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컷인] 깨져야 하는 것들을 깨기 위한 노력

김희선 2021. 1.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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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한축구협회 첫 여성 부회장으로 선임된 홍은아 교수와 이사진에 합류한 신아영 전 아나운서. 사진=IS포토·대한축구협회

때때로 처음은 시작을 뜻한다. 처음과 시작은 동의어가 아니지만, 가끔 유의어처럼 사용된다. '처음'이 등장했다는 건 '다음'이 있을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27일, 대한축구협회(KFA·이하 축구협회)와 대한민국농구협회(KBA·이하 농구협회)가 나란히 역사에 '처음'을 하나씩 새겼다. 축구협회는 이날 사상 첫 여성 부회장을, 농구협회는 올림픽 구기 단체 종목 최초로 사상 첫 여성 사령탑을 선임했다. 종목과 분야는 달라도 각각의 역사에 최초로 남을 의미 깊은 '시작'을 한 셈이다.

축구협회는 27일 대의원총회를 열고 부회장 6명과 분과위원장 5명, 이사진 11명 등 22명의 임원과 감사 2명을 선임했다. 부회장 명단에서는 홍은아(41) 이화여대 교수가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 축구협회가 여성에게 부회장을 맡긴 건 처음이다.

홍은아 부회장은 2003년 한국인 최연소 국제심판 자격을 얻은 뒤 2010년 잉글랜드축구협회 여자 FA컵에서 비(非) 영국인 최초로 주심을 맡았다. 또 같은 해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 개막전 주심으로 나서 한국인 최초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개막전 심판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2년 현역 은퇴 후 모교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교수로 일하며 FIFA 심판 강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번 임원 발표를 보면 예전과 달리 부회장 6명의 업무 영역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 실무적인 부분에서 리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4년이었던 임원 임기를 2년으로 바꾼 것도 자신의 업무에 깊게 관여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은아 부회장의 업무 영역은 여자축구와 심판이다. 정몽규 회장이 취임사에서 첫손에 꼽은 과제가 여자축구 발전 및 저변확대인 점을 고려하면, 사상 첫 여성 부회장 선임의 의미는 한층 더 묵직해진다.

이사진에 합류한 신아영(34) 전 아나운서 얘기도 빠질 수 없다. 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팬들 사이에선 그가 전문성을 가진 인물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표팀 감독이 아닌 이사진 발표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집중된 것도 처음이다.

신아영 전 아나운서의 이사진 합류는 파격보다는 변화를 추구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사회는 축구계 전반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야 하는 의결기구로써 다양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축구계의 현안들을 바라보고, 이를 이사회에서 반영하길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관에도 임원진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일 대학 출신자 및 재직자가 재적임원수의 20%를 초과할 수 없으며, 국가대표 출신이 20% 이상, 비경기인(학계·언론계·법조계 등)이 20%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코치(왼쪽). IS포토

축구협회가 하나의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 날, 농구협회도 전주원(49) 아산 우리은행 코치를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 '최초'의 기록을 만들었다.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인 전주원 감독은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인 농구, 배구, 축구, 핸드볼, 필드하키 등을 통틀어 올림픽 본선에 나서는 한국 최초의 여성 사령탑이 됐다.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에서 한국이 여성 감독 체제로 나선 건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지휘한 새러 머리(캐나다)가 유일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단체전을 박세리가 이끌었으나, 골프는 단체 구기 종목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홍은아 부회장 선임, 신아영 전 아나운서의 이사진 합류, 그리고 전주원 감독 선임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히 변화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시작에서 '처음'을 맡은 이들의 어깨는 늘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압박과 부담을 이겨내고, 다음으로 이어질 징검다리를 놓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유리천장도 깨지기 마련이다. 계속 두드리면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있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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