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입사한 밀레니얼 여성이 가장 먼저 배운 것

김예지 입력 2021. 1. 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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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줍일기]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의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신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사심을 담아 알리고 싶은 책, 그냥 지나치긴 아까운 책을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가 골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김예지 기자]

여기, 이런 일자리가 있다. 정규직에, 잘 조직된 노조가 있고, 임금 수준도 높아서 한 명의 월급으로 가족을 건사할 수 있을 정도다. 입사하고 얼마간 열심히 일하면 자동차나 집을 살 목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복지도 끝내준다. 자녀 학비에 노후 자금까지 걱정 없다. 때문에 한 자릿수 채용 공고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이 지원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지역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거대한 산업체이자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곳, 제철소 이야기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까지 밟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개인적인 사정으로 끝내 학위를 받지 못하고 페인트공 일자리를 전전하던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가 제철소에 다니던 친구의 급여명세서를 보자마자 이력서를 넣은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조업 열기가 식으면서 철강 산업도 빠르게 쇠락해 과거의 명성만 못하다지만, 안정된 직업이 없는 스물아홉살의 고학력 밀레니얼 세대 여성에게 제철소는 여전히 매력적인 일자리였다. 

게다가 그에게 제철소는 그리 낯선 공간이 아니기도 했다. 클리블랜드에서 나고 자란 그에겐 '제2의 태양'처럼 타오르는 제철소의 불꽃이 익숙했다. 쇳물을 다루는 위험한 곳이라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긴 했지만, 불안정한 삶보다 두렵진 않았다. 제철소에 지원서를 낸 후 넉 달 동안 온갖 테스트와 조사를 거치고 마침내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두말하지 않고 승낙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부푼 꿈을 안고 제철소에 들어가 신입 사원 교육에서 가장 먼저 배운 건, 수많은 죽음의 서사였다. 
 
우리는 모두 제철소에서 일자리를 구한 사실에 환호했었다. 잭팟이 터진 것이다. 노조가 있는 일자리였고 돈도 많이 벌 것이다. 곧이어 작업장에서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수많은 경우에 대한 안전 영상을 연이어 시청하기 시작했고, 영상 속 내레이터들은 부상만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을 이야기했다. 감전돼 죽고, 깔려 죽고, 추락해 죽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 - 54쪽
 
거대한 추모의 장, 제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책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 마음산책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은 지난 2016년부터 3년간 제철소 철강노동자로 일한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의 회고록이다. 신입 직원을 뜻하는 '주황 모자'에서 수습 딱지를 뗀 '노란 모자'를 쓰기까지, 그가 제철소에서 마주한 현실과 그곳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변화에 대해 기록했다. 
그가 바라본 제철소는 그야말로 '밤과 낮', 그러니까 '명과 암'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제철소 노동자들은 "결혼과 이혼, 생일과 졸업, 질병과 죽음을 겪으면서도" 늘 일했다. 살기 위해 일하다 돌연 죽음을 맞는 건 제철소에서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에 걸린 게시판에는 늘 온갖 부고 기사가 걸렸고, 식탁엔 아무렇지 않게 장례식 안내문이 놓였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죽음을 말했고, 제철소의 모든 공간은 거대한 추모의 장이었다. 
 
... 제철소에서 죽음은 기이하기 짝이 없는 장소들에서 추모되었다. (중략) 직원들은 죽은 모든 동료를 가족처럼 열정적으로 기억했다. 끔찍한 이야기를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들은 밥벌이를 위해 제 목숨을 내놓은 모든 삶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더 중요하게, 그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냉엄한 진실을 말하는 방식이었다. - 166쪽 

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제철소에서, 그는 단순히 '쇠락한 공업지대의 철강노동자'로 뭉뚱그려지는 이들의 얼굴과 노동을 구체적으로 그러낸다.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에는 저자가 동료들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애정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성노동자가 '남자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마는 남성중심적인 제철소의 문화, 일부 노동자들의 보수적인 정치관, 불합리한 업무 관행, 무너져 내리고 있는 철강 산업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한계를 정확하게 직시하면서도 끝내 이곳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을 포기하진 않는다. 함께 일하는 한 크레인 기사가 느닷없이 골드바흐에게 "진보주의자냐, 나는 미쳐 날뛰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말했을 때, 그는 목소리를 떨면서도 자신이 바로 그 '미쳐 날뛰는 페미니스트'임을 정확하게 밝힌다.

페미니스트들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크레인 기사에게 같은 대학 남학생들에게 당했던 성폭행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저자의 말에, 크레인 기사는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며 예상치 못한 말을 내놓는다. 자신도 어렸을 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안됐어." 기사가 말했다. "진심이야, 그게 어떤 건지 나도 알거든." "선배님이 안다고요?" 말할 것도 없이 비난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그게 어떤 건지 정말 안다고요?" "글쎄," 그가 답했다. 내 말투에 그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털썩 기대앉았다.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도 어렸을 때 성추행을 당했어. 믿었던 사람한테 성추행당했는데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지. 남자는 그런 엿 같은 일로 울면 안 되거든. 그냥 받아들이고 삭이면 그만이야. 그래서 그렇게 했지. 나혼자서 말이야." 

크레인 기사가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내가 당혹감에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당신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임금격차의 원인이었다. 여태 평등권 수정헌법이 통과하지 못한 것도 당신 때문이고, 강간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당신 때문이었다. - 384쪽

그 대화를 조용히 되새기던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같은 학교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딸이 신고를 주저하고 있을 때, '누구도 너의 심장을 빼앗아갈 수 없다'며 황금 열쇠를 쥐어주고 용기를 전하던 아버지. 그러나 여성을 모욕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데 거리낌 없던 트럼프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던 아버지. 그가 크레인 기사와의 대화에서 발견한 건, 마치 대척점에 서 있는 것만 같은 타인과 접점을 찾고, 언젠간 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가능성'이었다. 

저자는 이 같은 연대의 가능성을 짓밟고, '이민자나 난민과 같은 소수자들이 당신의 일자리와 경제적 이득을 빼앗아간다'고 세뇌하며, '몰락이 유일한 정체성'이라고 믿게 된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분노와 복수심을 촉발하는 것이 바로 트럼프와 같은 정치 세력의 '전략'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목격했듯, 흔히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 기여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문제를 사회의 의제로 연결시키는 데 미숙할지언정, 여전히 '타인을 향한 섬세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강인한 회복력과 자부심을 가진 노동자들이기도 했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러스트벨트가 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이들은 분명 그 실패를 넘어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제철소의 불꽃은 러스트벨트를 특징짓는 일종의 침체를 상징했다. 우리는 혁신하지 못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산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클리블랜드는 슬픈 이야기 위에 지어진 도시였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클리블랜드가 재기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걸 몰랐다. (...) 우리는 패배했을지 모르나 가장 잘하는 것을 해왔다. 우리는 조용히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172쪽

그래서일까, 3년 동안 서서히 '두려움이 사라진 철강노동자'로 성장한 저자도 그간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일들에 다시 도전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양극성 기분장애를 다스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고, 뒤늦게 학위를 따며, 전공을 살려 대학 교수직에 지원한다.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 '철강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여전히 잃지 않은 채로.
우리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제철소.
ⓒ pixabay
 
2020년 11월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주 등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은 바이든을 선택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던 지역들이다. 백인 우월주의를 주창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던 이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것은 분명 대단한 변화이고, 4년 전만 해도 이 같은 인물을 택했던 지역의 민심이 변했다는 건 주목할 만한 결과다. 

하지만, 바이든의 당선을 단순히 '민주당이 주창하는 가치에 대한 지지'로 요약할 순 없다. 또한, '트럼프 시대'가 남긴 상흔은 여전하다. 연초부터 벌어진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분열된 미국이 쉽게 봉합될 리 없다.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적절하게 당도한 이 책이 더욱 뜻깊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두 개의 미국'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골드바흐가 제철소에서 목격했던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생각이 다른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놓지 않았던 이들을 소개하고 싶다.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며, 때론 서로 반목하더라도 누군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면 자신의 일처럼 챙기던 사람들, 안타깝게 떠나간 동료들의 이름을 끝내 잊지 않던 제철소 사람들에 대해 들려주고 싶다.

비단 미국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골드바흐가 전해준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무척이나 유의미한 경험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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