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착한 사람이 그립다

2021. 1. 28. 04: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인터넷 강호에서 석 달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선플 100%' 게시물을 보게 되다니.

클릭하면 '인성이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라는 반전 설명과 함께 유명 햄버거 업체의 배달 오토바이를 몰던 청년이 횡단보도를 제대로 건너지 못한 어르신을 보호하는 내용의 움짤이 나온다.

우리의 도덕적 에너지를 점수로 매기면 몇 점일까.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인터넷 강호에서 석 달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선플 100%’ 게시물을 보게 되다니.

지난 주말 한 장의 ‘움짤’(움직이는 짤림 방지용 사진)을 담은 게시물이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배달 알바생 인성 논란’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달린 글이었다. 클릭하면 ‘인성이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라는 반전 설명과 함께 유명 햄버거 업체의 배달 오토바이를 몰던 청년이 횡단보도를 제대로 건너지 못한 어르신을 보호하는 내용의 움짤이 나온다. 청년의 행동은 놀라웠다.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판단력, 스피드가 숙명인데도 몸 불편한 어르신과 천천히 보조를 맞춰 걷는 인내심, 어르신 곁에 착 붙었지만 소매조차 잡아당기지 않는 배려심, 여기에 횡단보도로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여기 우리 있어요’라며 수신호를 보내는 침착함까지.

“업체는 청년을 정식 채용하라”거나 “지금 그 햄버거 먹으러 갑니다” “멋있어! 인성 갑” 등의 선플이 쏟아졌다. 움짤이 사이버 공간 곳곳으로 퍼져나간 뒤에야 과거에 나돌았던 영상이라는 증언이 이어졌지만 감동의 물결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몇 초짜리 움짤인데 우리는 왜 손뼉을 치며 열광했을까. 역설적으로 인성이 실종된 암담한 세태를 반증하는 건 아닐까.

지난주에는 의정부경전철 등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폭행과 욕설을 일삼던 어린 학생들의 패륜 영상이 국민의 공분을 샀다. 학생들은 말싸움을 벌이던 70대 할머니의 목을 조른 뒤 넘어뜨렸고, 노약자석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가 이를 타이르는 노인에게 다가가 일부러 몸을 부딪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 가해 학생들의 친구들은 이를 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경찰은 신원 파악 끝에 가해 학생 2명을 붙잡았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가해자들은 겨울방학이 끝나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만 13살 된 학생들이었다.

‘인성 실종’의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다. 경기도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한 임용후보자는 극우 사이트에 미성년자를 성희롱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글을 올렸다가 임용 취소됐고, 강원도 어느 도시의 30대 공무원은 차를 빼달라는 건물주에게 다짜고짜 욕하고 “고졸이냐” “어디서 공직자에게 개기냐” 등의 문자를 보냈다가 직위해제의 쓴맛을 봤다.

현실은 이래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다. 학교폭력 등 사회적 일탈이 이어지자 국회는 2014년 인성교육진흥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는 이듬해 7월 이후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을 육성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5년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막돼먹은 사람들 천지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입시 제도나 채용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세계 최초의 인성교육 의무화 나라’라는 건 구호에 불과하다.

독일 역사학자 랑케는 국가 흥망성쇠의 키워드로 도덕적 에너지를 꼽았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영토 크기 또한 중요한데 국민의 도덕성이 그중 으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에너지를 점수로 매기면 몇 점일까. 개인적으로는 낙제점(사실은 빵점)을 주고 싶다. 착하고 인성이 남다른 경우 내가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이고 실질적인 이득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하긴 위장 전입이나 과태료 체납, 재산 신고 누락 정도는 고위 공직자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곳에서 무슨 도덕성 운운인가.

착한 사람이 그립다. 그들이 행복하고 나쁜 사람은 그렇지 않게 사는 게 상식이면 좋겠다. 배달 청년의 선행쯤은 지극히 당연해서 누구도 울컥해하지 않는 인성 갑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