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실지에 대한 오류 투성이 안내문, 이렇게 바뀌었다

김희태 2021. 1. 29. 0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제제기 이후 영월 철종 원자 태실 안내문·표석 교체 진행.. 단종 태실지는 '아직'

[김희태 기자]

지난 '오류 투성이 안내문, 그대로 두면 안된다' 기사를 통해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망산의 태실이 철종의 태실이 아닌 철종의 원자 태실이라는 사실과 잘못 표기된 안내문과 표석의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사천시에 있는 사천 단종 태실지(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가 단종이 아닌 인성대군의 태실이기 때문에 사천 단종 태실지라는 명칭 자체의 전제부터가 잘못된 사실을 언급했다. 

때문에 사천 단종 태실지의 명칭 변경과 안내문의 정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안내문들의 경우 잘못된 사실에 따라 오류의 확대 재생산이 우려가 되는 대목이기에 기사 작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후로도 영월군과 사천시에 각각의 내용에 대한 시정을 요청했다. 그 결과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어 후속 기사로 소개하고자 한다. 

안내문과 표석의 교체가 진행 중인 영월 철종 원자 태실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망산의 태실은 그간 철종의 태실로 알려져 왔으며, 실제 교체되기 전의 안내문과 표석 등에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지난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해당 태실은 철종의 태실이 아닌 철종의 원자 융준의 태실이다. 실제 영월군에서 받은 회신을 보면 해당 태실은 "철종의 왕세자 태실로 과거 주천 지역에서 철종 태실로 혼돈하여 안내문과 표석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 철종 원자 융준 태실 태실지에 남아 있는 태함의 개석
ⓒ 김희태
 
이 부분은 지난 기사에 밝혔듯 <승정원일기>와 <원자아기씨안태등록>의 교차 분석을 통해 확인이 되고, 결정적으로 지난 2019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진행한 <서삼릉 내 묘역 및 태실 역사성 회복 연구 결과보고서>에서도 철종의 원자 태실로 고증된 부분이다. 따라서 영월군에서 밝혔듯 해당 태실은 앞으로 철종의 태실이 아닌 철종의 원자 태실로 불려야 한다.
 
▲ 교체 이전의 안내문 교체 이전의 안내문, 철종대왕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 김희태
▲ 교체 이후의 안내문 철종 왕세자 태실의 표기가 눈에 띈다.
ⓒ 영월군
 
기존의 안내문과 표석의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 "안내판의 경우 현재 정비를 완료된 상황이나 표석에 대한 수정은 해당 면사무소에서 진행할 예정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완료하겠다"라고 밝히며 안내문과 표석의 교체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체된 안내문은 '철종 왕세자 태실'로 표기하고 있으며, 그간 잘못 알려진 내용 일부가 바로 잡힌 부분은 주목해볼 만하다. 
 
▲ 서삼릉에 있는 철종 왕자 태실비 전면에 ‘철종왕자태실(哲宗王子胎室)’이 새겨져 있다.
ⓒ 김희태
 
다만 표기에 있어 왕세자(王世子)라는 표현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세자(世子)의 경우 별도의 책봉 이후 붙여지는 명칭인데, 융준은 돌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데다 별도의 세자 책봉을 받은 기록이나 추증 기록 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서삼릉으로 옮겨진 태실비의 전면에 '철종왕자태실(哲宗王子胎室)'이 새겨진 점 때문에 '철종 왕세자 태실'의 표기는 오류로, 해당 명칭에 관한 시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안내문의 교체를 통해 그간 철종의 태실로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바로 잡혔고, 왕세자의 호칭이 문제이긴 해도 철종의 원자 태실이라는 사실이 안내문과 표석 등의 교체를 통해 바로 잡힌 부분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철종 원자 융준 태실의 사례를 통해 비지정문화재이지만 주변의 관심만 있다면 이처럼 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은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사천 단종 태실지, 누구를 위한 문화재인가?

지난 기사를 통해 사천 단종 태실지가 단종의 태실이 아닌 예종과 장순왕후 한씨 소생의 인성대군의 태실이라는 점을 밝혔다. 또한 1458년(세조 4)에 성주 법림산(法林山)에 있던 단종의 태실이 철거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훗날 인성대군의 태실이 단종의 태실로 오인됨에 따라 가봉 태실로 개수가 되었고, 그 결과 지금처럼 인성대군의 태실이면서 단종의 가봉 태실 석물이 있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 사천 단종 태실지 사천 단종 태실지
ⓒ 김희태
 
이에 사천 단종 태실의 명칭과 안내문의 정정과 관련해 사천시에 문의한 결과 명칭 변경은 경상남도에서 최종 결정할 사항으로, 2020년 제5회 경상남도 사적·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부결된 사실을 전했다. 사실상 명칭 변경을 할 의사가 없다는 말이다.

왜 부결이 되었냐는 질문에 조선왕조에서 공식적으로 단종 태실로 기록했고,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수개의궤> 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천 단종 태실지가 인성대군의 태실이라는 주장에 대해 <태봉>에 1928년 태실을 봉상소로 봉출할 때 단종대왕 태실로 표기되어 있다며, 같은 기록 안에서 봉출할 때의 기록과 1930년의 기록이 다른데, 왜 뒤의 것만 보고 앞의 기록은 이야기하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여기서 한 가지 전제해야 하는 점이 있다. 영조 이후 사천 단종 태실지에 가봉 태실 석물이 가설되었고, 단종의 태실로 불린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 단종의 태실이 왜 사천에 있는지 설명이 안 된다는 점이다. 앞선 기사를 통해 <문종실록>과 <세조실록>에 단종의 태실이 성주 법림산에 있었고, 철거된 사실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 성주 단종 태실지에서 확인된 연엽주석 2020년 5월 조사에서 확인된 연엽주석으로, 법림산에 단종의 가봉 태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유물이다.
ⓒ 김희태
 
따라서 사천에 단종의 태실이 있어야 한다면 이는 단종의 태실이 별도로 이봉되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단종 태실에 대한 이봉 기록이 없다. 반면 일제강점기 때 사천 단종 태실지에서 지금의 서삼릉으로 이봉 과정에서 확인된 인성대군의 태지석을 통해 기존 태실의 태함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가봉 태실 석물을 가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성대군의 태실인데, 단종의 가봉 태실 석물이 배치된 형태로, 정상적이라면 이러한 형태의 태실이 나올 수가 없다. 즉 조선 왕실에서도 인성대군의 태실인지 모르고, 단종의 태실로 가봉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당시의 출장 복명서인 <태봉>의 기록에서 1928년에는 단종대왕 태실로 기록되어 있는데, 왜 뒤의 기록에 인성대군의 태실로 기록된 것인지는 전후사정과 맥락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조 이후 사천 단종 태실지는 단종의 태실로 기록되어 왔는데, 실제 <정조실록>을 보면 열성조의 태봉 기록과 관련해 단종의 태실이 곤양(昆陽) 소곡산(所谷山)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928년 봉상소로 태실을 이봉하기 전까지 해당 장소를 단종 태실로 알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태지석의 확인과 함께 단종이 아닌 인성대군인 것이 확인되었으니 1930년의 기록에 인성대군의 태실로 기록된 것이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실제 서삼릉 경내에 있는 태실에 왜 단종의 태실이 없고, 인성대군의 태실만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 서삼릉에 있는 인성대군의 태실비 전면에 인성대군태실(仁城大君胎室)이 새겨져 있다.
ⓒ 김희태
▲ 인성대군 태실비의 후면 □□□년오월/자경남사천군곤명면이장(□□□年五月/自慶南泗川郡昆明面移藏)이 새겨져 있다.
ⓒ 김희태
 
혹자는 이러한 시간차를 두고 인성대군의 태지석이 사천 단종 태실지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태봉>과 서삼릉에 있는 인성대군의 태실비 뒷면에 옮겨온 장소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다. 또한 2019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진행한 <서삼릉 내 묘역 및 태실 역사성 회복 연구 결과보고서>에서도 사천 단종 태실지를 인성대군의 태실로 고증한 바 있다.

이번 기사를 다루면서 하나의 장소를 두고 경북 성주군과 경남 사천시 사이에 기 싸움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사천시 관계자와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말 중 "저쪽은 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해야 하냐?"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물론 명칭과 안내문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분명 지역 안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고, 쉽지 않다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앞선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한번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는 것은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잘못된 정보를 접하는 관람객과 일반인이 입는다. 이대로 잘못 알려진 사실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볼 것인가? 사천 단종 태실지는 누구를 위한 문화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