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도시순례]지역과 지방대학의 위기

이종길 2021. 1. 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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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 정시모집 2.7대 1 경쟁률 사실상 정원 미달
2000년 이후 인구감소 영향..수도권 경제 집중 점점 더해
지방대학 혁신의 핵심은 고정관념 탈피 자세에 달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얼마 전 2021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이 마감됐다. 지방대학의 경우 평균 경쟁률이 2.7대 1로 나타났다. 입시 업계에 따르면 정시 경쟁률이 3대 1 미만이면 사실상 정원 미달로 본다. 특히 지역의 핵심 고등교육 기관인 지역 거점 국립대의 경쟁률은 크게 하락했다. 경북대의 경우 3.11대 1로 지난해 3.59대 1보다 감소했다. 부산대·전북대·충남대·충북대도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하락했다.

이런 현상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인구감소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탓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빠르게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방과 지방대학의 소멸이 더불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위축과 축소는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학은 훈련된 인적 자원을 배출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각종 연구와 분석을 수행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수행한다. 학생과 교직원 등 대규모 인력은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대학은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에 동참함으로써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지식산업 생태계 형성도 돕는다. 영국에서 대학을 도시의 ‘앵커 기관’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학은 지역을 국가·세계와 연결해주는 기능도 수행한다. 세계적인 학문 공동체로 지식과 경험을 주고 받는다. 이를 대학이 위치한 도시에 전달해 줌으로써 도시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도 돕는다. 유럽·미국의 대학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급속히 변하는 시대에 도시와 지역이 적응하고 새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도 해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대학은 지역과 일정 부분 유리된 존재로 지내왔다. 캠퍼스라는 물리적 단위로 주변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존재였다. 사회적으로는 지역에 존재하지만 학회나 각종 과제 등으로 지역보다 서울·수도권과 더 밀접하게 연계돼 있었다. 지역에서도 대학에 인적 자원 양성으로 지역의 수요를 충당시켜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서울과 수도권 진출을 더 선호하고 독려해왔다. 제조업 위주의 지역 산업구조에서 연구·개발 수요는 상존했으나 대부분 현장이 아닌 서울·수도권에 자리잡은 본사와 기업 부설 연구소의 몫으로 간주됐다.

이런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수도권 대도시의 상대적 경쟁력이 높아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는 과거와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거대 도시의 복잡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업들은 소수 전문 인력에 의존했다. 이런 인력은 밀접한 상호접촉의 경험 그리고 국제화한 물적·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양성됐다.

이에 비해 지역과 지방대학을 뒷받침하던 제조업은 사업장 해외 이전 등으로 점차 약화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자동화 및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경쟁력 약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지방대학은 소외되거나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역 산업 변화에 따른 다른 변화의 움직임도 크지 않았다. 이런 지체는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인구감소라는 외부적 변화가 더해지면서 더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대학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최근 주립대를 중심으로 학과 및 인력구조 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신입생 등록률 감소와 재학생 중도 탈락률 상승, 주 정부의 재정악화에 따른 지원 축소로 시작된 이런 추세는 향후 더 빠르게 진행될 듯하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중소 규모 대학의 경우 종신교수에 대해서도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외부 연구비를 유치하기 어려운 학과에 대한 정원 축소 및 폐지가 진행 중이다. 대학의 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라는 것을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 교육 확대, 대학 교육의 가성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대 등은 세계 고등교육 기관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현재 지방대학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지원 예산 확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지난해 1월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방대학이 지역 혁신의 주체로 바로 서도록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본 사업은 지역 문제 해결 중심으로 학사과정 및 교육과정을 혁신하고 지방대학이 지역 내 기관들과 협력해 지역 혁신 과제를 수행하도록 돕는다. 계획대로라면 지역과 지방대학 모두에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는, 그리고 미래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구체적인 변화의 움직임과 성과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방대학과 지역 혁신의 핵심은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는 자세다. 과거 관념에서 벗어나 지역 속에서 본격적인 역할을 찾기 위한 구성원의 노력이 있어야 새로운 길은 열릴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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