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도 안하면 음식 공짜" 日식당 회심의 반격은 '묵식'
'코로나 확산' 지목에 식당 자구책
“묵식(黙食) 해주시기 바랍니다”
도쿄 고쿠분지시에 있는 우동집 진고로(甚五郎)의 한 켠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다. ‘묵식’, 즉 침묵 속에서 밥만 먹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가게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소리만 들린다. 손님들은 벽을 바라보고 혼자서 식사를 하거나, 함께 온 사람이 있어도 대화는 하지 않고 묵묵히 우동을 먹는 데에만 집중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일본의 음식점에선 묵식이 확산하고 있다. 식사 도중 침방울이 튀는 것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차원에서 자영업자들이 마련한 자구책이다.
처음 ‘묵식’ 아이디어를 낸 것은 후쿠오카시의 카레집 ‘마사라키친’의 미쓰지 시노부(46)씨였다. 지난 13일 후쿠오카현 등에 긴급사태가 선언되면서,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음식점을 지목했다. 오후 8시 영업시간 단축 요청도 내려왔다.
가뜩이나 외식하는 사람도 줄고 있는데, 음식점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던 미쓰지씨는 ‘특단의 대책’을 떠올렸다. 이미 가게에 “마스크를 내렸을 땐 대화를 삼가세요”라고 적힌 포스터를 붙여두긴 했지만 보다 짧고 강력한 단어가 필요했다.
그때 ‘묵식’을 떠올렸다. 미쓰지씨는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묵식’은 강력한 단어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손님과 종업원 모두를 (코로나19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묵식이라는 두 글자의 힘은 컸다. 손님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묵식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심하고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 묵식이 한 지역방송에서 소개된 뒤로는 전국에서 같은 고민에 빠졌던 식당 주인들이 “나도 묵식을 하겠다”고 나섰다. 도쿄, 홋카이도, 교토 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중이다.
교토시에선 아예 관광협회 홈페이지에 ‘묵식 안내문'을 올려두고, 음식점과 숙박시설 등에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27일 “교토시에선 묵식이 새로운 매너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의 햄버거 전문점에서 묵식을 경험한 한 손님은 TBS 뉴스에 “(대화하는) 즐거움은 반감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점점 (코로나19가) 퍼질 텐데, 어쩔 수 없지 않나.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학생 손님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침묵하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분명하게 (대화하지 말라달라고) 요구하는 게 낫다”고 했다.
아예 ‘무언(無言)식’을 권하는 식당도 나왔다. 도쿄 추후시 불고기집 ‘호루몬 나카무라’에선 지난 8일부터 식사 중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1000엔(약 1만원)짜리 고기 한 접시를 공짜로 주는 ‘무언 챌린지’를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11팀이 도전해 10팀이 성공했다. 실패한 손님은 혼자 온 손님이었는데, 고기를 굽던 중 ‘고독’을 참지 못하고 “죄송하다. 더 이상은 무리다”라며 결국 가게 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나카무라 도모카즈 사장은 중앙일보 취재에 “공짜 고기를 받아서 좋아하는 경우보다는 ‘무언’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손님이 많다”면서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메신저를 이용해 대화하면서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묵식 아이디어는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공중목욕탕에선 목욕 대신 묵욕(黙浴)을 권하고 있다. 헬스장에선 ‘묵트레이닝(黙トレ)’을 실시하는 곳도 늘고 있다.
후쿠오카현의 한 온천시설은 지배인은 TBS에 “온천에 들어가거나, 사우나를 이용할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묵욕’ 안내문을 붙인 뒤로는 대화를 거의 안 한다”고 말했다.
나고야시의 한 헬스장 업주는 “회원들과 침방울로 인한 감염이 계속 걱정이었다. 회원들에게 ‘하지 마세요’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도 서로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그는 “헬스장에 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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