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배우, 음향감독.. '난민' 아닌 '인간' 김민혁의 꿈

김순복 2021. 1. 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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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난민 지위 인정 후 3년, 고3이 된 김민혁의 이야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복 기자]

2월 1일 개학을 앞둔 한 고등학생이 있다. 이제는 고3 수험생이라 부르는 게 정확하다.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사실상 마지막 방학.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남은 방학 기간에 어떻게 놀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앞으로는 놀 수 없을 테니 지금이라도 즐길 생각이다. 코로나19만 아니면 예전처럼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텐데.

그의 이름은 김민혁. 2010년 7살 때 아버지와 함께 이란에서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는데 이란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이란에서 개종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졸지에 난민이 됐다. 다행히 민혁군은 2018년 10월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지난 18일, 김민혁군과 만나 '인간' 김민혁의 꿈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김민혁군이 제3회 고교패션콘테스트에 모델로 참가해 런웨이를 선보이고 있다.
ⓒ 고교패션콘테스트
 
훤칠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남다른 패션 스타일. 그는 자신의 장점을 발전시킬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강남에서 길을 걷다 모델 제의를 받는 등 자질을 입증받기도 했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주최하는 고교패션콘테스트에 참가한 것이 모델로서의 시발점이 됐다. 그 후로 제8회 고교패션컬렉션에서 서울시 교육감상, 2019 강남페스티벌 패션쇼에서 베스트포즈 상을 거머쥐며 패션모델로서 경험을 쌓았다. 이상봉씨가 연 파티에도 초청돼 패션모델 한현민씨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민혁군은 패션모델뿐만 아니라 연기 경력도 있다. 단편영화 <슈퍼스타>를 통해 다양한 영화제에서 10여 개의 상을 받았다. <슈퍼스타>는 그가 난민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각색해서 만든 단편영화다.

영화 제목은 가수 이한철씨의 노래에서 따왔다. 이한철씨는 난민 인정 시위에서 <슈퍼스타>를 불러 민혁군을 응원했다. 이후에도 한 영화제에 참석해 대상을 받은 그를 축하해줬다. 민혁군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제15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 영화제에 초청돼 부산에 내려갔다. 내려온 김에 친구들과 일주일간 여행을 다니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 김민혁군 제공
 
민혁군은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노래 음을 조절해 조화롭게 들리도록 하는 작업, '믹싱' 삼매경에 빠져 있다. 서울에 있는 한 작업실에서 보컬 믹싱을 한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어려운 시국에 최적화된 취미인 셈이다. 음향에 관심이 생긴 이유를 물었다.

"콘서트에서 가수의 노래가 빛날 수 있는 이유는 뒤에서 음향을 조절하는 음향감독이 있기 때문이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를 빛나게 해준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죠."

그의 노래를 향한 관심은 유튜브 시청 기록에서도 드러났다. 그가 휴대전화를 내밀며 보여준 유튜브 콘텐츠 목록에는 '신용재' '윤민수' '방탄소년단' '싱어게인' 등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수 신용재를 제일 좋아한다고. "사람이 낼 수 없는 음을 갖고 있어요. 이번에 나온 신곡을 듣고 완전 팬이 됐죠." 그의 표정에는 팬심이 묻어나 있었다.

민혁군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축구, 농구, 야구, 볼링 등 갖가지 운동을 다 했다. 특히 거미손 같은 그의 큰 손은 배구에서 빛을 발했다.

"중학교 때 배구를 했어요. 큰 손이 큰 장점이 됐죠. 아버지도 이란에서 배구선수 출신이셔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한창 클 나이라서 그런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다. 디저트, 햄버거, 고기. 그가 꼽은 탑3 음식이다. 또래 남자애들과 달리 디저트를 좋아한다. 한 카페의 '아이스박스' 케이크를 가장 좋아하는데 값이 비싸 자주 못 먹는다. 햄버거를 좋아하고, 고기는 돼지갈비를 고집한다. 특히 돼지고기 무한리필 매장은 그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다.
 
 민혁군 옆에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난민 문제로 민혁 군이 어려울 때마다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시위, 기자회견를 마다하지 않고 그를 도왔다.
ⓒ 김민혁군 제공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지만, 이전엔 줄곧 잠실에서 살았다. 천주교 신자인 민혁군은 지금도 예전에 다녔던 석촌동성당에서 미사를 본다. 코로나19로 대면으로 미사를 보지는 못하고 대신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행하는 '매일미사' 책을 읽는다.

지금은 서울의 모 공업고등학교에서 하이텍디자인과를 전공하고 있다. 하지만 배우는 내용에 큰 흥미를 못 느껴 다른 학교에서 위탁 교육을 받을 생각이다. 

"서울시립청소년드림센터에서 운영하는 '꿈에학교'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보컬과 음악 관련 수업을 들으며 대학 진학을 준비할 생각이에요."

대학에선 연기연극학과를 전공하고 싶지만 바로 입학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일단 대학에 들어가 전과나 편입을 할 계획이다. 내신이 엉망이라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책을 읽으면 눈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언제 한번은 소설 한 권을 푹 빠져 읽었던 적이 있어요. 내용이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면서 제가 마치 주인공이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집중해서 읽은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웃음) 책은 마치 수면제 같아요. 공부할 생각을 하니 벌써 막막하네요."

"앞으로 정확히 무엇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음향감독이 됐든 배우가 됐든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아버지의 난민 불인정, 코로나19... 남아 있는 '벽' 

평범한 고등학생인 민혁군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2019년 8월 8일, 그의 아버지는 난민 재심사에서 불인정 결정을 받았다. 대신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1년 단위로 체류 연장을 해야 하는 인도적 체류를 허용했다. 미성년자인 아들을 양육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내년이면 민혁군이 성인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금은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인데 아직 심리도 못 열고 있어요. 재판이 진행돼야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진행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코로나19도 고려해야 해서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19는 민혁군 가족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겼다. 아버지는 취업 제한 때문에 지금까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을 구하곤 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없어 집에서 쉬신다. 각종 사회보장 혜택도 못 받고 있다. 난민 인정자인 민혁군만 1차 재난지원금으로 32만 원을 받았을 뿐이다. 민혁군은 봉사단체 '라이온스 클럽'에서 고등학교 3년 동안 총 1000만 원의 장학금을 받아 이를 생계에 보태고 있다.

민혁군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아버지가 난민으로 인정되면 아버지와 태국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태국은 아버지가 꼭 가고 싶어 하시는 여행지이다. 민혁군은 이란에서 살았을 때 아버지와 함께 동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어렸을 때라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와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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