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피플] 1992년 외롭게 싸운 '헐크'.."연봉 조정, 그땐 바위에 달걀 던지기"

배중현 2021. 1.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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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전 SK 감독은 1992년 연봉 조정을 신청했지만 패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리인 제도가 없어서 연봉 조정과 관련한 자료를 선수가 직접 다 준비했다. 이 전 감독은 주권이 연봉 조정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IS포토

"세월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거 아닐까 싶다."

'헐크' 이만수(63) 전 SK 감독이 KT 불펜 주권(26)의 연봉 조정 결과를 보고 한 말이다.

주권은 지난 25일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연봉 조정위원회에서 구단을 상대로 승리했다. 2억5000만원을 요구한 그는 2억2000만원을 제시한 구단과 팽팽하게 맞섰다. 조정위원들은 마라톤 회의 끝에 주권의 손을 들어줬다. 연봉 조정위원회에서 선수가 승리한 건 KBO리그 역사상 2002년 LG 류지현 이후 19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 투수로는 사상 처음이었다.

이만수 전 감독은 주권의 '연봉 조정 선배'이다. 이 전 감독은 1992년 1월 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했다. 8125만원을 요구해 7150만원(1991년 연봉 6500만원)을 제시한 구단과 대립했다.

그해 해태 한대화, 빙그레 이정훈, 태평양 최창호를 비롯한 11명의 선수가 연봉 조정을 원했다. 공교롭게도 다른 선수들은 조정을 모두 취소했다. 삼성 동료 류중일과 김용국도 마찬가지. 연봉 조정이 시작된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총 10번의 연봉 조정위원회에서 선수가 다 졌다. 선수 입장에선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괜히 구단에 미운털만 박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만수 전 감독은 '승률 0%'에 도전했다.

선수 시절 이만수 전 감독의 모습. 중앙포토

이만수 전 감독은 "그땐 구단이 거의 '갑'이었다고 보면 된다. 조정을 신청해도 이기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신청하면서도) 거의 안 된다고 봤다. '바위에 달걀 던지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열흘 정도 밤을 새워 데이터를 직접 정리했다. 옛날에는 선수가 자료준비를 다 했다"며 "내가 왜 이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 KBO에 설명도 직접 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구단 측이 제시한 7150만원으로 1993년 연봉이 확정됐다.

이만수 전 감독이 연봉 조정에서 패한 뒤 9명의 선수가 더 도전했다. 2002년 류지현이 사상 처음으로 선수 요구액을 받는 데 성공했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2010시즌 타격 7관왕에 오른 이대호(롯데)마저 연봉 조정에서 패하자 '어떤 선수가 조정을 신청해도 이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더 퍼졌다. 실제 이대호 이후 단 한 번도 연봉 조정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2012년 LG 이대형이 연봉 조정을 신청한 뒤 취소했고, 2013년부터는 아예 조정 신청조차 없었다.

구단 측 연봉 제시액에 불만이 있어도 사인했다. 울며 겨자 먹기였다. 그러는 사이 연봉 조정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으로 전락했다. 2021년 주권의 연봉 조정 승리가 갖는 의미가 더 큰 이유다. A 구단 관계자는 "지금까진 구단이 말하는 대로 선수들이 끌려갔지만, (2018년부터) 대리인 제도가 도입돼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내년부터는 연봉 조정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옛날엔 마땅히 제시할 자료도 부족했다. (세부) 데이터도, 에이전트(대리인)도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앞서 많은 선배가 불합리하더라도 조정 신청을 했다. 그런 게 쌓여서 후배들도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라며 주권의 승리를 반겼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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