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오름 축구장

2021. 1. 30.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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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분화구를 축구장으로 만들자는 맹랑한 발상은 손흥민 때문이었다.

오름 분화구는 바닥에 그라운드를 조성하면 분화구 안벽은 스탠드가 된다.

오름 분화구 바닥은 아이유가 TV 광고에서 물을 걸러준다는 화산석송이, 즉 스코리아 퇴적층으로 투수성이 높다.

산굼부리 분화구에서 영감을 얻어 그라운드와 관람석을 지하에 배치하며 제주의 바람을 피하게 설계했다는 2만9000석 제주월드컵경기장은 폭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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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호 (전 언론인)


오름의 분화구를 축구장으로 만들자는 맹랑한 발상은 손흥민 때문이었다. 오른발잡이인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왼발 훈련을 위해 양말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때 왼발부터 넣었고 경기장에 들어설 때는 왼발부터 딛었다더라. 그 아버지는 기본기가 중요하다며 학교 축구팀에 넣지 않고 혼자 훈련만 시켰대…. 손흥민 얘기가 나오자 너도 나도 할 말이 많다. 하도리 김 목수, 농사꾼 정씨, 전직 컴퓨터학원 원장 현씨, 뭐든 하는 백공(百工) 김씨, 그리고 전직 언론인 필자 등이 오늘은 낚시 말고 축구 얘기를 하고 있다.

손흥민은 찬스다 싶으면 누구보다 먼저 공간을 찾아 튄다. 야생적 본능 같다. 해리 케인은 역시 천재다. 돌아보지도 않고 패스하는데 손흥민 뛰는 앞에 딱 떨어진다. 델리 알리는 요즘 왜 슬럼프일까? 조제 무리뉴가 토트넘에서 맨시티 펩 과르디올라를 두 번 이겼지만 맞대결 총 전적에서는 여전히 과르디올라가 우세라더라…. 얘기는 이렇게 흘러가다 서귀포시의 제주월드컵경기장 불평으로 넘어갔다. 하도리에서 1시간20분 거리. 결국 새로운 축구장 건설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오름에 축구장을 만들게 됐다. 순전히 손흥민 때문에.

오름 분화구는 바닥에 그라운드를 조성하면 분화구 안벽은 스탠드가 된다. 고대 유럽의 야외극장은 모두 비탈 지형을 깎아 관람석을 만들고 기저부에 무대를 만들어 공정을 줄이고 음향 효과를 높였다. 지금도 공연에 사용되는 그리스 아테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디오니소스 극장이 모두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 언덕에 있다.

오름 분화구 바닥은 아이유가 TV 광고에서 물을 걸러준다는 화산석송이, 즉 스코리아 퇴적층으로 투수성이 높다. 대부분 분화구에 화구호가 없는 까닭이다. 그라운드 관리에 필요한 배수에 유리하다. 분화구 벽은 겉의 흙만 걷어내면 화산석이다. 다듬으면 천연 돌 스탠드가 된다. 오름 입구에서 경기장까지는 터널을 통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간다. 터널 벽은 화산석을 그대로 노출시켜 관람객들이 오름의 퇴적층을 보며 지질 형성 과정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분화구 정상부는 둘레길을 만들어 산책하며 한라산과 바다를 볼 수 있다. 평소 오름의 돌을 파고 밭을 갈던 이들이 한마디씩 보태니 금세 축구장이 만들어졌다.

제주 동부 구좌읍 다랑쉬오름은 바닥면이 원형에 가깝다. 밑변 지름이 1013m, 지상에서 정상까지 비고(比高) 227m, 정상에는 깔때기 모양의 분화구가 있다. 화구 깊이는 115m, 지도상 측정한 지름은 320여m에 이른다. 타원형의 6만6000석 서울월드컵경기장 긴지름이 304m, 최고 높이가 49.4m이니까 분화구 안에 쏙 들어간다. 산굼부리 분화구에서 영감을 얻어 그라운드와 관람석을 지하에 배치하며 제주의 바람을 피하게 설계했다는 2만9000석 제주월드컵경기장은 폭 안긴다.

누군가 또 말했다. “환경단체가 반대하면 내가 찾아가 제주도 360개 오름 가운데 딱 하나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해보지 뭐.” 우리는 그날 저녁 이렇게 제주도 오름에 세계적 명소가 될 오름 축구장을 하나 건설했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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