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환상 속 올림픽

2021. 1. 3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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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20세기 초반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고 서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한 제국주의 일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서방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를 넘어서지 못했다. 일제 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세계 최초’라는 표현은 그 욕구를 역설한다.

일제는 영국보다 1년 늦게 기공했지만 3년을 앞질러 1922년에 취역시킨 만재 배수량 1만t급 경항공모함 호쇼에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그 항공모함에서 침략의 야욕을 거두지 못해 23년 뒤 패망하는 운명이 다가오는 줄은 모르고 말이다. 원천기술 대부분을 미국, 유럽에서 들여왔지만 하나라도 완성품을 먼저 내놓으면 ‘세계 최초’라고 선전했다. 그 타이틀을 선점할 수 없을 땐 ‘아시아 최초’로 표현을 바꿨다.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1940년 올림픽이 그랬다.

일제는 올림픽 유치를 통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시도했다. 그 시작은 1929년 방일한 스웨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룀과 일본학생경기연맹 회장 야마모토 다다오키의 면담이었다. 에드스트룀은 1942년 제4대 IOC 위원장으로 선출될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육상계 거물이었다. 야마모토는 이런 에드스트룀과 일본의 올림픽 개최 가능성을 놓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소식이 퍼지면서 일본 전역에서 올림픽 유치 열기가 높아졌다. 국력을 응집할 더없이 좋은 기회를 일제가 놓칠 리 없었다. 야마모토는 1930년 독일 세계학생육상선수권대회에서 무언가 확신을 얻은 듯 일본으로 귀국하자마자 “도쿄 개최가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일제는 국민, 기업, 해외 공사, 유학생을 가리지 않고 올림픽 유치 홍보와 로비 활동에 동원했다. 도쿄의회는 1931년 올림픽 개최 신청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이듬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IOC 총회에서 1940년 올림픽 개최지 후보로 도쿄를 신청했다. 10개국의 경쟁에서 최종 후보는 도쿄, 이탈리아 로마, 핀란드 헬싱키로 압축됐다.

일제는 참가국마다 100만엔씩 지원하겠다며 IOC를 유혹했다. 당시 도쿄의 교사·경찰관 초봉은 50엔 안팎으로 기록돼 있다. 경기장 건립 비용과 별도로 참가국 선수단 각각에 국민 2만명분의 월급을 제시할 만큼 일제의 올림픽 개최 의지는 강했다.

1935년에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가 올림픽 유치전에서 발을 뺐다. 당시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당수 베니토 무솔리니의 도쿄올림픽 개최 지지 발언을 담은 문헌은 지금도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의 지지까지 얻은 일제는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일제는 1936년 7월 독일 베를린 IOC 총회에서 36표를 얻어 마지막 경쟁자인 핀란드(27표)를 제치고 올림픽 개최권을 손에 넣었다.

일제는 올림픽 유치 성과를 제국주의 통치의 당위성에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올림픽 평화 정신을 추구하지 않고 허울만 씌운 개최국의 지위란 종잇장보다 가벼웠다.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을 적은 홍보물은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확장되는 전선을 따라 나붙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자 이듬해 각료회의를 거쳐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완전히 취소된 1940년 올림픽. 이를 놓고 지금의 일본은 ‘환의 올림픽’이라고 부른다.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올림픽이란 뜻이다.

이제 또 한 번의 도쿄올림픽이 환상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올림픽을 이미 한 차례 연기했던 지난해 3월과는 기류가 완전히 다르다. 재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개최와 취소만이 선택지에 남았고, 개최국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무관중 경기를 놓고는 IOC와 일본의 온도 차가 분명하다. ‘취소’를 말한 쪽은 위약금과 더 많은 손실을 떠안게 돼 IOC와 일본 모두 강행 입장에서 먼저 물러서지 않는다.

올림픽의 운명보다 더 걱정되는 건 국가대표들의 땀과 눈물이 허무하게 증발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 중 일부는 3년 뒤 파리올림픽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에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거나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 선수촌에 들어갔다. 그들이 질주해온 5년은 허상이 아니다. 올림픽 개최와 취소 중 어느 쪽을 택해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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