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제조업·택배 고맙다, 한국 -1% 성장률 선방의 공신

하현옥 2021. 1. 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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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경제는 -1.0%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만의 뒷걸음질이다. 사진은 26일 명동거리에 폐업한 상점의 모습. [연합뉴스]

때론 공격보다 수비가 어렵다.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몰아붙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에 지난해 각국 정부가 돈을 쏟아부으며 성장률 사수에 나선 이유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의 역성장에도 한국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를 기록했다. 1998년(-5.1%) 이후 최저치다. 한국 경제가 뒷걸음질 친 것은 석유파동이 있었던 1980년(-1.6%)과 98년에 이어 지난해가 세 번째다.

소비는 얼어붙었다. 지난해 민간소비(-5.0%)는 98년(-11.9%) 이후 최저치다. 정부 소비(5.0%)는 늘었지만 2019년(6.6%)보다 증가 폭은 줄었다. 설비투자(6.8%)는 플러스로 돌아섰다. 지난해 하반기의 반등에도 연간 수출(-2.5%)은 마이너스로 전환하며 89년(-3.7%)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역대 세번째 마이너스 성장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럼에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한국의 성장률이 2019년 2.0%에서 지난해 -1.0%로 3%포인트 하락했는데, 이는 (주요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한) 중국의 낙폭(-3.7%포인트)보다 작다”며 “주요 기관은 다른 나라의 성장률 하락 폭을 5~7%포인트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경제전망보고서에서 내놓은 지난해 성장률 전망치를 살펴보면 한국(-1.09%)은 회원국 중 상위권이다. 노르웨이(-1.18%), 터키(-1.30%)와 엇비슷하다. 미국(-3.7%)과 유로존(-7.53%), 일본(-5.29%) 등과도 편차가 있다. 전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4.18%다.

방어선을 구축하고 성장률의 자유낙하를 줄인 공신은 정부 재정과 제조업, 택배다. 특히 뒷걸음질의 보폭을 줄인 건 ‘정부의 힘’이다. 지난해 GDP 성장기여도에서 정부는 1.0%포인트를 차지했다. 민간(-2.0%)이 까먹은 성장분을 메웠다. 지난해 사상 유례없이 59년 만에 4차 추경까지 편성하며 66조8000억원을 풀었다. 2019년(1.6%포인트)에 이어 정부가 성장률을 견인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도 충격의 완충재 역할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7%다. 독일(19.4%)과 프랑스(9.8%), 영국(8.6%) 등보다 높다. 반면 서비스업 비중은 한국이 62.4%인데 반해 프랑스와 영국은 70%가 넘는다.

관광 등 서비스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코로나19의 충격을 크게 받지만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은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플러스 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어붙은 소비, 줄어든 수출... 정부 씀씀이에 투자 늘며 선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하반기 반도체와 화학제품 등 주력 업종의 수요가 회복되며 수출이 늘어난 것도 역성장의 기세를 둔화하는 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639억4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연간 전망치(650억 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 경제 활동의 위축 속에서도 종횡무진한 택배 업종도 성장률 방어에 큰 역할을 했다. 박양수 국장은 “택배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쇼핑 기반이 잘 돼 있었던 덕에 소비 위축을 막아주는 효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소득은 나빠졌다.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1년 전보다 0.3% 감소했다. 2019년(-0.3%)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다.

지난해 성장률은 ‘덜 못해서 그나마 괜찮은’ 성적표로 여길만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특히 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 소비의 회복세가 관건이다. ‘K자’ 양상의 소득 격차 심화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 3차 확산세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1.1%(전 분기 대비)를 기록한 것은 좋은 신호지만 문제는 4분기 성장률의 대부분을 까먹은 민간 소비(-0.8%포인트)”라며 “백신 접종 속도에 따라 민간 소비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수출과 내수의 괴리가 심화하고 일부 기업과 업종이 경기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면서, 수치나 지표상으로 보이는 흐름과 경제 주체가 체감하는 경기가 다를 수 있다”며 “자산 시장과 고용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현옥ㆍ윤상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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