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이수씨가 '섭씨'를 만들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김현자 2021. 1. 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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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책 '이명학 교수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

[김현자 기자]

최근 한 선교회 관련 코로나19 집단 감염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코로나 종식에 대한 희망을 품을만하면 특정 종교 단체의 집단 감염이 일어나곤 해 분노스럽다. 실상은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지만, '종교적 신념'이란 미명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기적인 행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이비종교의 폐해 등에 대해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비'는 어떤 말일까? 외국어스러운 어감 때문에 외래어 혹은 영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가짜'라는 뜻의 이 '사이비'라는 말은 같을 사(似), 어조사 이(而), 아닐 비(非)로 된 한자다. <논어> 에도 나올 정도라니 2500년이나 써온 한자인 것이다.
 
섭씨는 섭씨온도계 눈금의 명칭입니다. 물의 끓는점과 물의 어는점을 온도의 표준으로 정하여, 그 사이를 100등분 한 온도 눈금이지요. 1742년 스웨덴 학자 셀시우스(Celsius)가 고안했는데, 바로 이분 셀시우스의 한자 이름이 섭이수입니다. 셀시우스와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이름을 표기한 것이지요. 그래서 '섭이수 씨'가 만든 눈금이라고 하여 섭씨라 부르게 되었고 '℃'로 표시합니다.

영어권의 여러 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온도 단위 화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학자 파렌하이트(Fahrenheit)가 고안한 것인데 파렌하이트의 한자 이름이 화륜해입니다. 그 성을 따서 화씨라 부르게 되었고 '℉'로 표시하는 것이지요. 섭씨온도와 화씨온도가 사람의 성을 따서 만든 온도 단위라니, 과학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나요? -17쪽~18쪽
 
우리가 몰랐던 한자의 세계

 
 <이명학 교수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 책표지.
ⓒ 김영사
 

<이명학 교수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김영사 펴냄)는 '사이비'처럼 우리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한자들의 뜻과 어원을 들려준다.

'심지어, 도대체, 물론, 소위(이른바), 급기야, 역시, 기어이, 여하간(하여간, 하여튼)'

평소 즐겨 쓰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자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말로 알고 쓴 것 같다.

''식겁'하다, 지금, 배낭, 포옹, 배려, 나사, 양말, 용수철, 한파' 같은 한자들과, '인증샷, 깡패, 컴맹, 깡통, 악플, 멘붕, 넷심, 광클, 스키복, 머그잔, 보도블록, 헬조선'처럼 한자와 영어 혹은 외래어 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들도 마찬가지.

이 책을 통해 알기 전까지 이런 말들을 보고 우리말이거나, 문화 발달과 함께 새로 생겨난 말, 즉 신조어나 외래어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한자와 전혀 연결하지 않았다. 

양말은 서양에서(洋) 들어온 버선(襪)이라고 해석해 우리가 만든 한자다. 용수철도 마찬가지. 인증샷은 알 인(認) 증거 증(證)+shot, 깡패는 깡(갱 gang)+무리 패(牌), 넷심은 internet+마음심(心), 깡통은 깡(캔 can)+대롱 통(筒), 멘붕은 mental+무너질 붕(崩), 광클은 미칠 광(狂)+click 등이다. 배려는 일본이, 한파는 서양에서 만든 한자란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한자를 많이 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명사 중 70% 이상이 한자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들 말처럼 우리말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는 물론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한자를 교과목으로 배운 세대다. 그럼에도 알고 있는 한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에는 '2006년 대학 입학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는가? 묻자 60%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부모 40%만이 자녀의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다고 답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며 지루하고 지겨웠던 한문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은 나뿐일까? 노력해도 쉽게 익혀지지 않았다. 생활에서 주로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한문을 <논어> 같은 고전의 구절이나 중국 역사에서 비롯된 고사, 혹은 일화와 관련된 사자성어로 터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배움 방법이 잘못됐던 것 같다. 

이렇다 보니 한자를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한편, 고리타분하다거나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한자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자는 우리말의 공백을 메꿔준 말이다.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 속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많은 것들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여전히 많은 한자를 접하고 있다. 한자를 많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제대로 알고 제대로 쓰자. 그래야 뜻이 제대로 전달되고 제대로 소통되기 때문이다.'

책은 이런 취지로 출발했다. 그래서 저자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한자어들을 5장(반전의 한자어, 오해의 한자어, 발견의 한자어, 관계의 한자어, 공감의 한자어)으로 분류해 들려준다. 대부분 짧은 글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래서 술술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이런 만큼 한자 혹은 우리말, 그리고 자신이 쓰는 말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겠다.

늘 쓰면서도 어떻게 나온 말인지 잘 몰랐던 '섭씨와 화씨'의 어원을 비롯하여, 과거 성적표에 기재되던 '수우미양가'에 숨어있는 사연과 뜻, 낙선한 의원들과 관계있는 '하로동선', 은행이란 말에 얽힌 이야기 등 인상 깊게 읽은 것들이 많다. 혼동해 쓰기 쉬운 말들이나 잘못 선택해 쓰는 말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염수분사구간'이라고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표지판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빌딩 앞에 '출차 주의'라는 낯익은 표지판을 봅니다. 한글 전용은 '차가 나오니 조심하세요'가 되겠지요. 만약 표지를 '한글 전용'으로 바꾸려면 글자 수가 배로 늘어날 겁니다. 비용도 더 들고 가독성도 떨어질 테지요. 정신 놓고 읽고 있다가 차에 부딪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자어는 조어력, 즉 말을 만드는 힘과 가독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경제적입니다.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 복잡한 글자를 쓸 줄 알아야 합니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기본적인 한자 교육은 하지 않고 행정 편의상 한자어를 한글로 일방적으로 써놓은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인지, 그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159쪽.

지난 수십 년간 한자를 가르쳐왔다는 저자는 한자 교육의 필요성과 문제점 혹은 허점을 짚는다. 실생활에서 자주 마주하는 한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맙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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