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대변한다는 국가인권위.. 태아 권리·생명권 인정 안해

2021. 1. 2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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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2>
홍순철 고려대 산부인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교육문화관에서 개최된 ‘낙태법 개정, 제대로 가고 있는가’ 토론회에서 법무부 입법예고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결정문을 보면 이 기관이 정말 인권을 존중하는 기관인지 의문이 든다.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살펴본다.

첫째, 국가인권위가 인용한 기준 어디에도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국가인권위는 자신들의 결정 근거로 헌법 제10조, 세계인권선언 제3조, 유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제12조·16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9조·17조를 제시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라는 내용은 없다.

과거 낙태가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인식되던 시대가 있었다. 1970년대 산아 제한을 위해 불임수술 및 낙태를 가족계획의 하나로 홍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족계획에 낙태를 포함하지 않는다. 적절한 피임 교육과 실천,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임신 전 준비가 가족계획의 주된 내용이다.

우리는 더이상 낙태가 가족계획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마치 낙태가 가족계획의 수단인 것처럼 생각한다.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모든 사람은 생명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언급한다. 이 권리는 태아에게도 적용된다. 일방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국가인권위는 이번 결정에 제3조를 인용했다. 그렇다면 먼저 ‘태아는 사림인가 아닌가’에 대한 답부터 해야 한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6조에서는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명권을 갖는다’고 선언하고, ‘사형선고는…임산부에 대해 집행돼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문화돼 있다.

태아를 고유한 생명으로서 보호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인권을 보호한다는 국가 기관이 태아의 생명을 무슨 근거로 외면하려는 것인가.

둘째, 국가인권위의 전문성 부족과 자료 왜곡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캐나다 사례를 들며 낙태죄 비범죄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국가인권위는 캐나다에서 낙태죄 효력이 상실된 뒤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줄어들고 여성 건강권 보장이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이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리라 추정한다.

안타깝게도 캐나다의 의료 상황은 한국과 매우 다르다. 캐나다는 대부분 의료행위가 국가에서 무상 제공된다. 낙태, 태아 생명 문제에 돈이 오가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의료행위가 민간병원에 의해 제공되고 공급자와 수요자, 의료시장이 있다.

국가인권위가 캐나다의 예를 들며 낙태죄 폐지 후 낙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두 국가의 의료제도가 너무도 다른데 이를 간과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임신 24주 또한 이견이 있어 이를 권리 제한의 절대적 기준선으로 취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국내 산부인과 학계 보고에 따르면, 임신 24주 태아의 평균 생존율은 54.5%이고, 임신 23~24주 생존율은 73.9%다. 생존 가능성이 있는 태아에 대한 살인을 허용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결정문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얼마 전 임신 34주 태아를 낙태하는 과정에서 태아가 살아서 나오자 의사가 태아를 살해한 사건은 언론에 큰 이슈가 됐다. 이제라도 인권을 소중히 여긴다는 국가인권위는 태아 살해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셋째,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태아의 권리를 간과했다. 결정문에서 10명의 위원 중 이상철 문순희 위원만이 소수의견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언급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등 나머지 위원은 결정문 어디에서도 태아의 권리,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 태아의 인권을 포기한 인권위원회가 과연 국가적으로 인권을 대변할 수 있는 기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배 속의 태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근본 문제에 대해 답해야 한다. 참고로 배 속의 태아는, 법률적으로 상속 개시 시점에 출생하지 않았더라도 상속 후 상속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임신부 태중의 태아가 사람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헌법 10조, 세계인권선언 제3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6조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권리’ ‘생명권’을 보장받는다. 국가인권위의 진지한 답변을 기대한다.

홍순철 교수(고려대 의과대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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