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해법찾기..위층 "힘드신 줄 몰랐어요"..아래층 "오해했어요"

정현수 2021. 1. 3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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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집콕’ 문화가 대세가 되면서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도 급증하고 있다. 환경관리공단에 따르면 2019년 2만6257건이었던 층간소음 민원 건수는 지난해 4만2250건으로 61%나 늘었다.

일선 경찰 역시 늘어난 층간소음 민원 신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잘잘못을 가리기도 어렵거니와 경찰의 법 집행만으로는 이웃 간 갈등의 원인을 말끔히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경찰은 2019년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해 왔던 ‘회복적 경찰활동’이 층간소음 갈등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중이다. 지난해 15건의 층간소음 사례를 접수해 8건에서 조정이 성사됐다.


층간소음 7년째 원수였던 이웃

지난해 11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112신고가 접수됐다. 아래층과 위층에 사는 이웃주민이 쌍방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위층에 사는 A씨가 공동출입문에서 마주친 아래층 주민 B씨의 발을 걸었고, B씨가 A씨의 목을 할퀸 사건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었지만 다툼의 배경에 7년 전부터 지속된 층간소음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담당 형사는 사건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담당 형사는 사건을 회복적 경찰활동을 담당하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에게 인계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가정·학교·이웃공동체 내의 갈등과 분쟁 초기에 경찰이 개입해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목적을 둔 프로그램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이 동의하면 절차가 개시된다. 경찰이 위촉한 상담·대화 전문가들의 조율 아래 회복적 대화모임을 갖고, 양측이 약속이행문을 작성해 서로 이행하게 한다.

경찰의 설득에 참여키로 했지만 A씨와 B씨는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7년간 쌓여온 갈등이 컸던 탓이다. B씨는 빔 12시까지 쿵쿵거리는 윗집에 관리사무소를 통해 숱하게 항의해 봤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 역시 B씨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화모임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각자의 사정을 털어놓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B씨는 “지난해 어깨가 탈골돼 수술을 해야 했지만 어머니가 암에 걸려 수술도 하지 못한 채 밤새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잠을 자야 하는데 자정이 넘도록 쿵쿵거리는 소리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A씨는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당장 사과했다. 이어 “큰집이다 보니 친척들이 많이 온다”며 “나름 조심을 했는데 느닷없이 찾아와 소리를 지르니 민망하고 부끄러웠다”고 자신이 느꼈던 감정도 털어놨다. 이에 B씨 역시 “대화를 더 빨리 했다면 윗집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오해하고 살았다”고 미안해했다. 두 사람은 회복적 대화모임 이후 처벌불원서를 쓰고, 각자 지킬 사항들을 약속이행문에 적었다. 사건은 지난해 12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층간소음 갈등, 대화로 풀 수 있어”

층간소음 갈등이 더 심각한 다툼으로 비화된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한 C씨(윗집)와 D씨(아랫집)는 2019년 입주 직후부터 층간소음으로 반목했다. 1년간 총 150회가 넘도록 인터폰과 관리사무소를 통해 항의하던 D씨는 급기야 지난해 6월 망치를 들고 윗집을 찾아가 현관문을 부수기까지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다리를 잘라버리겠다’는 식의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D씨는 회복적 경찰활동 프로그램에서 윗집의 노력을 확인하게 되면서 폭력적인 항의 방식을 사과했다. C씨는 소음이 발생한다고 하는 안방 화장실 바닥 공사를 다시 하고 변기도 수차례 교체했다. 새벽시간에는 안방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고, 두꺼운 슬리퍼를 신고 발뒤꿈치를 들고 다녔다. 억울한 마음에 CCTV까지 설치해 이런 모습을 녹화한 장면들을 아랫집에 전달하기도 했다. D씨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층간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잘못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윗집은 바닥에 매트를 깔기로 했고, 아래층은 층간소음 항의를 최소화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경찰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이 늘 것으로 보고 회복적 경찰활동을 통한 초기 개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은 29일 “층간소음의 경우 사소한 갈등이 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대화로 풀릴 갈등이 많은 만큼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국 142개 경찰서에서 실시 중인 회복적 경찰활동은 층간소음을 포함해 학교폭력, 소년사건, 주차 시비 등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접수된 573건 중 463건이 완료됐는데, 이 중 416건에서 조정이 성립돼 조정성사율이 90%에 달한다. 오는 2월부터는 전국 178개 경찰서에서 확대 운영될 예정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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