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시대가 변하면 무대 위 인물도 진화한다

입력 2021. 1. 30.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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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리스' 버전마다 바뀌어
'물랑루즈' 디바 사틴 변화 놀라워
뮤지컬 ‘물랑루즈’ 중 한 장면. 버즈 루어만 영화 감독의 2001년 개봉작을 무대로 옮긴 작품으로 CJ ENM이 공동으로 프로듀싱했다. CJ ENM 제공


뮤지컬 ‘그리스’는 1971년 시카고에서 초연한 이래 브로드웨이에서만 세 번 공연됐지만 매번 버전이 달랐다. 1978년 개봉한 동명 영화가 히트하면서 영화에 새로 삽입됐던 노래 ‘그리스’는 이후 대부분의 리바이벌 공연에도 스토리와 상관없이 반드시 삽입됐다. 하지만 버전마다 전체 곡목도, 순서도 뒤죽박죽으로 바뀌곤 했다.

무엇보다 임신, 자퇴, 직업학교 등 십대 소녀들의 문제를 보여주는 불량 서클 ‘핑크 레이디’의 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생각 없는 십대에서 자신의 삶을 직시하는 인물들로 변화하기 까지 거의 오십년이 걸렸다. 남자 주인공 대니가 자동차 영화관에서 막무가내로 여자 주인공 샌디에게 키스하려 들던 장면도 달라졌다. 그 장면 이후 잘못됐다고 느끼는 인물이 샌디에서 대니로 바뀌었다.

뮤지컬 ‘그리스’가 곡목이나 대사, 장면 순서까지 바꾸며 발전해온 것과 달리 대사 한 마디 바꾸지 않고 단지 인물에 대한 연출가의 해석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 작품도 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주인공 러벳 부인이 그런 경우다. 1979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러벳부인 역을 맡은 안젤라 랜즈베리의 연기는 불가사의했다. 이 인물이, 죽은 사람을 고기라 부르며, 버려서 낭비하지 말고 먹어서 없애자며 스위니 토드의 연쇄 살인을 부추겨 뒤처리를 도맡는 인물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하지만 그 당시 뮤지컬 ‘시카고’의 두 주인공이 비평가들에게 난도질 당하는 걸 보면서도 잔인하면서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해결책은 귀엽고 모성애까지 갖춘 욕망의 화신 연쇄 살인마 연기였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안젤라 랜즈베리는 네번째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결국 2005년 연출가 존 도일의 액터 뮤지션 버전에서 패티 루폰에 의해 무섭도록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재탄생 했고 마침내 대사와 인물이 한 길에 섰다.

뮤지컬 ‘물랑루즈’는 버즈 루어만 감독의 2001년 개봉작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2019년 여름에 개막해 당시 파리의 캬바레 물랑루즈를 재현한 듯한 화려한 무대와 무려 75곡의 팝송을 때려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유려한 편곡, 플롯은 같은데 완전히 달라진 듯한 드라마틱한 변화를 드러낸 각색에 배우들의 열연까지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특히 영화에서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물랑루즈의 디바 ‘사틴’의 변화가 놀랍다.

뮤지컬에서 새로 쓰인 사틴은 자신의 두 발로 무대 위를 딛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고아로 물랑루즈에서 키워졌고 물랑루즈가 자신의 집이자 일터다. 영화에서 사틴의 폐병은 사틴만 모르는 모두의 비밀이다. 하지만 무대 위 사틴은 그 폐병을 자신만 알고 아무 일 없는 듯 물랑루즈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게다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히려 더 크리스티앙과의 사랑에 불타오른다. 사틴의 주변 인물들도 달라졌다. 사틴을 이용만 하던 원작과 달리 이들에게는 사틴이 우선이다. 영화처럼 사틴은 가난한 시인과 사랑에 빠져 폐병에 걸려 요절하지만 그 과정을 사틴이 끌어가기에 크리스티앙이 주인공이었던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사틴과 레이디 마말레이드가 주인공이다. 뮤지컬 ‘물랑루즈’는 뮤지컬 ‘킹키부츠’와 같이 CJ ENM에서 투자한 작품이라 어느 지역보다 빨리 한국 무대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곗바늘을 일 년 전으로 돌린 듯, 평범하게 공연을 보는 나날들인 양 글을 쓰고 싶지만 실상은 다르다. 올해 1월 21일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브로드웨이 ‘물랑루즈’에서 두 주인공인 아론 트비에와 캐런 올리보를 비롯해 무려 25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앓았고, 극장주 해롤드 질더 역의 대니 번스타인은 아내를 잃었다. 놀면 뭐하나, 이럴 때 오리지널 캐스팅으로 투어 프로덕션이라도 꾸리지 싶었지만 그들 모두가 쉴 새 없이 앓던 중이었다. 무사한 새해의 공연 이야기를, 코로나라는 단어 없이 쓰고 싶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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