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대표님 감독 맡은 전주원, 그에게 주어진 과제

이준목 2021. 1. 2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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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여자농구와 한국 스포츠사에 기념비적인 이정표, 실력으로 승부해야

[이준목 기자]

한국 여자농구가 여성 대표팀 감독 시대를 맞이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가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27일 전주원 감독과 이미선 코치(42)를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코칭스태프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지난해 3월부터 대표팀 코칭스태프 공개모집을 단행하면서 감독-코치가 2인 1조로 응모하는 '러닝메이트' 방식으로 지원을 받았고, 전 감독은 이미선 삼성생명 코치와 한 조를 이뤄 도전장을 던졌다.

농구대표팀 여성 사령탑의 탄생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지난해 면접 결과 전주원과 함께 한국 여자농구의 또다른 레전드인 정선민을 최종 감독 후보로 올린 바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악화로 도쿄올림픽이 연기되면서 대표팀 감독선임문제로 잠정 연기됐지만, 올해 협회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정선민- 권은정 조와 마지막까지 숙고 끝에 전주원-이미선 조에서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중책을 맡겼다.

전주원 신임 대표팀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 역사상 최고의 가드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0년 실업팀 현대산업개발 여자농구단에 입단해 2011년 4월 신한은행에서 은퇴하면서 무려 21년을 활약했고,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역대 어시스트상 10회 수상, 통산 2천164개(평균 6.5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출산 후 2년 만에 코트로 복귀한 2005년부턴 팀의 5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코트를 떠날 때까지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국가대표에서도 정은순-정선민-박정은 등과 황금세대를 구축하며 아시안게임에서 금·은·동메달을 모두 수상했고, 2000시드니올림픽에서는 4강에 올라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이후 최고의 성적을 달성했다.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했다. 2011-2012시즌 코치로서 팀의 통합 우승에 일조한 전주원은 2012-2013시즌 23년간 몸담은 친정을 떠나 우리은행으로 둥지를 옮겼고 위성우 감독과 함께 전 시즌 최하위에 머물던 팀을 일약 통합 6연패로 이끌며 신한은행에 이은 여자농구 제2의 왕조를 구축했다. 우리은행은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된 2019-2020시즌에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여자농구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낼때도 대표팀 코치로서 기여했다.

전주원은 현재 한국 여자농구로서 선수와 지도자 양대 부문에 걸쳐 모두 가장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가장 눈부신 성공까지 거둔 독보적인 여성 스포츠인이라고 할만하다. 나이나 경력, 실적, 인품 등 모든 면에서 언젠가 감독으로서도 홀로서기가 충분히 가능한 인재로 꼽혀왔고, 결국 대표팀의 수장에까지 오르며 여자농구와 한국 스포츠사에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됐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지난해 2월초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조 4개팀 중 3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무려 12년 만의 본선 진출이다. 하지만 최종 예선까지 대표팀을 지휘했던 이문규 감독은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대회 기간내내 선수 혹사와 용병술 등에서 여러 가지 논란에 휩쓸리며 올림픽 티켓을 따내고도 결국 협회의 재신임을 받는데 실패했다.

구태의연한 옛날 지도자들의 낡은 리더십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감독 후보군에 오를만했던 프로 지도자들의 연이은 고사, 그리고 이제는 여성 감독이 등장할 때도 되었다는 공감대 등이 두루 맞물리며 '전주원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전주원 감독의 약점은 풍부한 코치 경험에 비하여 감독으로서는 어디까지 '초보'라는 사실이다. 현직 프로 감독이 대표팀을 겸임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감독 경력이 없는 프로팀 코치가 일국의 최상위 레벨 대표팀을 맡는 경우는 다른 종목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치로서는 검증받은 유능한 인물이라도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또 별개의 문제다. 

하필이면 초보 사령탑인 전주원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처음 도전해야 하는 무대가 올림픽이라는 사실도 부담이 클 수 있는 대목이다. 전주원 감독은 이미 전임자가 만들어놓은 올림픽 본선이라는 성과 위에 뒤늦게 올라탄 형국이다. 올림픽에서 경기력이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상당한 역풍을 맞게될 수도 있다.

또한 현재로서 도쿄올림픽이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도 난관이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올해도 진정되지 않으며 개최국인 일본 정부가 결국 올림픽을 포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대회 준비나 대표팀 운영이 가능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그동안 남성들이 독점해오던 유리천장이 연이어 깨지고 있는 흐름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부회장으로 국제 심판출신인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를 임명한 것을 비롯하여, 이사진에도 박채희 한체대 교수, 김진희 경기감독관, 방송인 신아영 전 아나운서 등 여성 임원들이 대거 중용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이 '행정'이라는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다면, 전주원 감독은 바로 '현장'에서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에서 '여성이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감독을 맡은 사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단일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했던 캐나다 국적자 새러 머리 감독이 유일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박세리 감독이 여자 골프 감독을 맡았지만 단체종목은 아니었다.

국내 여성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여자농구에서 금기의 벽을 깼다는 점에서 전주원 감독과 여자농구대표팀의 행보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자유로운 경쟁과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스포츠계에서도 여성들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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