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애도와 성찰로 내딛는 새해 첫걸음
서울시립교향악단 신년 첫 음악회(1월 21일 롯데 콘서트홀·사진)의 화두는 ‘죽음’이었다. 프로그램은 하이든이 자신의 장례에서 연주해달라고 했던 하이든 〈교향곡 44번〉 일명 ‘슬픔’, 바르토크의 서거 10주년을 추모하는 루토스와브스키의 〈장송음악〉,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8번〉의 현악합주 버전으로 구성되었다. 이 레퍼토리를 직접 기획하고 지휘한 성시연은 ‘코로나 시대에 길을 잃은 듯한 나의 모습과 대면하고 또 자신을 솔직히 애도하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지휘봉 없이 날렵한 손동작으로 음악을 이끈 성시연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선율선을 만들어 냈고, 명확한 대조와 단계적 음향의 상승을 치밀하게,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청중을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이끌었다. 서울시향의 연주를 들으며 한 단계씩 점차로 죽음과 애도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하이든의 〈교향곡 44번〉은 ‘어린애다운 명랑한’ 평소의 하이든과는 다르게 단조로 작곡된 차분한 곡이었는데, 스스로 장례식에서 연주해달라고 했던 아다지오 악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장조로 되어 있다. 쳄발로의 음향이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진 사운드는 밝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루토스와브스키는 폴란드의 현대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바르토크를 추모하는 〈장송음악〉은 12음기법을 활용하여 루토스와브스키 특유의 화성을 창출한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다. 그는 이 곡에서 바르토크를 모델로 삼지 않았음을 밝힌 바 있지만, 연주를 듣는 동안 바르토크 음악의 대위적 짜임새와 수학적 구성력을 느낄 수 있었고, 세번째 부분 ‘정점’에서는 우주적 음향이 신비스럽게 펼쳐지면서, 애도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드레스덴을 방문한 시기에 작곡된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8번〉은 전쟁에 희생된 죽음을 추모하는 동시에 작곡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이름 이니셜(DSCH)을 활용하면서 스스로를 음악에 넣었고, 중세 장례 미사곡 ‘진노의 날’ 모티브를 인용하며 죽음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시향의 연주는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서늘한 왈츠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인생에 있어 우리의 삶은 유한하며, 마치 꽃처럼 짧게 자신의 인생을 꽃피웠다가 주는 것’이라는 피터 보르네미스자의 시가 음악회 내내 떠올랐다. 음악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형상화하며 애도하고 또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시향의 연주를 통해 애도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올 한해를 살아낼 힘도 얻을 수 있었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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