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데 설마 200명이나 올까 싶었는데.."

박향숙 2021. 1. 2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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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생 이후 무료 급식 봉사 1년.. 딸과 함께 급식 도시락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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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숙 기자]

지난 20일, '코로나 발생 만 1년'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가득했다. 작년 이날보다 일주일 전에 대한 나의 기억은 더욱더 생생했다. 대학 합격을 한 딸이 학교 기숙사를 얻지 못하여 혹시라도 방을 구하지 못할까 봐 부리나케 자취방을 구하러 상경했었다.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학교 생활을 하려면 학교 앞에 방을 구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한 부동산 사무실에 가보니 같은 처지에 있던 타지의 학부모들과 초면임에도 동변상련의 맘으로 서로 잘 부탁한다고 인사도 나누면서 소위 원룸을 정했다.

원룸을 정하고 내려온 지 일주일 후 나라가 국민들에게 코로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처음엔 크게 대수롭지 않았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니 그에 관련된 사람들만 치료를 잘 받으면 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하다못해 수해나 장마에 관한 천재지변 한번 겪지 않고 살아왔기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야말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아들 딸의 자취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만 신경 쓰면서 지출해야 할 경제적 부담을 어떻게 채워나갈까만 고민했었다.

그러나 1월 말 지역에서도 확진자 소식이 들려오더니 학부모들은 잠깐 동안 아이들의 공부를 쉬게 하겠다고, 무서워서 밖에 내보낼 수가 없다고 했다. 매년 겨울방학이면 쉬는 학생도 있지만 오히려 방학을 이용해서 공부량을 늘리는 학생들도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나의 단순한 생각은 이내 다른 감정으로 대체되었다. 날마다 쏟아지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에 나라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 평생 처음으로 사람이 무서워서 두리번거리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기관의 방침에 따라 잠시 학원운영을 멈췄다.

꽃가루가 흩날리고 황사가 몰아쳐도 마스크를 끼지 않는 내가 마스크를 만드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만드는 자원봉사단체에 갔다. 처음으로 마스크 만드는 공정을 보았고 이 마스크를 받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이 마스크를 받는 사람들이 또한 무료급식센터를 이용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봉사활동 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배식이 있기까지 2시간 여가 남았는데도 일찍부터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 박향숙
 
그렇게 무료급식을 만드는 봉사 활동과 인연이 된 지 만 1년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마치 봄비처럼 찬 바람 하나없이 내리는 비를 보면서 일년 전 무료급식에서 도시락을 나눠줄 때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급식센터 가는 날이야. 아침은 너희들끼리 먹어. 그곳에 간 지 벌써 일년이네."
"그래? 엄마 같이 가. 나도 말만 들었는데, 가보고 싶네. 엄마가 말한 할머니 친구들도 뵙고."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배식이 있기까지 2시간 여가 남았는데도 일찍부터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일년을 바라보니, 말 그대로 해가 뜨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렇게 일찍 오는 사람은 와서 기다렸다. 비가 오는 이날도 그렇게 십 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딸과 함께 왔다고, 노령의 친구들께 인사를 시키고, 딸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었다.

이날 반찬은 아구찜, 두부조림, 연근, 김치와 고실고실한 흙미가 들어간 밥이었다. 봉사자들은 반찬을 직접 만드는 일이 허락되지 않는다. 반드시 조리사와 영양사의 지도하에 급식을 챙기는데 보조자로서 움직여야 한다. 주요 음식에 들어갈 각종 채소를 다듬는다거나, 양파나 대파, 감자와 같은 채소를 썰거나 씻는 일 그리고 도시락을 포장하기 좋게 준비하는 일, 다 된 밥을 푸는 일 등이다.

나는 밥을 푸는 일을 맡았고 딸은 도시락 뚜껑을 닫는 일을 맡았다. 나는 밥 푸는 아줌마가 되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솥단지의 뚜껑을 열면 밥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훈김. 공짜로 피부 마사지를 하는 거라고 어른들이 알려주었다. 게다가 밥도 딱 맞게 잘도 푼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비가 오니 우산 들랴, 도시락 담아갈 비닐봉투 챙기랴,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도 따르랴.
ⓒ 박향숙
 
일 년을 살펴보니, 역시 4월부터 10월까지 도시락을 받는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선선한 날이나 또는 여름날에는 급식소의 의자에 앉아서 드실 수 있지만, 겨울엔 춥고, 게다가 눈이나 비가 오면 밖에 나오기가 어려우니 급식을 받아가는 사람의 수도 줄었다. 처음에 봉사현장에 갔을 때만 해도 도시락의 수가 평균 300여 개였다.요즘은 최대 200여 개를 준비했고 이날도 그랬다.

배식할 때는 학교 선생님인 선배와 딸이 도시락을 드렸는데, 휠체어를 탄 사람 먼저 드리고, 다른 분들은 줄을 선 순서대로 드렸다. 비가 오니 우산 들랴, 도시락 담아갈 비닐봉투 챙기랴,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도 따르랴, 아마도 도시락을 받는 사람들도 모두 정신이 없었을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식판용 식사가 아닌 도시락용 식사로 준비하는데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졌던 지난 가을에는 식판용 식사로 급식센터의 식당에 들어와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봉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식판용 식사대접은 일일이 식판까지 설거지를 해야 하니 일의 양이 두배로 늘어났다. 하지만 환경적 입장에서 보면 플라스틱 도시락의 사용이 얼마나 환경오염에 큰 해악을 미치는가를 잘 알고 있기에, 나이 드신 봉사자들 역시 힘들어도 식판을 이용해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배식이 끝나고 딸은 한 기부자가 준비한 쇠머리 찰떡을 먹으면서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딸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는데 설마 엄마가 말한 200명의 사람들이 올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통해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에 놀랐어. 코로나 때문에 안에서 먹지도 못하고, 어느 곳은 무료급식을 중단하기도 했다는데. 그럼 이 많은 분들은 나머지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나.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서 안에서 따뜻한 밥을 드릴 수 있음 좋겠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음식을 준비하는 봉사자 분들을 보며 하나의 도시락에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어. 엄마의 급식 봉사활동 1년이 의미있는 시간이야."

시간은 흘러간다. 내가 움직이든 멈춰있든 시간은 흘러간다. 코로나가 내게 준 지난 1년 동안의 급식봉사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다. 단지 내가 그 시간의 흐름을 찾아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을 건네니 시간이 의미있는 해답을 주었을 뿐이다. 나는 딸에게 "본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알게 되고, 알았다면 행동해야 지성인이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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