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이곳이 국가공인 풍경 맛집 가는길입니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변산반도로 대표되는 부안은 청정해변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반도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해안선을 따라 마을이 앉아 있고 수만년을 파도에 부서지며 신비한 지형을 만들어낸 해안절벽은 유명합니다. 숱한 생명들을 간직한 갯벌, 염전과 그 소금으로 만든 젓갈, 갯벌에서 잡은 싱싱한 조개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사계절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내소사 전나무숲과 고즈넉한 절집은 힐링명소로도 그만입니다. 부안은 어느때 가든 계절의 변화에 따른 멋과 각기 다른 느낌으로 손색없는 풍경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몰릴만한 명소를 찾아 다니는 것은 잠시 접어두는것이 좋겠습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아름다운 변산반도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 말입니다. 바로 실핏줄처럼 연결된 30번 해안도로를 따라 언택트(비대면) 드라이브 여정입니다. 변산반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는 풍경들의 연속입니다.
변산반도 30번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그 길에선 갯벌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힘찬 일출을 품거나 바닷속으로 풍덩 잠기는 해넘이를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채석강, 격포, 솔섬, 내소사 그리고 곰소만의 진득한 젓갈내음과 동행한다.
해안도로는 부안읍에서 계화도(界火島) 방면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이 길은 운전하는 내내 오른편으로 서해바다와 갯벌이 함께한다.
먼저 계화도로 방향을 잡는다. 영화 '실미도'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계화도는 원래 섬이었다. 해방 이후 가장 큰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됐다. 운암댐을 막아 섬진강 물을 청호저수지로 끌어들여 경작했고, 또 그 댐의 수몰민 2700여 세대를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부안에서 계화면사무소를 지나 방조제를 건너면 광활한 농경지가 펼쳐진다.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가을에는 잘 익은 벼들이 황금 들녘을 이루고,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광활한 평야를 가득 채운다.
올해는 잦은 눈탓에 벌판이 온통 하얗게 반짝이고 있다. 계화평야 가운데 조봉산이라는 조그만 산이 있는데, 그 정상에는 팔각형의 정자가 있다. 계화정이다. 계화도 지구 농업종합 개발사업과 관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계화도에는 부안의 명물인 백합(白蛤)이 최대생산지였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계화도는 섬이었기 때문에 갯벌이 좋아 일대에는 조개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새만금 방조제를 막은 이후 갯벌 생태계가 나빠지면서 백합이 예전처럼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백합은 구이, 찜, 탕, 죽 등으로 먹는다. 은박지로 백합을 잘 싸서 구워내는 백합구이는 여느 조개구이 식당에서 맛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합을 감싼 은박지를 떼어내면 '툭'하며 입을 벌린 백합에서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초고추장에 찍어 입 안에 쏙 넣으면 쫄깃하게 속살이 씹히면서 백합의 은은한 향기가 후각을 한껏 자극한다.
계화도는 일몰과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일출은 동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동해의 해는 수평선 위로 바로 솟아오르는 것을 최고로 치지만 서해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계화도처럼 바다와 육지, 소나무가 어우러진 곳에서 하늘에 구름이라도 살짝 드리우면 운치가 그만이다.
계화도 일출은 바다를 막은 뚝방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소나무 사이로 떠오른다. 코 끝을 에이는 차가운 공기마저 잊게 만드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일출에 담겨있다. 해는 새색시의 볼에 찍은 연지, 곤지처럼 붉고 수줍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연말연시가 아닌 평상시에도 계화도는 여행객의 발길이 잦다.
계화도를 나와 해안도로를 달리다 격포항에 이르면 변산8경 중 하나인 채석강을 만난다. 바닷가 절벽이 마치 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 웅장한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떨어지는 해가 내뿜는 붉은 기운을 잔뜩 머금었을 때는 더욱 오묘하다. 최근엔 해식동굴에서 인생사진을 찍고자 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채석강을 나서면 곧 솔섬에 닿는다. 격포항과 모항 사이 학생해양수련관 안으로 들어가면 솔섬이 바로 보인다.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돼 걸어서 70m만 가면 솔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솔섬을 나서면 곰삭은 젓갈 냄새가 짭조름한 곰소항과 진서리의 곰소염전이 만들어내는 겨울풍경이 기다린다. 곰소항으로 가는길에 있는 내소사로 들어간다. 해안도로에서 잠시 벗어 났지만 내소사 전나무숲길을 빼놓고 부안여행을 말할 수 없기에 들렀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강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다.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자 약 4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수령 150년 안팎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마치 경쟁하기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내소사는 찬찬히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절집이다. 우선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대웅전의 모습이 압권이다. 단청이 없어 나무결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는 대웅전은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단정하면서도 청아한 멋을 풍기며 세월의 주름을 느끼게 한다.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곰소항으로 간다. 곰소삼거리만 가도 바닷바람에 젓갈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 곰소젓갈은 유명하다. 곰소에서 줄포항 방면으로 가면 진서면과 변산면을 잇는 아홉구비재(쌍개재)가 나온다. 고갯마루에 서면 저 멀리 곰소항을 비롯해 작당마을, 바다 건너 고창 선운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계화도와 달리 바다와 갯벌을 품고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아홉구비재에 섰다. 바다에는 이른 아침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가 부지런히 그물을 올리고, 하늘에는 두껍지 않은 구름이 드리워져 눈덮힌 갯벌을 감싸고 있다. 한순간 갯벌에 붉은 빛무리가 번진다. 온통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물들어 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황홀하다.
부안=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부안나들목으로 나가 30번 국도를 타고 새만금방조제, 계화도 방면으로 가면 해안도로에 진입한다.이후 채석강, 솔섬, 내소사, 곰소항 등이 차례로 나온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를 나와 새만금방조제를 건너면 바로 부안 30번 해안도로와 연결된다.
△먹거리=계화회관은 백합탕, 구이, 찜(사진) 등 백합요리 전문점이다. 격포항 일대는 횟집들이 많다. 또 바지락무침과 바지락죽은 원조바지락죽온천산장이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잠잘곳=부안에서 최고의 숙소는 단연 대명리조트 변산이다. 빼어난 전망이며 수준급의 시설, 관광지와 연계되는 편리함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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