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문 돌아온 꿈과 사랑의 세계

이마루 2021. 1. 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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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권의 '완전체'로 돌아온 #달의요정세일러문 . 세일러 문 번역가가 직접 꼽은 세일러문과 닮은 케이팝 아이돌은 누구?
총 10권의 완전판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세일러 문

레트로 열풍은 패션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방과 후 애니메이션을 본방 사수하기 위해 집으로 뛰어 달려가던 기억, 대여점에서 빌린 만화책들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몰래 같이 보던 기억을 갖고 있는 ‘그 시절’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만화들의 재출간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요. 지난 여름 〈레드문(황미나)〉 〈아르미안의 네 딸들(신일숙)〉 〈비타민(여호경)〉 〈궁(김소희)〉 같이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사랑 받았던 한국 순정만화들이 컬러링북으로 출간한 것에 이어 12월에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2020년 출간된 추억의 순정만화 컬러링북

바로 인터넷 서점이 〈아르미안 네 딸들〉의 복간판을 위한 펀딩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죠! 그야말로 ‘명작’으로 꼽히는 이 1986년도 작품은 그 명성에 걸맞게 1998년, 2008년에도 재발매 됐지만 전 20권 완결의 초판 버전이 복간된 시도는 최초입니다. 심지어 펀딩은 원래 목표 금액의 40배를 뛰어 넘는 1억 2467만 원을 기록하며 역대 알라딘에서 진행한 70여 건의 북펀드 중 최고 금액을 기록했죠! 기본 디자인은 20세기 감성을 물씬 살렸지만 원본 표지를 일일이 새롭게 스캔해 작가가 직접 포토샵으로 수정해서 마무리하는 등, 훨씬 고해상도의 깨끗한 버전으로 만화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1억원 넘는 펀딩에 성공한 아르미안의 네딸들 레트로 복간판 ⓒ거북이북스

그리고 얼마전 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990년대 중반, 전세계 40여개국에서 방영되며 남녀노소에게 대대적으로 사랑받은 〈달의 요정 세일러 문〉의 원작 만화책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다케우치 나오코)〉이라는 정식 타이틀로 전 10권으로 재발간된 것이죠. 국내에서는 무려 22년 여 만의 재발매이기 때문에 더욱 화제입니다(18권 세트의 중고가격이 현재 50만원에 달한다니 엄청나죠).

그야말로 화려하게 귀환한 세일러 문

사실 세일러 문의 인기나 영향력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이 종영된 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도 수년 전 의류 브랜드 스파오나 코스메틱 브랜드와 협업해 선보인 제품들이 10대, 20대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처럼 레트로한 세일러 문 만의 감성은 10대, 20대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거든요.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분석에 의하면 책의 연령별 판매비율은 30대가 68.8%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20대 또한 11.1%,로 40대 12.9%를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책 한 권 정가가 1만6500원임을 감안하면 높은 숫자죠

뷰티 &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인기를 끌었던 세일러문 굿즈들

그렇다면 총 10권, 장장 3,326쪽, 6,280g에 달하는 이 엄청난 분량의 만화를 한글로 옮긴 사람은 누구일까요? 지난 1월 15일 국내에 출간한 완전판의 번역자 안은별은 1980년대 중반 생으로, 세일러 전사들과 비슷한 나이인 10대에 만화를 보고 자랐습니다. 30대가 되어 도쿄에서 문화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눈에 하나의 ‘사회적 현상’과도 같았던 이 만화는 지금 어떻게 다가올까요. 번역가 안은별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아 보았습니다.

Q&A

Q1. 물리적 요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존재감의 작품이다. 번역을 하며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게 있다면

번역 제안을 받은 것은 무려 7년 전이었다. 희미한 추억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는 작품 자체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유명한 이 작품의 한국어판 출간에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져 번역에 참여하게 됐다.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코믹스’로서의 완성도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문자들 중 가장 중요한 건 수많은 등장인물의 이름과 그들이 외치는 구호인데, 그 일관성을 지키고 실수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간혹 번역 만화는 ‘서브컬처 팬을 의식했다’는 것이 의식될 정도로 일본어 문헌에서 쓰이는 단어나 표현을 직역에 가깝게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또한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Q2. 2021년인 지금, 이 90년대의 코믹스를 돌아봤을 때 개인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이 작품을 제대로 읽는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라는 독자들의 반응과 더불어 스스로 처음 작업을 하면서 새삼 느꼈던 매력은 이 작품의 ‘거침 없음’에 있지 않나 싶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를 마음껏 섞어 내놓은 것 같은 일종의 사치스러움이 있다고나 할까. 과학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매력적인 기호를 채취해 그걸 오컬트의 일부로 섞는가 하면, 소년 만화를 포함한 서브 컬처 작품들의 상상력을 가져오고, 여기에 멜랑콜리하면서 반짝이는 이미지를 총동원해 사랑과 우정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아주 크게 외친다. 세상의 무서움을 아직 모르는 중학생이 수업 시간에 들은 신비로운 이야기의 키워드만 모아 반짝이는 물건들로 심혈을 기울여 꾸며 놓은 다이어리 같은 매력이랄까. 그런 대범함과 사치스러움은 요즘 콘텐츠에는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고.

Q3. 아무래도 세일러 문 애니메이션이 조금 더 친근한 세대로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한 종이 만화 만의 가치도 있다면 무엇일까

만화의 설정이나 이야기 자체에 빈틈이 많음에도, 작품 자체는 독자를 계속 그 세계 안에 붙잡아둔 채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진행된다는 점. 일견 황당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세계 안은 구석구석 이치가 통하는 질서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캐릭터 설정이 처음부터 단단했을 뿐 아니라,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작가가 비교적 자기 뜻을 관철시키며 연재를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만화 잡지의 전성기였던 20세기 후반, ‘대박’을 떠트린 스타 작가에게는 말하자면 이런 ‘작가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같은 기회가 주어진 면도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이건 내 상상이지만 만일 정말 그렇다면 이것이 ‘종이만화’라는 매체의 물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에서 오는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2021년,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한국의 종이 만화 시장에 이 어마어마한 원작을 옮겨 오는 작업에 참여한 일은 그러므로 이 매체의 ‘사회성’을 절감하기도 한 경험일 수도 있겠다.

Q4.〈세일러문〉은 동북아시아 문화권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초히트'를 친 애니메이션이다. 반면 캐릭터들의 복장이나, 여전사의 '미'가 강조되는 면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이런 지적에 번역자로서 공감하나. 혹은 충분히 더 강조되어야 할 가치가 이 시리즈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세일러 문은 ‘소년’과 ‘소녀’가 철저히 양분됐던 일본의 아동용 이야기 시장에서 ‘여자아이가 여자아이인 채로 전투에 나선 첫번째 사례’다. 그리고 이 전환 과정에서 '소년 왕국의 틀을 통째로 가져다 쓰되 소녀 왕국의 디테일을 몽땅 집어넣었다(사이토 미나코 〈요술봉과 분홍제복〉)'라는 점이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즉 싸우긴 싸우는데, 전투의 동기부터 전투에 임하는 모습, 더욱 강력해지는 방법까지, ‘여자아이다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 아이들의 땀투성이 싸움을 더 멋지고 더 중요한 위치에 두고 따라 잡으려는 게 아니라, ‘못생긴 건 싫어. 강한 건 사랑의 힘이야. 예쁜 것으로 가득한 전투를 하자!’ 같은 태도라고 할까. 사랑의 궁극적인 이상으로 제시되는 게 ‘공주님’ 우사기(세일러 문)와 ‘왕자님’ 마모루(턱시도 가면)의 결혼을 그 영원한 약속으로 하는 남녀 로맨스라는 점까지도 꿈과 사랑의 결정체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이걸 끝까지 밀고 나간 노골적인 솔직함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게 없으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작품 아닐까. 물론 문제적이지만 다만 모든 작품이 그렇듯 하나의 작품이 더 나은 사회적 규범의 확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점이 더 많은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가능하게 한다는 게 이 작품의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세일러 전사들의 대형과 스타일은 지금 익숙한 걸그룹의 패션과 포메이션을 연상시킨다

Q5.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세일러 전사가 있을까? 혹은 번역을 하면서 더 좋아하게 된 캐릭터가 있다면

처음부터 마지막 교정지를 넘길 때까지 내 ‘최애캐’는 아이노 미나코(세일러 비너스)로 한결같았다. 생각을 잘 안 하고 그때그때 욕망에 충실한 스타일이라(?) 대사가 재미있기 때문. 특히 신중하고 조용한 세일러 마스와의 케미가 좋다. 케이팝 여자 아이돌들의 캐릭터 배치나 비주얼 기획에 세일러 문이 끼친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트와이스의 ‘Fancy’ 뮤직비디오를 보고 기획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세일러 문이 개발한 이미지의 훌륭한 계승이라고 생각한 바 있다. 아 그리고 아이즈원의 멤버 장원영 을 볼 때마다 우사기의 실사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토끼를 닮은 얼굴과 비현실적인 다리 길이에 긴 머리칼, 실제 나이. 아, 어디에 있든 단숨에 주인공이 되어 버릴 것 같은 그 주인공력(?)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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