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당근 사고 '애국자' 소리 들었습니다

최다혜 2021. 1. 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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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겨울을 나는 법] 마트, 식당, 꽃집.. 일회용품 대신 '용기'를 내니, 이웃이 생겼습니다

한파에 폭설, 그리고 코로나까지. 유독 추운 이 겨울, 다들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가까이 마주 앉아 서로에게 온기를 전할 순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따스함을 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이웃, 동네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최다혜 기자]

원래 나를 위해 절약하려고 했다. 불안에서 비롯된 생존형 절약이랄까. 아껴서 남는 돈으로 남편이랑 이 험한 100세 인생에서 살아남고 싶을 뿐이었다. 푼돈을 모으다 보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오마이뉴스에 <최소한의 소비>를 2년 조금 넘게 연재했다. 절약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연재가 끝을 향해 치달을수록, 풍요로운 생활이 두려워졌다. 생활비가 줄었다. 절약을 훈련해서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는 90만 원이었는데, 더 많이 줄었다. 2020년 10월, 11월, 12월 내내 70만 원 선에서 생활비를 마감했다.

소유가 범죄처럼 느껴진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나는 풍요로우면 죄책감이 들었다. 당연했다. 미세먼지는 지독해졌고, 수도권의 매립지는 과포화에 이르렀다. 청소년들은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다'며 등교 거부를 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이들은 등교 불가한 날들이 늘어갔다.

기후 위기와 쓰레기 팬데믹은 편리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더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블라우스 옷 솔기가 튿어지면 비루한 바느질 솜씨를 부려봤다. 옷의 수명을 2년 늘리면 환경 영향력을 20~30% 줄일 수 있으니까. 콩나물 비닐 하나도 씻어서 재사용했다. 볕이 잘 드는 날에는 '오늘 씻은 콩나물 비닐이 잘 마르겠구만' 하고 흡족했다. 

그리고 용기 없이는 바깥 음식을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용기 없는 시금치 한 줌도 죄스러웠다. 코로나 시대, 나는 장바구니에 용기를 넣어다니기 시작했다. '용기내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용기내 캠페인이란, 일회용 포장용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 용기에 포장 없이 내용물만 받아오는 시민 운동이다.

동네 마트와 만두가게, 김밥집, 칼국수집, 빵집에서 꽃가게, 아이스크림 전문점까지 도장깨기 하듯, 나의 용기를 받아주는 가게들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빈 용기를 낼 때마다 나에게 이웃이 한 명, 한 명씩 늘었다. 물건을 사고 계산만 하면 끝이던 마트에 낯익은 사람들이 늘어갔다.

용기를 내자, 이웃이 늘었다

첫 도전은 당근이었다. 마트에 비치된 비닐 한 장도 아찔했다. 가방에서 리유즈백(망사형 다회용 면주머니)을 꺼냈다. 마트에서 손을 가방에 넣으니 몸이 뻣뻣해졌다. 물건을 훔치는 걸로 오해하시면 어쩌지? 손동작 하나도 조심스러웠다. 결백을 증명해듯, 순수하게 물건만 사고 있다고 온몸으로 말하듯, 당근을 리유즈백에 담자마자 뚜벅뚜벅 저울로 향했다.

"어, 이거 당근이에요?"
"네. 두 개 담았어요."

개인용 용기에 담으면 안 된다고 하실지도 모르니 나도 모르게 간곡해졌다. 자세는 낮게, 표정은 간절하게, 말투는 굽신거리며!

"요즘 비닐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줄여보고 싶습니다!"

면접관 앞의 입사지원생처럼 비장했다. 점원분은 활짝 웃으시며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와, 이거 괜찮네요!"

다행히 한 고비 넘겼다. 다음은 계산대다. 역시나 고개를 갸웃하셨다.

"어머, 이게 뭔가요?"
"비닐 대신 쓰는 망이에요. 저라도 비닐을 줄여보려고 샀어요."
"애국자네! 진짜 애국자네요. 마트에서 일하다 보면 비닐 쓰는 거... 어휴, 말도 못 해요. 나 하나의 작은 변화! 사장님께도 꼭 말씀드릴게요. 우리도 비닐 줄이기 하자고."
 
 마트에서도 덤을 준다. 섬초를 샀더니 귤 두 개를 주셨다. 리유즈백을 가져가면 관계가 흘렀다.
ⓒ 최다혜
 
이날 이후, 여기 마트에 편안하게 다닌다. 섬초도, 연근도, 표고버섯도 담았다. 따뜻한 눈 인사를 나눠주시고, 데려간 어린 두 딸에게 바나나를 하나씩 쥐어주시기도 했다. 섬초 주머니에는 작은 귤 두 개도 담아주셨다.

다른 마트에서는 점원분께서 상추를 한 움큼 쥐어 리유즈백에 넣어주셨다. 새댁이 좋은 일 해주니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마트에서 덤이라니. 리유즈백과 함께라면 관계가 이어졌다.

나는 자주 굽신거리며 빈 용기를 들고서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도무지 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만둣집 사장님께서 우리집 밀폐용기에 만두 한 알, 한 알 밀가루 굴려 담아주시다 보면 송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덕분에 스티로폼 그릇 하나를 안 썼다.

"저 때문에 괜히 힘드셔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아이고, 뭘 이 정도 가지고."

칼국수집에서 빈 용기에 면만 받아온 적도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생칼국수의 플라스틱 받침이 마음에 쓰여, 용기를 냈다. 미리 전화를 걸어 면만 포장 가능한지 여쭤본 후, 칼국수집 사장님은 재밌는 손님이라며 허락해주셨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께서는 이미 5인분 같은 4인분 준비했다며 환하게 웃고 계셨다. 살림꾼 절약가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씻어 둔 플라스틱 딸기팩을 내밀었다. 집에 있는 밀폐용기들이 너무 작아 가져간 거였다. 빈 딸기팩을 내밀자 사장님 눈이 놀란 토끼 눈처럼 동그래졌다.

"아유, 비닐에 담아줄게요."
"비닐 줄이고 싶어서 챙겨왔어요. 여기 담아주세요."

사장님께서는 흐뭇하게 담아주셨다. 코로나 끝나면 애들 데리고 식당에 와서 먹을게요, 인사말을 남기고 경쾌하게 문을 나섰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동네 꽃집에서는 사장님이 꽃병을 집에서 가져왔으니, 제값보다 적게 받으시겠다 하셨다. 값을 깎다니. 이런 민폐가 어디 있나 싶어 극구 사양했다. 그랬더니 작은 종이에 응원의 글을 써주셨다.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시작한 일인데, 격려와 칭찬과 응원이 겹겹이 쌓여갔다.
 
 꽃가게에서 꽃을 살 때에도 용기냈다. 빈용기를 낼 때마다 환대가 돌아왔다.
ⓒ 최다혜
 
진정한 '쓰덕'을 만나다

여느 때와 같이 리유즈백에 청양고추를 담고 있었다. 무게를 다는데, 점원분께서 꾀꼬리 같은 높고 맑은 톤으로 칭찬 세례를 쏟아주셨다.

"이거 너무 좋네요!"
"비닐 줄이려고 쓰고 있어요."
"저도 환경 오염 너무 걱정이에요. 예전에 장바구니를 천 명에게 나눠준 적도 있답니다. 비닐 대신 쓰는 이런 물건도 한 번 만들어봐야겠어요."
"와, 좋죠! 비닐 대신 쓰면 얼마나 좋은데요! 리유즈백이란 건데, 인터넷에 팔아요."

혹여 '리유즈백'이란 단어를 잊어버리실까봐, '리유즈(reuse)'라고, '재사용'의 영어 해석이라고 힘주어 한 글자씩 말씀드렸다. 그런데 누가 누굴 가르쳤나. 나는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한 마리 쥐며느리였다. 쓰덕(쓰레기 덕후) 중의 쓰덕들만 알고 있는 '양파망'을 제안하셨다.

"뭘 사요. 양파망이 딱인데. 노끈도 예쁘게 꼬아서 끝부분만 불로 살짝 지지면 재사용할 수 있어요."
"진짜 고수시네요! 멋지세요! 비닐도, 양파망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세상이 올까요?"
"해봐야죠. 그리고 감자나 당근처럼 흙 있는 건 망에 못 넣잖아요. 시(市)에다가 건의해서 현수막 모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못 쓰는 현수막으로 주머니 만들면, 흙 있는 것들도 다 담을 수 있겠네요."

양파망에 현수막까지, 스케일이 남다르셨다. 이분, 뭔가 예사롭지 않다.

"혹시 사장님이세요?"
"여기가 우리 아들 가게예요."

이러니 우리 동네 가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돈이 이분들에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청양고추를 담아 집으로 오는 길. 북극한파인데도 신이 나서 하나도 춥지 않았다. 이웃이 있어 겨울이 춥지 않을 수 있다니.  
 
 용기를 낼 때마다 이웃이 늘었다.
ⓒ 최다혜
 
기후 위기와 쓰레기 팬데믹에 대응하고자 용기내 캠페인에 동참했다. 매번 빈 용기를 챙겨야 하니 조금은 불편하고, 텀블러 없는 날에는 커피 한 잔의 욕망도 견뎌야 했다. 커피 없는 오후라니. 꽤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때로는 분리수거장에 수북한 스티로폼 박스를 보면 속상할 때도 있었다. 세상은 비닐 한 장 줄이려는 나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 속상함을 도닥여준 이들은 우리 동네 사장님들, 점원분들이다. 플라스틱에 담아 미리 준비한 상품보다, 소비자의 자잘한 요구에 맞춰 모양도 크기도 다른 용기에 담으면, 어쩔 수 없이 시간과 품이 든다. 아무래도 죄송스러워 굽신거리다 보면, 그분들은 예의 바르지만 조금 성가신 손님에게 눈길을 준다.

그 눈길을 받아 이야기가 흐르고, 나는 사장님을, 사장님은 나를 알게 된다. 어쩌면 쓰레기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용기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동네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 동네에 온 지 7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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