 1t 트럭으로 전국을 돌며 짜장면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봉사다. 김씨는 "짜장면은 남녀노소가 좋아한다"며 "독거노인과 보육원 아이들이 정성 들여 만든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사랑의 짜장차는 장애인 복지관, 노인 복지관, 성당, 교회, 절 등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을 돕고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울산 수해 지역을 갔을 땐 하루 최대 2000인분까지 짜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2014년 시작한 짜장면 봉사도 올해로 벌써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디지털 시대가 됐지만 혼자 살기는 어려운 세상”이라며 “협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남을 돕는 게 저 자신을 돕는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현재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지 못해 짜장면 봉사는 잠시 중단됐지만, 상황이 좋아지는 대로 재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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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과 접목시킨 '불조심' 홍보
사랑의 짜장차 봉사 활동을 하던 김씨의 기억 속 가장 강렬했던 곳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이었다. 그는 현장을 다녀온 이후 화재 예방 홍보 봉사에 뛰어들었다. 소방서에 직접 전화를 했고, 노원·은평·서초 소방서 세 곳과 연결됐다.
소방서마다 화재 예방 캠페인을 하는데, 화재 예방 홍보 포스터나 팸플릿, 자석식 안전픽토그램을 나눠주기도 한다. 안전픽토그램에는 외출 전 가스 불 끄기, 전기 가스 끄기 등의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김씨는 이를 받아 신문과 음식을 배달하면서 각 가정에 나눠줬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는 불조심 강조 기간을 맞아 오토바이 배달통에 불조심 포스터를 붙이고 배달에 나섰다. 노원소방서에서 취약계층 가정에 화재용 경보기와 가정용 소화기를 설치하는 일도 도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서초소방서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직장동료 주오택(54)씨는 김씨를 “호탕한 성격에 일을 열심히 하고 주변에 적이 없는 사람”이라며 “동료들에게 봉사 활동을 권유하고 참여하게 하는 기운을 불어 넣어줬다. 나 역시 김씨의 추천을 받아 소년·소녀 가장들을 후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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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코로나 시대 특화된 '배달 홍보 봉사'
배달을 접목한 김씨의 봉사 활동은 코로나 시대에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서초소방서 예방과 계획업무 담당자인 이충선(34)씨는 “비대면 시국에 딱 맞는 생활밀착형 봉사”라며 “앞으로도 배달원분들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봉사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화재 예방·아동학대 예방·교통안전 홍보 봉사를 하는 김씨는 최근에 '아동 청소년 안전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봉사를 몸으로 직접 실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려운 이웃을 되돌아보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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