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어떤 휴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휴가 마지막 날 저녁,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출근하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밀접 접촉은 아니지만 휴가 바로 전날, 나 역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고 아직 잠복기일 수 있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직장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잠시 후 왜 하필 휴가 마지막 날, 그것도 보건소가 문을 닫은 지금에야 연락이 온 건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휴가 마지막 날 저녁,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출근하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직장의 누군가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집콕’ 휴가 중인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휴대폰이 울렸다. 밀접 접촉은 아니지만 휴가 바로 전날, 나 역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고 아직 잠복기일 수 있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직장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순간 가족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오랜만에 장이라도 보기 위해 다녔던 동네의 동선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잠시 후 왜 하필 휴가 마지막 날, 그것도 보건소가 문을 닫은 지금에야 연락이 온 건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아울러 그동안 만에 하나 주변에 민폐를 끼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휴일의 마지막 순간마저 뺏긴 듯한 억울함이 동시에 쏟아지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런데 그렇게 균형을 잃고 씩씩대다가 어느 순간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감염성 질환과 관련된 심리 반응들이 진심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들이 쉬는 이 늦은 시각에 연락을 돌릴 만큼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생은 못 보고, 무작정 투덜거린 내 자신이 슬그머니 민망해졌다. 그리고 지금이 내 감정을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고 다스려보는 연습을 할 기회란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듯 난동을 부리던 부정적 감정들 역시 모래성이 무너지듯 스르르 가라앉았다.
불안과 공포는 사실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마음의 창 때문에 생겨나는 법. 이제 그것을 새삼 깨달은 만큼 내 마음의 그릇도 조금은 넓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로 밤을 보낸 다음 날 받은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에 흔들리지 않아도 될 날이 하루속히 오길 바라는 조바심은 마음 한켠에 남아 얼룩을 남겼다. 아마도 이 얼룩은 이 상황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꽤나 오래 남아있을 것만 같다.
배승민 의사·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피해자 장혜영' 향한 요구는 정당한가..전문가에게 물었다
- “아스트라제네카, 65세 미만에만 접종” 독일 권고
- 전국 강풍특보..내일 출근길 체감온도 영하 22도
- "교사가 유치원 급식에 모기기피제 뿌려..코피 20분 쏟았다"
- 12살 딸 성폭행한 말레이 계부, '1회당 10년' 1050년형
- 쓰레기인줄..내다버린 3억원어치 달러, 어디로 갔나
- 우상호 "나경원, 23억 은마아파트 녹물은 안타까운가"
- ‘귀멸의 칼날’ 1위 질주에…日 “한국 불매운동 안해?” 조롱
- "친오빠가 찔렀다" 이 말하고 신길동 주택가 쓰러진 여성
- "그 서류 연고대 위한 것" 정경심 문자, 최강욱 발목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