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유시민과 '치우치지 말라'

2021. 1. 30. 04: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세영 종교부장


유시민 작가가 지난 22일 근거 없이 검찰 사찰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 편향에 빠졌다”며 잘못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했다. ‘당초 취지와 달리 논란을 일으켜 유감’이라는 식의,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사과와 비교하면 유 작가의 사과문에 들어 있는 자기반성은 통렬하다. 그의 사과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어서인지, 배경과 의도에 대한 정치적 분석이 많이 나왔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거다’ ‘민형사상 책임을 가볍게 하려고 한다’는 등 동기가 불순하다는 분석도 등장해 가십성으로 소비됐다.

유 작가는 정치인 출신이다. 정치권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을 때도 정치인처럼 발언하고 행동할 때가 많았다. 여느 정치인처럼 또다시 손바닥 뒤집듯이 사과를 번복하거나 똑같은 편향을 되풀이할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그의 사과문에 담긴 문장과 표현 하나하나의 의미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유 작가 개인이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성찰해야 하는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는 지난해 초갈등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양상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했다. 초갈등의 근저에는 극좌와 극우 같은 극단주의와 진영 논리가 존재한다.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 편향, 음모론이 이를 부추긴다. 유 작가가 사과문에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해석해, 입증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다”고 자성한 부분이 그 기제를 보여준다.

문재인정부의 맹목적 지지 세력과 극단적 반대 세력도 이렇게 탄생해 스스로 증식하고 있다. 진영 논리를 앞세워 내부 비판과 자기 성찰을 봉쇄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하며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추종하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사실이냐 아니냐, 근거가 있느냐 아니냐는 따지지 않는다. 그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이에게 열광하며 떼로 몰려가 상대방을 공격한다.

교계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교인들의 단체 채팅방은 음모론의 온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튜브에서도 코로나19와 관련해 조악한 음모론을 공공연하게 옮기는 사역자들을 종종 만난다. 성경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여호수아 1장 7절)며 치우침, 즉 편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읽고 싶은 것만 읽다 보면 치우치기 마련이다. 누구든 그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를 거를 수 있느냐, 아니냐가 건강한 공동체인지를 판가름한다. 한국교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교인들의 소통 공간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

유 작가의 사과를 계기로 ‘논리적 확증 편향’이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가 주목을 받았다. 시대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뉴스가 인스턴트식품처럼 소비되는 세태에서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의문이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단주의와 진영 논리, 음모론의 폐해를 방지하려면 이에 대한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유 작가는 많은 스테디셀러를 냈다. 대중적 전달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펴낸 ‘유시민의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이번 기회에 유 작가가 논리적 확증 편향을 주제로 한 ‘유시민의 글쓰기2’를 내면 좋겠다. 자신과 주변의 경험을 분석하고 역사적 사례를 곁들여 특유의 명쾌한 문장과 논리로 풀어낸다면 반향이 클 것이다.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에 대한 분명한 답변도 될 수 있다. 그의 사과가 개인적 부끄러움에 머물지 않고 우리 공동체가 오랜 기간 되새겨야 할 역사적 자산으로 남기를 바란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