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온 NBA 전설, 미국을 감동시키다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토니 파커: 마지막 슛>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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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농구 리그, 미국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에도 '왕조'가 존재한다.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가 1990년대를 완전히 지배하며 왕조로 군림했고, 샤킬 오닐 그리고 코비 브라이언트를 앞세운 LA 레이커스가 2000년대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으며, 시간을 거슬러 1980년대에는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와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가 사이좋게 왕조를 구축했었다. 그런가 하면, 2010년대 중후반에는 5년 연속 파이널 진출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있었다.
그리고, 왕조라고 하기엔 2% 부족하지만 왕조라고 하지 않기에는 업적이 너무나도 엄청난 팀이 있는데 서부 컨퍼런스의 절대 강자이자 NBA 역사의 다섯 번째인 통합 우승 5회를 자랑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이하, '스퍼스')다. 이 팀은 2000년대 중반 격년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2020 시즌까지 22년 연속 플레이오프(동부, 서부 컨퍼런스 각각 15개 팀에서 상위 8개 팀이 진출) 진출의 대업을 이룩했다. 한 시대를 완전히 평정한 '왕조'를 구축하진 못했지만, 실로 오랫동안 시대를 대표한 팀인 건 분명하다.
스퍼스가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건 1998 시즌, 완전히 말아먹은 직전 시즌의 대가로 올타임 레전드 '팀 던컨'을 드래프트 1픽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는 2년 차인 1999 시즌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완벽히 증명하며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2001년에 토니 파커를, 2002년에 마누 지노빌리를 데려와 이른바 'BIG 3'를 결성해 전성기를 구가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토니 파커: 마지막 슛>은 이중 '토니 파커'의 농구 일대기를 다룬다.
유럽에서 온 이방인 스타
미국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어머니를 뒀고 벨기에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로 이민을 가 프랑스인이 된 토니 파커, 농구 선수 출신 아버지의 지대한 영향과 마이클 조던을 향한 열망으로 농구를 시작한 그는 어릴 때부터 돋보였다고 한다. 아마추어 리그에서 2 시즌, 프랑스 프로 리그에서 2 시즌을 뛴 후 2001년 드래프트로 NBA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럽 출신이 홀대받았거니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세도 되지 않은 작은 가드에 주목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토니 파커는 30개 팀이 참여하는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28번째로 지명되어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일원이 된다.
그를 주목한 유일한 팀 샌아토니오 스퍼스의 감독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렉 포포비치였다. 팀 던컨 원 탑으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긴 힘들 거라고 판단한 포포비치 감독의 복안은 대성공, 토니 파커는 루키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2년 차인 2003 시즌엔 팀을 두 번째 통합 우승자의 자리에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후 그에게 돌아간 건,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 그리고 국민 영웅의 자리였다. 프랑스 스포츠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전 당시에도 단연 축구였다.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로를 우승으로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토니 파커는 혈혈단신으로 NBA에 진출하여 단시간에 주전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간의 관심이 그 한 명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랑스를 이끌고 2003년에 열린 유럽 농구선수권대회에 참여했지만 4강에 머무르며 체면을 구겼다. 다행히 이것이 팀 활약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팀이 우선, 개인은 한 발 뒤
불과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며 큰 이슈를 뿌린 다큐멘터리 시리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가 생각난다. NBA를 넘어 전 세계로,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될 '마이클 조던'의 일대기를 다시 없게 보여 준 위대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업적과 유명세에 비해 토니 파커의 그것은 '볼품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그걸 우리가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 구기 종목 농구는 혼자만의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이다. 사상 최고의 실력을 갖춘 마이클 조던조차 그의 옆에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필 잭슨과 올타임 레전드 중 한 명인 스카티 피펜, 사상 최고의 리바운더 데니스 로드맨 등이 있었다. 토니 파커는, 농구라는 스포츠에 가장 적합한 선수 중 하나였지 않나 싶다. 포인트 가드로서 팀의 핵심인 팀 던컨을 보좌하고 경기를 조율하며 마누 지노빌리와 함께 득점도 책임진 것이다.
그 앞엔 오직 팀의 '승리'가 있었다. 팀이 우선이었고 자신은 언제나 한 발 뒤에 있던 토니 파커, 그 자신은 올타임에 모자라는 명성과 업적을 보였지만 팀의 4회 통합 우승에 절대적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레전드
토니 파커는 불과 2년 차에 최고의 자리를 꿰찬 후 수년간 고렉 포포비치 감독에게 호된 질타를 받는다. 포포비치 감독의 빅 픽처로, 노쇠해 가는 팀 던컨과 미누 지노발리 이후의 시대를 생각한 포석이었다. 또한 토니 파커를 시험하는 한편 그로 하여금 승부욕을 극치로 끌어올리게 하는 방법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스퍼스는 2005년과 2007년에도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서부 컨퍼런스 최강 팀을 넘어 NBA 최강 팀 반열에 오른다. 2007년 우승 당시 토니 파커는 파이널 MVP에 오르며 커리어 정점을 찍는다.
이후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르브론 제임스와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코비 브라이언트가 5년 넘게 군림하며 스퍼스의 앞 길을 막는다. 물론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강팀다운 면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2014 시즌, BIG 3는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다시 한 번 통합 우승을 차지한다. 왕조를 수립하려는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를 돌려 세운 결과물이었다. 토니 파커는 언제나 중심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한 몸 불살랐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50여 년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들 레전드 '토니 파커', 그는 NBA 선수 이전에 샌안토니오 스퍼스 선수였다. 많은 구기 종목 선수들이 간과하는 그리고 간과할 수밖에 없는 자세와 태도를 그는 오랜 경력 내내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며 팀을 위대한 반열에 올려 세웠고, 자신 또한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올타임급의 성적을 냈다.
스포츠는 보고 즐기고 열광하기 위한 산물, 슈퍼스타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대부분이 슈퍼스타가 될 수 없기에 당연한 듯 팀에 헌신하며 선수생활을 영위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눈은 거기로 가 있다.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떼려야 뗄 수 없듯(시카고 불스가 마이클 조던을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의미에서 토니 파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다. 이 작품에서도, '사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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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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