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신관치, 경제를 뒤덮는 정치
관료가 정치해선 안 되지만
선거 앞두고 경제 논리 깔아
뭉개는 정치는 더 큰 문제
정치가 방역 과학 넘어서면 안 되듯 경제도 무시하면 안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사표를 냈던 건 지난해 11월 3일이었다.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3억원으로 강화하려다 여당의 반대로 무산되자 국무회의 직후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 2개월 동안 갑론을박한 것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사의 표명의 이유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재신임의 뜻을 밝히며 사표를 반려했다.
홍 부총리는 사표를 냈던 당일 오후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 이 사실을 불쑥 공개했다. 대통령이 곧바로 반려했던 사실은 전하지 않아 면피를 위한 일종의 쇼라는 논란이 일었다. 홍 부총리는 그간 증권거래세 인하, 전 국민 재난지원금, 부동산 감독기구, 추경 편성 등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결국엔 정치권의 논리를 따라갔다. 이 때문에 ‘홍두사미(洪頭蛇尾)’란 별명을 얻었다.
홍 부총리가 지난 22일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길거리 지나며 텅 빈 카페나 빈 상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립니다”라며 허두를 뗀 뒤 영업손실 보상 입법화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국가재정 상황에 대한 장황한 설명에 이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부처 간, 당정 간 적극 협의하겠다는 다짐도 곁들였다.
홍 부총리의 글은 재정이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위기상황의 한가운데서 재정의 건전성도 지켜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경제 수장으로서의 고민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글을 굳이 SNS에 올려야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치권과 이견이 있다면 치열한 내부 논쟁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따를 일이다. 도저히 소신을 굽힐 수 없다면 거취를 거는 게 책임 있는 관료의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료가 정치에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료가 정치를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관료는 보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신으로 정책에 임해야 한다. 마치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에 대비하는 듯한 모습은 부적절하다. 국민에게 일러바치는 듯한 모습은 자기 정치를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물론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경제를 마구 흔들어대는 정치요,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뒤덮는 일이다. 정세균 총리는 영업손실 보상에 기획재정부가 반대 뜻을 밝히자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격노했다고 한다. “개혁 저항세력”을 언급하며 법제화를 공개 지시했다. 홍 부총리 글에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기재부가 국회 위에 있는 듯한 인식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상존한다는 점을 유념해주셨으면 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집단자살 사회에서 대책 없는 재정건전성’이란 반박 글을 올렸다. 이 지사는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과 관련한 논란 때는 기재부를 겨냥해 “조금 험하게 표현하면 게으른 거 아니냐. 변화된 세상에 맞춰서 공부도 좀 하고 고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가 정권 누수 현상까지 염두에 두고 행정부를 질책할 수는 있다. 지방자치단체 수장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불사한 것은 우려스럽다. 정책을 둘러싼 이견은 조율해 최선의 길을 찾을 일이지 윽박질러 주저앉힐 게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관료들이 결국 영혼을 팔게 되고, 그 피해는 불원간에 국민 전체에게 돌아온다.
가덕도신공항 재추진과 더불어 최근 여당에서 잇따라 제기하는 공매도 제한 연장, 이익공유제, 원리금 상환 재연장 등이 논란을 빚고 있다. 어느 정도 필요성이 있는 정책들이지만 시장경제 논리와 배치되는 요소들도 다분하다. 그런데도 경제 관료들을 닦달해 밀어붙이고 있으니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신관치’, ‘정치 금융’이란 지적이 나온다. 관가의 이유 있는 우려 제기를 가차없이 비판하는데 대권 주자들이 앞장서니 오해가 깊어지고 있다. 야당도 이런 대열에 은근히 올라타는 눈치다. 선거에 맞춰 돈을 풀고, 득표에 유리한 정책을 쏟아내는 폐해에 관한 경구는 숱하게 널렸다. 목전의 선거에만 목을 매는 선거 지상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에 정치는 겸허해야 한다. 방역에서 정치가 과학을 넘어서면 안 되듯 경제 논리를 압도해서도 안 된다.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처럼 독립성을 보장받는 곳은 아니지만 부총리 역시 ‘문재인정부의 부총리’라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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