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지혜의 상징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

양민경 입력 2021. 1. 2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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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지음
이라이프아카데미 옮김/두란노
세대를 초월한 우정은 노인과 젊은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게티이미지


“때로 내가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현재 과학이 이루고 있는 급속한 진보는 어디까지 발전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의 힘이 물질을 넘어서… 노년의 질병을 포함해 모든 질병이 확실하게 예방되거나 치료되고 우리의 수명이 연장되는 그 즐거운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74세이던 1780년에 남긴 글이다. 현시점에서 본다면 프랭클린의 말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된 듯하다. 20세기 초반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47세였으나, 지금은 남자 76세, 여자 80세가 됐다. 100세 이상 인구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1980년대 1만5000명이던 미국 내 100세 이상 초고령자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10만명을 넘어섰다.

생명 연장의 꿈이 일부 이뤄진 게 사실이지만, 노화는 아직 정복되지 못했다. 평균수명은 늘었어도 노화로 인한 신체·정신적 고통과 쇠퇴는 지속되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소외도 찾아온다. 이쯤 되면 장수는 더이상 축복이 아니다. 나이 듦은 결국 인생 황혼에 맞닥뜨려야 할 저주일 뿐일까.

책을 공동 집필한 기독교 사상가 18명은 이런 시각을 거부한다. 책의 대표 저자는 미국 ‘타임’지가 2001년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꼽은 스탠리 하우어워스 듀크대 신학대학원 석좌교수다. 책은 하우어워스 교수와 같은 대학에 속한 키스 메도어 의학전문대학원·신학대학원 교수, 리처드 헤이스 신학대학원 석좌교수 등이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나이 드는 것은 무엇인지, 노화를 바라보는 성경의 시각은 어떤 것인지 집중 탐구한 결과물이다.

성경은 노화를 “부정적 실체로 보는 입장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긍정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창세기는 인간의 죄로 죽음과 노화가 생겨났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출애굽기 이후부터 나이 듦은 축복과 의로움, 지혜의 상징이 된다. 출애굽기는 부모를 공경하는 이는 장수가 약속된다(출 20:12), 잠언은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이라 칭한다.(잠 16:31)

신약성경 전반, 특히 목회 서신에서는 과부와 함께 노인을 공경하고 이들의 믿음을 본받는 것을 의무로 표현한다. 노인이 홀로 있거나 도움을 구하면 교회 공동체가 마땅히 이들을 돌봐야 함도 강조한다. 노인이 된 가족을 버리는 이는 악한 자라며 엄히 꾸짖기도 했다.(딤전 5:8)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대로 공동체 내에서 노인을 돌보며 이들의 영성과 신앙심을 본받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초대교회의 관점은 현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지금의 교회 역시 ‘열심히 노력하고 과학적인 역량을 최대한 신뢰한다면 죽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치료주의’(therapeutic)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고난과 희망으로 가득 찬 기독교 이야기를 허상의 치료적 낙관주의와 거래한 셈”이라고 꼬집는다. 또 “예수가 우리에게 약속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부활과 다가올 시대를 향한 매우 특별한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적 진보를 거절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젊음과 건강이 숭앙받고 노화와 죽음은 부정적으로 보는 왜곡된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들은 나이 듦에 관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교회가 앞장서야 할 일도 제시한다. ‘세대를 초월한 우정 쌓기’ ‘노년의 소명을 발견·실천하도록 돕기’ ‘교회 공동체에서 노인의 기여 늘리기’ 등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노화는 기회 상실이 아닌, 선을 위한 섬김의 계기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에 관해선 기독교의 전통적 견해를 고수한다. 이들은 안락사가 “자신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믿는 기독교 신앙과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는 동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습관을 평생 지키는 것”이 저자들이 제안하는 ‘나이 듦에 관한 기독교적 실천’이다. 나이 듦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교회 공동체가 늘어난다면, 노화가 주는 사회적 압박감을 벗어나는 사람도 그만큼 늘 수 있을 거란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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