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뒤늦게 시작하는 백신 접종, 투명하게 시행해야
전문가 의견 수렴해 치밀한 계획을
정부가 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이미 접종을 시작했고, 아이슬란드는 해외 여행을 위한 ‘백신 접종 증명서’ 발급에 나선 가운데 뒤늦게나마 백신 공급 일정이 나온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도입하는 네 가지 백신은 접종 방법부터 보관·유통·저장법이 판이해 의료기관도, 국민도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 백신을 교차 접종하면 1차를 맞은 뒤 2차 접종 전에 물량이 소진되는 경우 등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코로나19 와중에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의 상온 노출로 혼란을 가중시킨 지난해 실수를 되풀이하면 모든 일정이 틀어진다.
65세 이상에 대한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요양병원 환자들이 맞는 상황도 염려스럽다. 전병율(전 질병관리본부장)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연령층에 대한 효과가 불확실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인해 시행 초기부터 논란이 일 경우 백신 사업 전반에 불신이 커질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16세 청소년에게도 접종하는 이스라엘과 달리 18세 이상 또는 19세 이상을 대상자로 적시한 정부 자료도 혼란스럽다.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건 그동안 정부 대처가 못 미더웠던 탓이다. 국가가 관할하는 서울동부구치소에서 확진자가 1200명 이상 발생해 집단 감염 최악의 사례를 기록했다. 요양병원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3밀(밀폐·밀집·밀접) 시설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음에도 광주 ‘국제학교’의 학생 집단 감염을 막지 못했다.
다른 나라가 접종을 개시할 때까지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국민이 불안해하자 당국은 “백신의 심각한 부작용을 감안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또 “세계 최초로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적반하장의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지금의 불신은 백신에 대한 당국의 오판이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뒤늦게라도 백신 확보를 서두르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감염병 전문가들은 “백신 도입과 실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한다. 전문가와 소통하며 추진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정부의 원칙을 현장에서 실감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경제적 효과를 고려해 “가장 후순위로 거론되는 20~40대 젊은 인구의 접종 순위를 높이는 것을 검토하자”(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장에도 귀를 열기 바란다. ‘투명’의 약속이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면 의료계뿐 아니라 경제전문가를 비롯한 각계의 지혜를 모아 최적의 접종 공식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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