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배상 판결에 떠올랐다, 3년째 아무도 손 못댄 56억

박현주 2021. 1. 2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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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해산 결정 후 남은 돈 56억원
일본 정부 돈이면 배상금 가능성 열려
한국 돈이면 법원 판결 부합하지 않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의사가 관건

지난 8일 법원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로 일차적인 사법정의는 실현됐지만, 실제 배상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일본 공관 압류 등도 거론되지만 현실성이 낮은 데다 한ㆍ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 수 있다. 2015년 한ㆍ일 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거출했지만, 지금은 성격이 불명확한 화해ㆍ치유 재단의 잔여기금 56억원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연합뉴스]



① ‘일본 출연금’ 얼마 남아 있나
일본 정부는 2016년 재단 출범과 함께 합의한 대로 10억엔(당시 약 108억원)을 출연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2018년 재단 해산을 결정했다. 10억엔을 재원으로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원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도 중단했다.

하지만 재단은 아직도 법적으로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고, 이미 지급된 돈을 제외한 56억원이 재단 기금으로 아직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잔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고, 일본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56억원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있다.


② 일본과 협상 가능할까
공관을 제외하면 한국에 있는 일본 정부 자산 자체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소송에서 승소한 피해 할머니들에게 56억원을 활용해 배상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앞서 2019년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한ㆍ일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모금안을 제안하며, 초안에 화해ㆍ치유 재단의 잔여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화해ㆍ치유재단 기금은 한ㆍ일 합의를 이행하는 관점에서 사용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 계승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56억원을 쓴다고 한다면, 일본도 굳이 반대할 명분은 크지 않다는 뜻도 된다. 외교 소식통은 “화해ㆍ치유재단 출연금의 경우 명확히 ‘배상금’으로 못 박진 않았지만 일본의 책임 인정을 전제로 일본 정부 예산으로 낸 것이라 사실상 배상금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도 한국 정부가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이미 준 돈이니 알아서 쓰라고 동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 해산이 결정된 화해‧치유재단 사무실 [연합뉴스]



③ 한국 돈? 일본 돈?
이처럼 화해ㆍ치유 재단 기금 자체가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조성된 것은 맞지만, 출연 뒤에는 이미 재단 돈이 된 데다 해산 절차까지 진행 중이라 돈의 성격이 불분명하다. 재단 자체는 여성가족부 산하이고, 재단 정관이 준용하는 민법에 따르면 “(재단 해산 시) 재단의 설립 목적과 비슷한 목적을 위해 처분할 수 없을 시, (잔여 재산은) 국고에 귀속한다”고 돼 있다. 애초에 일본 정부가 냈으니 ‘일본 돈’으로도, 지금은 한국 정부 관할에 있으니 ‘한국 돈’으로도 볼 수 있는 애매한 상태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위안부 배상 판결의 핵심은 배상 주체가 ‘일본 정부’라는 데 있다. 56억원 활용에 양국이 동의한다고 해도 꼬리표를 ‘한국 돈’으로 붙인다면 판결 취지 자체에 어긋날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일본이 출연했던 10억엔을 전액 한국 예산으로 충당하겠다며 2018년 103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했다. 10억엔 중 이미 피해자에 지급된 돈까지 부정함으로써 ‘일본이 낸 10억엔에는 손대지 않았다’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재단의 잔액도 한국 정부의 돈으로 대체할 성격의 기금이라는 반론도 있다.


④관건은 피해자 의사
결국 관건은 배상을 받을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 배상 소송을 낸 할머니들은 모두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반대했다. 피해자들이 화해ㆍ치유재단의 돈은 수령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또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3) 할머니는 8일 승소 판결 후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3억원을 줘도 싫다”며 “일본의 사과가 먼저”라고 말했다. 56억원을 활용할지 말지보다 일본 정부가 진정성 있는 사죄로 볼 수 있는 조치를 할지가 먼저 협의돼야 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양국 정부가 합의해봤자 2015년 위안부 합의 때와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섣부르게 한·일 간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현상 동결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9년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눈가를 닦고 있는 이옥선 할머니 [연합뉴스]

하지만 일본은 2015년 합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의 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함으로써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라 추가적인 조치에 의지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출범 4개월 만에 반토막이 날 정도로 국내정치적 상황이 어려운 만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전향적인 조치를 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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