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K자 양극화와 코로나 백신
미국·유럽과 다른 코로나 상황
백신의 경제 효과 함께 고려해
20~40대 우선 접종 검토할만
코로나19와 고강도 방역 정책이 장기화하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속수무책 무너졌고 임시 일용직 실직자도 크게 늘었다. 특단의 대책 없이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중산층이 사라지고 소위 K자 양극화의 고착화가 우려된다. 코로나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했던 만큼 경제 불평등은 국민의 경제적 생존을 위협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K자 양극화를 막기 위한 적극적 정책 대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소상공인과 고용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지만 지난 1년간 입은 피해를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다. 정치권에서는 손실보상법 입법을 추진하고 자발적 이익공유제를 꺼내 들었으나 재정 부담과 실현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사이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타들어 갈 것이다.
지금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경제적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 종식이다. K자 양극화는 대면 접촉과 집합 차단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일용직 종사자들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대면 접촉과 이동을 허용하여 활발한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9시 영업 제한, 대면 업종의 집합금지가 계속된다면 정부 지원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크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우선이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도 간절히 담겨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면 의료적, 예방적 관점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직 백신 우선 접종 순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요양병원 등 집단시설 생활 고령자, 코로나 업무 관련 의료인, 65세 이상 고령자, 의료기관 종사자, 성인 만성질환자 등의 순으로 검토되고 있는 듯하다.
백신 분배는 사망 예방, 감염 전파 예방, 형평성, 경제적 효과 등 여러 원칙에서 검토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불변의 원칙은 없으며 각국이 처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위와 같은 우선 접종 순위는 사망 예방에 초점을 맞춘 안이다. 확진자수 대비 사망자수로 계산한 22일 기준 국내 치명률은 80세 이상 20.24%, 70대 6.34%, 60대 1.33%, 50대 0.29% 순으로 연령이 낮아질수록 급격히 감소한다. 연령순 우선 접종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국가 간 코로나 현황을 비교하면 다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역시 22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 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인구 대비 확진자수는 전 세계 평균 대비 10% 수준이고 치명률은 80% 수준이다.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 없지만, 한국의 코로나 방역, 치료, 관리 능력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효과적인 방역,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국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확진율과 치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방역의 효과가 없고, 환자 치료와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이다. 이렇게 코로나 확산과 사망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워낙 막대하므로 미국과 유럽은 사망 예방을 백신 배분의 최우선 원칙으로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 유럽과 상황이 다른 한국은 전략적으로 백신 배분의 다른 원칙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후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20~40대 젊은 인구의 접종 순위를 높이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청년과 중년의 치명률은 0에 가까워 사망 예방 효과는 미미하지만, 대면 활동이 빈번한 집단이므로 가족과 자녀로의 코로나 전파 위험을 낮추는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적 효과가 클 것이다. 헬스장,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영세 사업자와 이곳을 이용할 젊은 층에 대한 백신 접종은 경제 활동 재개의 시작이 될 것이며, 경제적 보상책만으로는 역부족인 K자 양극화 심화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치명률이 높은 고령층을 후순위로 두자는 것이 아니다. 국내 여건을 고려하면서 젊은 층의 백신 접종을 함께 시행하여 경제적 편익도 동시에 창출해보자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백신 배분 원칙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정의와 윤리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공리주의 이슈는 자원이 제한적일 때 유효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 접종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부는 전 국민 백신 접종을 연내에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고 필요한 백신 물량도 확보한 상태이다. 접종 시기의 문제이지 자원 제한의 문제는 없다. 신종플루 때처럼 전 국민 중 일부만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면 사망과 건강 위험이 가장 큰 연령순으로 우선 접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과 환자 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고 백신 물량이 충분한 경우라면 경제적 효과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한국보다 확진율과 치명률이 높은 인도네시아가 젊은 층에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둔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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