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백령도 40㎞ 앞까지 왔다, 中군함 대놓고 서해 위협

이철재 2021. 1.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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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소식통 “중국 함정 거의 매일
동경 124도 선 넘어 한국쪽 진입”
시진핑, 해양주권 강화 지시 이후
중국 앞마당 만들기 ‘서해공정’


지난달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비함이 서해에서 움직이다 동경 124도를 넘어 동쪽으로 들어왔다. 동경 124도는 중국이 자신들의 해상작전구역(AO) 경계선이라며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선이다.

중국 군함은 이 선에서 멈추지 않고 10㎞가량을 더 진입했다. 한국 쪽 바다로 들어와 백령도에서 40㎞가량 떨어진 해역까지 접근했다.

해군은 즉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던 전투함 1척을 현장으로 급파해 중국 경비함 감시와 견제에 돌입했다.

중러 해군 합동훈련 [중국 국방부]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26일 “요즘 중국 경비함은 동경 124도에 바짝 붙어 항해하다 거의 매일 이 선을 넘어와 백령도 쪽으로 향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은 이례적으로 깊숙이 들어온 경우”라고 말했다.

물론 백령도에서 40㎞ 떨어진 해역은 공해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이렇게까지 근접하는 자체가 군사적 영역 과시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합동참모본부와 해군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해군의 경비함은 동경 123~124도 사이 해역에 거의 매일 수 척이 출몰하고 있다. 공중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군 해상초계기가 동경 123~124도 상공에서 거의 매일 수차례 비행한다.

2019년 11월 카디즈에 진입 후 퇴각한 중국 군용기로 추정되는 Y-9 정찰기와 동일한 기종이 비행하는 모습. [일본 방위성]


중국이 서해를 내해(內海)화하려는 ‘서해 공정’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공세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미군의 진입을 차단하는 데 이어 서해에서도 해ㆍ공군 전력을 한국 쪽으로 점점 더 접근시키면서 활동 범위를 야금야금 넓혀 서해를 중국의 앞마당으로 만들려는 전략이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중국 해군은 그간 주로 경비함을 동원해 왔지만 앞으로는 구축함은 물론 항공모함을 동경 124도 해역에 투입해 강도를 높이는 ‘살라미 전략’을 쓸 것으로 전망한다”며 “이에 어떻게 대응해 중국의 내해화를 차단할지가 군의 과제”라고 말했다.

복잡한 서해의 경계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군은 전략무기인 잠수함까지 대놓고 노출했다. 잠수함은 위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은밀성이 최대의 강점이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중국 해군의 위안(元ㆍ039A)급 잠수함(3600t)이 동경 123~124도 사이 해역에서 물 밖으로 나와 항해를 하는 장면이 해군에 포착됐다.

중국 해군이 2005년 배치하기 시작한 신형 잠수함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미국해군연구소(USNI)에 따르면 최대속도 마하 3(약 시속 3675㎞), 최대 사거리 537㎞의 YJ-18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공격 잠수함이다.

위안급 잠수함은 디젤 엔진의 재래식 잠수함이지만, ‘재래식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달아 2~3주 잠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모습을 드러내는 수상 항해를 했다는 사실은 일부러 존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이곳은 ‘중국의 바다’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발산했다는 분석이 당시 정보 당국에서 나왔다.

중국 북해함대 주요 전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해 하늘에선 중국 군용기가 활개를 치고 있다. 합참이 신원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중국 군용기는 서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60번 이상 들어왔다.

KADIZ는 동경 124도를 따라 그어졌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지만, 방공식별구역에 외국 군용기가 들어가려면 해당 국가에 먼저 알리는 게 관례다. 하지만 중국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경우엔 알리는 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군 소식통은 밝혔다. 신원식 의원은 ”주변국으로부터 해양 주권 수호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라고 지적했다.

바다 위에 중국이 그어놓은 동경 124도라는 해상작전구역(AO) 경계선은 국제법으론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선이다. 중국이 지난 2013년 한국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데 불과하다. 그해 7월 우성리(吳勝利) 당시 중국 해군 사령원(사령관)은 중국을 방문했던 최윤희 전 합참의장(방중 당시 해군참모총장)에게 “한국 해군은 이 선(동경 124도)을 넘어오지 말라”고 요구했다.

최 전 의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런 요구에 대해 동경 124도는 국제법상 공해이고, 북한의 잠수함이나 잠수정이 동경 124도를 넘어 우리 해역에 침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작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마이웨이였다. 2013년부터 한국 해군 전투함이 동경 124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 중국 해군은 “즉시 나가라”는 경고 통신을 보내고 있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해군은 당연히 한국 해군에게 퇴거를 요구할 국제법적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중국은 ‘넘지 말라’는 단계를 넘어섰다. 중국군은 한국 해군에 동경 124도에서 들어오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이 선을 넘어와 한국 영해에 근접하고 있다.

2012년 10월 전남 신안군 가거도 서방 10km 부근에서 목포해경 경비함 1509함 소속 고속단정이 도주하는 불법조업 의심 중국어선을 추격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은 왜 서해를 안마당으로 삼으려 할까.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해양주권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중국이 124도를 경계선으로 고집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 입장에서 서해에는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톈진(天津)이 있다.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은 서해를 담당하는 북해(北海)함대 소속이다.

북해함대는 산둥(山東)성 칭다오에 사령부가 있다. 둘째 항모인 산둥함은 서해의 랴오닝 반도의 다롄(大連)에서 만들어졌다. 해군에 따르면 두 항모는 지난해만 칭다오 앞바다와 보하이(渤海)만 등 서해에서 20여 차례 훈련을 치렀다.

보통 항모는 자체 보호를 위해 항모를 중심으로 반지름 50~80㎞ 안을 절대 사수권으로 설정한다. 중국 항모가 자유롭게 항해하려면 서해에서 기동할 수 있는 해역을 늘려야 한다.

2016년 8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함정이 동중국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날 중국 해군은 함정 100여 척과 전투기 수십 대를 1만6000㎞ 해역과 상공에 총출동시켜 실전 수준의 대규모 실탄 훈련을 실시했다. [신화망]


또 서해와 맞닿은 평택에는 최대의 해외 미군 기지라는 캠프 험프리스가 있다. 평택에서 중국의 칭다오(600㎞)와 다롄(520㎞)까지는 해공군의 작전 거리로 볼 때 그리 멀지 않다. 미국이 중국의 북해함대를 서해에 가둬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국의 우려다.

동경 123~124도 해역은 서해에선 비교적 수심이 깊은 곳이다. 중국 북해함대 소속 한(漢ㆍ091)급핵추진 잠수함이 먼바다로 나가려면 이곳을 거쳐야 하니 중국군 바다로 만들어놔야 하는 이유도 있다.

상륙훈련을 벌이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육전대. 해군 육전대는 중국판 해병대다. 유사시 한반도에 긴급 투입할 병력으로 꼽힌다. [CGTN 유튜브 계정 캡처]


이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은 미적지근하다. 무엇보다 서해에서 해군의 제1목표는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최윤희 전 의장은 “서해에서 해군의 주임무는 NLL을 지키는 것”이라며 “현재의 해군 전력으론 중국 해군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군 소식통은 “해군이 나름 노력하지만 수에서 중국군에 밀린다”며 “해군 전투함 1척을 간신히 북한 임무에서 빼내 동경 124도로 보내면 중국 해군 전투함 여러 척을 만나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이 동경 124도에 대해 침묵한다면 중국 해군의 작전구역을 인정하는 것이고 결국 서해를 중국에 내주는 것”이라며 “외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해군 2함대와 중국 북해함대간 계속 대화하고, 때로는 해군 전투함을 동경 123도까지 파견해 한국판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철재ㆍ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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